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최의종 기자] 정몽원 회장이 이끄는 HL그룹 내부 자금이 정 회장 자녀 소유 사모펀드로 흘러갔다는 부당 지원 의혹이 제기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조사에 나섰다. 소액주주가 이와 관련해 제기한 소송은 본격화했다. 정 회장 측은 법무법인 세종을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11일 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민사17부는 지난 4일 HL그룹 사업형 지주회사 HL홀딩스 소액주주가 정 회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회사에 관한 소송에서 무변론판결 취소 결정을 내렸다.
앞서 소액주주들은 지난 9월 소송을 제기했다. 무변론판결은 피고가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거나 자백 취지 답변서를 제출하면 법원이 변론 없이 선고기일을 지정해 판결하는 절차다. 선고기일 전 피고가 다투는 취지 답변서를 제출하면 무변론판결은 취소된다.
재판부는 지난 4일을 선고기일로 잡았다. 이후 정 회장 측은 지난달 7일 법무법인 세종을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하고 답변서를 제출했다. 법무법인 세종은 HL홀딩스 사외이사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고문으로 있는 로펌이다. 재판부는 조만간 기일을 잡을 전망이다.
HL홀딩스는 정지연, 정지수 씨가 합산 100% 지분을 보유한 사모펀드 로터스프라이빗에쿼티(로터스PE)에 자회사를 통해 우회출자 방식으로 약 2170억원을 출자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2023년 말 기준 운용하는 5개 펀드 중 58%를 HL홀딩스가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상민 대표를 포함해 임직원 수가 3명인 로터스PE는 기타비상무이사로 이용주, 장경국이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이용주 씨는 지난 8일 정기 인사에서 HL D&I 한라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장경국 씨는 한라홀딩스(현 HL홀딩스) 상무를 지낸 바 있다.
업계에서는 2020년 설립된 로터스PE는 신생 운용사인데도 HL홀딩스 지원으로 빠르게 성장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HL홀딩스는 비상장 자회사인 HL위코와 HL D&I를 경유해 출자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장사인 탓에 공시 의무는 피할 수 있었다.
로터스PE가 정 회장 두 딸 정지연, 정지수 씨의 승계 자금 조달 통로라고도 의심한다. 정지연, 정지수 씨의 HL홀딩스 지분 매입은 지난해부터 본격화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각 지분율 0.01%, 0.02%에서, 지난해 말에는 각 1.46%로 올랐다.
정 회장 장녀 정지연 씨의 남편 이윤행 HL클레무브 부사장은 지난 8일 정기 인사를 통해 최고경영자(CEO) 사장으로 선임됐다. 이 사장은 미국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로 근무한 뒤 2017년 HL만도에 입사했다. 정지수 씨는 HL만도 상무보로 근무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8일 HL홀딩스와 HL위코, HL D&I 등 계열사와 로터스PE에 현장조사를 벌인 것으로 파악됐다. 공정위는 부당 지원 행위 여부와 공시 회피 의혹 등을 따질 것으로 보인다. 이후 과징금 부과와 검찰 고발 여부를 검토할 전망이다.
이에 앞서 지난 9월에는 HL홀딩스 소액주주들이 로터스PE에 자금이 출자된 것은 배임 소지가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정 회장 측 우호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HL홀딩스가 로터스PE를 부당하게 지원했다는 주장이다.
소액주주 측은 "정 회장 자녀가 운영하는 PEF에 자금이 흘러간 것 같다. 배임적 요소가 있다고 보고 소송을 제기했다. 통상 범위 내 경영 판단이었다고 하더라도, 투자 운용 능력이 더 좋은 곳도 있었을 것인데 굳이 자녀가 운용하는 데 맡긴 이유를 밝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당장 부당 지원 의혹이 형사사건으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공정위 조사 결과에 따라 검찰 고발로 이어지면 민사에 이어 형사사건까지 번질 것을 보고 있다. 이럴 경우 HL그룹 차원에서 리스크는 확산할 전망이다.
법원 판결이나 공정위 조사 결과는 상호 영향을 줄 전망이다. HL그룹 관계자는 "소송과 관련해 절차에 따라 진행할 예정"이라며 "공정위 조사는 진행되고 있으며 성실히 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bel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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