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경영인·이사회 견제력 부재 지적…"지배구조 정상화 시급"

[더팩트ㅣ조성은 기자] 안국약품이 또다시 '오너 리스크'에 휩싸이고 있다. 불법 임상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어진 대표이사가 출소 1년여 만에 회장직에 올랐기 때문이다. 전문경영인 체제를 내세우며 지배구조 개선을 약속했던 회사의 선언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평가가 거세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어 회장은 2016~2017년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승인 없이 연구소 직원 28명에게 고혈압약과 항혈전제를 투약하고, 수십 차례 채혈을 강행한 혐의로 2024년 2월 징역 8개월이 확정돼 복역했다. 그해 10월 출소한 어 회장은 한 달 뒤 안국약품 대표이사로 곧바로 복귀했고, 이달 8일 진행된 이번 정기 인사에서 회장으로 승진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초고속 복귀'를 사실상 찾아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기업 오너들의 경우 실형 이후 수년의 공백을 거치거나 비등기 임원 역할로만 제한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어 회장의 조기 복귀 배경으로 꼽히는 것은 '가업상속공제 요건'이다. 부친 고 어준선 명예회장 사망 이후 지분 20%가 넘는 지분을 상속한 어 회장은, 상속세 감면을 위해 상속세 신고기한 이후 2년 내 대표이사 등 임원에 취임해야 하는 요건을 충족해야 했다. 그의 대표이사 복귀 시점은 공제 요건의 법적 데드라인을 3개월 앞두고 있을 때였다.
어 회장의 사법 리스크는 끝나지 않았다. 그는 2011~2018년 의료인 85명에게 89억 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2019년 기소돼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추가 유죄가 선고될 경우, 또다시 경영 공백이 발생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이처럼 사법 리스크가 상시화된 오너가 실형 직후 최고직에 오르는 사례는 제약업계에서도 드물다. 동아쏘시오홀딩스 강정석 회장이나 신풍제약 장원준 전 대표처럼 유사한 혐의를 받았던 인물들은 대부분 경영에서 물러나 비등기 임원 역할만 수행 중이다.
안국약품 이사회 역시 오너 견제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운 구조다. 현재 이사회는 사내이사 3명, 사외이사 1명으로 꾸려져 있다. 유일한 사외이사도 건강보험·약제 전문가로, 기업 재무나 지배구조 감시 역할과는 거리가 먼 이력이다.
감사위원회·사외이사후보추천위 등 핵심 위원회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상근감사 1명이 감사 업무를 맡고, 사외이사 후보 추천도 이사회가 직접 맡는다. 이사회 의장은 대표이사가 겸직하는 것으로 알려져 오너 영향력 아래에서 독립성 확보가 쉽지 않은 구조다. 즉 실형을 선고받았던 오너의 복귀 및 승진을 제어할 제도적 장치는 사실상 부재한 셈이다.
안국약품은 영업·마케팅 출신의 박인철 사장을 실무 책임자로 세운 투톱 체제를 도입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전문경영인이 실질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안국약품은 2022년 전문경영인 체제를 선언했지만, 어 회장이 출소 후 복귀하면서 구조가 다시 무력화된 전례가 있다.
업계에서는 안국약품이 지금이라도 지배구조 정상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 신뢰를 잃은 기업이 그 책임 당사자를 최고위직에 다시 세운 것은 경영 판단으로서 매우 이례적"이라며 "투명경영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입증할 구조적 개편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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