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 의무 역설…전세 줄고 월세 늘었다

[더팩트|이중삼 기자] 올해 국내 주택시장은 정책이 시장을 끌고 간 해였다. 규제를 풀었다가 다시 죄고, 대출을 조인 뒤 실거주 의무를 덧씌우는 정책이 잇따랐다. 서울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구역) 해제와 재지정·6·27 가계부채 관리강화 방안·10·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이 짧은 간격으로 연쇄 발표되며 시장은 방향을 잃었다. 자금·수요는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경기 주요 핵심지로 쏠렸다. 지역 간 집값 격차는 더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올해 집값 흐름을 결정지은 핵심 요인으로 이 세 가지 정책을 공통으로 지목한다.
◆ 풀자마자 다시 묶었다…서울 토허구역 갈팡질팡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22일 발표한 '건설 BRIEF' 보고서에서 올해 주택시장 3대 이슈로 '서울 토허구역 해제·재지정'·'가계부채 관리 방안(6·27 대책)'·'주택시장 안정화 대책(10·15 대책)'을 꼽았다. 보고서는 이들 정책 변화가 연쇄적으로 맞물리며 연중 주택시장 흐름과 심리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첫 번째 변곡점은 서울시의 토허구역 정책 변화였다. 출발점은 지난 1월 14일 열렸던 '규제 풀어 민생 살리기 대토론회'였다. 서울시는 이 자리에서 토허구역 해제 논의를 공식화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의 토허구역 지정을 해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토허구역으로 묶인 지역에는 잠실·삼성·대치·청담동 등 투자 선호도가 높고 가격 수준이 높은 지역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시장에선 해제 시 억눌린 수요가 단기간에 유입되며 가격 급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토론회 이후 약 한 달 만인 2월 12일 국제교류복합지구를 포함한 일부 지역의 토허구역 해제를 발표했다.
해제 이후 시장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잠실·삼성·대치·청담동 등 수요가 몰렸던 서울 핵심지를 중심으로 매수 수요가 빠르게 유입됐다. 규제로 묶여 있던 투자 수요와 대기 수요가 짧은 기간에 집중되며 주택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실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강남3구는 지난 2018년 2월 첫째 주 이후 7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과열 조짐이 서울 전역으로 확산되자 정부·서울시는 방향을 틀었다. 해제 발표 후 약 35일 만인 3월 19일 토허구역을 다시 확대해 재지정했다. 해제와 재지정이 한 달 남짓한 기간 안에 반복되며 정책 신뢰도는 흔들렸고, 오히려 서울 핵심지에 대한 가격 상승 기대를 자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정책 불확실성이 시장 기대를 키운 대표 사례"라며 "서울 집값 상승을 유발한 주요 계기 중 하나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대출 틀어막자 수요 더 비싼 곳으로 몰렸다…6·27 대책

두 번째 변곡점은 지난 6월 27일 발표된 '가계부채 관리강화 방안'이었다. 정부는 공급 확대 기조를 유지해 왔지만, 2월~3월 토허구역 해제 이후 서울 집값이 단기간에 급등하며 정책 기조에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여기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건설경기 악화로 공급 실적이 수년간 부진한 구조적 한계도 겹쳤다. 공급 확대만으로 단기간 내 시장 안정 달성이 어렵다는 판단 아래, 정부는 수도권 중심의 대출 관리 강화를 핵심 대응 수단으로 선택했다.
6·27 대책의 핵심은 주택담보대출 규제였다. 수도권 내 대출 한도를 최대 6억원으로 제한했고 다주택자에 대한 대출은 사실상 전면 금지했다. 무주택자와 처분조건부 1주택자 역시 대출 만기 단축과 전입 의무 강화가 동시에 적용됐다.
정책 효과는 거래 구조 변화로 나타났다. 대출 규제가 강화되자 시장 참여 수요는 현금 여력이 있는 계층 중심으로 재편됐고, 이들은 중·저가 주택보다 강남3구 등 수도권 핵심 고가 지역으로 몰렸다. 거래량은 줄었지만 핵심지 가격의 하방 경직성은 오히려 강화되며 서울 내부의 지역별 온도 차가 더 뚜렷해졌다.
고하희 대한건설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수요 억제 정책이 지금과 비슷한 강도로 유지되면 대출 없이 거래할 수 있는 계층만 시장에 남는 구조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며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더 벌어지고, 서울 안에서도 지역별 집값 차이가 한층 확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실거주 의무가 전세를 말렸다…10·15 대책

마지막 변곡점은 지난 10월 15일 발표된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이었다. 정부는 이미 6·27 대책으로 금융 규제를 대폭 강화했지만, 이후에도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가격 상승 흐름이 이어지는 상황에 직면했다.
금융 규제만으로 시장 안정에 한계가 있다고 본 정부는 보다 직접적인 수요 억제 조치를 가했다. 10·15 대책을 통해 주택가격 구간별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한층 세분화했고,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을 '삼중 규제'(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토허구역)로 묶었다.
가장 큰 변화는 실거주 의무 강화였다. 앞선 6·27 대책으로 전세대출 규제가 이미 강화된 상황에서 실거주 의무까지 겹치자, 신규 전세 물건 출회가 급감했고 전세가격은 상승 압력을 받았다. 전세 진입이 어려워진 수요가 월세로 이동하며 '전세의 월세화' 현상도 가속됐다.
양지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10·15 대책 관련 "이제는 부동산으로 돈 벌지 말라는 정책 메시지"라며 "장기적으로는 시장 신뢰의 붕괴와 자산 가치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해당 정책은 자금 이동·거래 행위를 동시에 차단하기 때문에 중산층 이하는 시장 진입 자체가 봉쇄돼 자산 불평등은 더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추가 공급 대책은 내년 초에 나올 가능성이 크다. 당초 이달 말 발표가 유력했지만,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출석해 "공급 문제는 신뢰가 중요하다. (추가 대책을) 다소 늦출 수도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발표 시점을 내년 초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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