신차·전동화 전략 구체성은 여전히 숙제

[더팩트ㅣ황지향 기자] 제너럴 모터스 한국사업장(한국GM)의 지난달 국내 판매량이 973대로 출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3억달러 투자 계획이 발표됐지만 신차·전동화 전략의 구체성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31일 한국GM에 따르면 지난달 내수 판매량은 973대로 전년 동월 대비 46.6% 줄었다. 전월과 비교해도 18.5% 감소했다. 이는 2002년 출범 이후 최저 수준이다.
한국GM 내부는 이같은 숫자에 충격이 적지 않은 분위기다. 존폐 위기가 거론됐던 2018년 군산공장 폐쇄 당시나 2022년 반도체 수급난 국면에서도 유지됐던 판매 수준이 처음으로 무너졌기 때문이다.
올해 1~11월 누적 판매량도 1만3952대에 그쳤다. 이 추세라면 연간 판매량은 2만대에도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경차 스파크를 앞세워 연간 18만대를 판매했던 2016년과 비교하면 12분의 1 수준이다.
내수 부진은 경쟁사들과의 격차에서도 드러난다. 지난달 르노코리아와 KG모빌리티(KGM)의 국내 판매량은 각각 3575대, 3121대로 한국GM의 세 배를 웃돌았다. 올해 초 한국 승용차 시장에 진출한 중국 전기차 업체 BYD 역시 같은기간 1164대를 판매하며 한국GM을 앞섰다.
현재 한국GM이 국내에서 판매 중인 차종은 트랙스 크로스오버와 트레일블레이저 등 소형 SUV 2종과 픽업트럭 콜로라도, GMC 시에라 등 총 4개에 불과하다. 가장 최근 출시 모델도 2023년 3월 선보인 트랙스 크로스오버다. 스파크와 말리부가 각각 2022년과 2024년 단종되며 세단 라인업은 사라졌고, 하이브리드 모델도 없다.
반면 생산 물량의 대부분은 수출에 집중돼 있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한국GM의 총 판매량 40만9810대 가운데 96.6%인 39만5858대가 해외로 나갔다. 특히 11월 1일부터 대미 수입차 관세율이 25%에서 15%로 낮아진 이후 수출 비중은 97% 후반까지 올라갔다. 업계에서는 한국GM이 사실상 '북미 수출 전진기지' 역할에 머물면서 국내 시장 대응이 뒷전으로 밀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GM 측은 최근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연초 부평공장 유휴 부지 매각 추진과 직영 서비스센터 접수 중단 결정으로 불거진 철수설 진화에 나섰다. 회사는 내년부터 국내 생산 시설에 3억달러(약4429억원)를 투자해 부평·창원 공장을 최대 가동하고, 트랙스 크로스오버와 트레일블레이저 등 SUV 생산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2028년 이후에도 생산을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설명이지만 투자 시점과 세부 집행 계획은 공개되지 않았다.
헥터 비자레알 한국GM 사장 겸 CEO는 "중장기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내 생산 기반에 대한 투자를 지속할 것"이라며 "한국에 대한 GM의 약속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회사는 내년 중 뷰익 브랜드를 국내에 공식 론칭하고 1개 차종을 출시하는 한편 GMC 브랜드에서도 3개 차종을 추가로 선보이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엔지니어링 분야 투자도 포함됐다. 한국GM은 인천 청라 주행시험장에 가상 개발 설비를 통합한 '버추얼 엔지니어링 랩'을 구축해 한국을 글로벌 엔지니어링 허브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브라이언 맥머레이 GM 테크니컬센터 코리아 사장은 "가상과 실물을 결합한 개발 전환을 가속화해 GM의 글로벌 기술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투자 발표를 두고 한국GM이 국내 생산의 향방을 단정 짓기보다는 시간을 벌기 위한 중간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생산 시설 보완은 단기 철수를 전제로 할 경우 불필요한 조치인 만큼 최소한 일정 기간 국내 생산을 유지하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신규 차종 투입이나 생산 규모 확대와 같은 확장 전략이 아닌 만큼 적극적인 성장 투자로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과 교수는 "생산 시설 보완은 만약 2~3년 내 철수를 전제로 한다면 할 이유가 없는 투자"라며 "그런 점에서 한국GM이 당장 철수보다는 2027년 이후까지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신호로 읽힌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계획은 생산 확대나 신차 투입을 전제로 한 공격적인 투자라기보다는 기존 생산을 유지하면서 시장 상황을 관망하려는 성격이 강하다"고 덧붙였다.
대외 변수 역시 한국GM 전략에 영향을 미칠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트레일블레이저처럼 2만달러대 소형 SUV를 생산하기에 한국은 여전히 경쟁력이 있는 지역"이라면서도 "대미 수출 관세와 미국 정치 환경이라는 변수에 따라 생산 전략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GM 입장에서도 지금 시점에서 철수나 확장을 단정하기보다는 2028년 전후의 시장 상황을 보기 위한 중간 단계의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내수 회복 가능성에 대해서는 보다 회의적인 시각을 내놨다. 이 교수는 "현대자동차·기아와의 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진 상황에서 한국GM이 국내 시장을 겨냥한 신차를 별도로 개발하거나 출시 시기를 조정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글로벌 전략에 종속된 구조상 내수 반전을 이끌 결정적인 카드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hya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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