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심·금융위 거쳐 내년 1분기 확정 전망도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홍콩 H지수 연계 ELS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금융당국이 시중은행 5곳에 2조원대 과징금·과태료를 사전 통지하면서 은행권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은행들은 제재 수위와 확정 시점을 지켜보며 올 연말 결산이 아닌 내년 1분기 이후에 충당금을 반영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하는 분위기다. 금융감독원은 자본규제 부담을 완화하겠다고 하면서도 대규모 과징금 부과와 책임 추궁 기조는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달 28일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 등 5개 은행에 홍콩 H지수 연계 ELS 불완전판매와 관련한 과징금·과태료 부과액을 사전 통지했다. 규모는 합산 약 2조원 수준으로, 2021년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시행 이후 첫 조 단위 과징금이자 역대 최대 제재다.
이번 사전통지 금액 구성을 보면, 당국은 '수수료 수입'이 아니라 각 은행의 홍콩 ELS '판매금액'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권 집계에 따르면 홍콩 H지수 ELS 판매액은 KB국민은행 8조1972억원, 신한은행 2조3701억원, NH농협은행 2조1310억원, 하나은행 2조1183억원, SC제일은행 1조2427억원, 우리은행 413억원 수준이다. 이 가운데 우리은행은 판매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어 사전통지 대상에서 제외됐다.
2조원이라는 총액을 단순 비율로 나눠보면 KB국민은행이 약 1조원, 신한·NH농협·하나은행이 각 1300억~1400억원, SC제일은행이 1000억원 안팎 과징금·과태료를 사전 통보받은 것으로 시장에선 추산하고 있다. 다만 이는 판매액 비율을 적용한 계산일 뿐, 최종 확정액은 제재심의위원회와 증권선물위원회, 금융위원회 의결 과정에서 조정될 여지가 남아 있다.
금감원은 오는 18일 제재심의위원회에 홍콩 ELS 안건을 상정해 본격적인 제재 수위를 논의할 예정이다. 제재심은 '대심제' 방식으로 은행과 감독당국이 각각 의견을 진술하며 법리 공방을 벌이는 절차다.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때도 제재심이 3차례 열렸던 전례를 고려하면 한 번의 회의로 결론이 나기보다는 추가 심의가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제재심 이후에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 심의를 거쳐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최종 제재안이 의결된다. 금융위 회의가 통상 격주로 열리는 점과 행정제재 제척기간(통상 5년)을 감안하면, 금융권은 늦어도 내년 3월 전까지는 과징금 규모가 확정될 것으로 예상한다.
◆ 4분기보단 내년 1분기로 기우는 충당금 시계
은행들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충당금 반영 시점이다. 국제회계기준(IFRS)은 지출 시기와 금액이 불확실하더라도 '의무 발생 가능성이 높고 금액을 신뢰성 있게 추정할 수 있을 때' 충당부채(충당금)를 인식하도록 규정한다. 그동안 과징금 규모와 산정 기준이 확정되지 않아 선제적인 충당금 설정이 어려웠다면, 이번 사전통지로 기본 가닥이 잡히면서 회계 처리 논의가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다만 상당수 은행은 연말 재무제표(2025년 결산)보다 내년 1분기 실적에 충당금을 반영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제재심과 금융위 의결 등 최종 확정까지 최소 수개월이 필요한 만큼, 금액이 구체화된 이후 회계 처리 방식을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지난해 홍콩 ELS 자율배상 당시에도 분쟁조정 기준이 확정된 뒤 이사회 의결을 거쳐 다음 해 1분기 실적에 충당부채를 인식한 선례가 있다.
과징금이 확정되면 은행들은 단순 현금 유출뿐 아니라 자본규제 측면에서도 부담을 안게 된다. 현재 규정상 금융회사가 과징금을 부과받으면 해당 금액의 600%를 운영리스크로 추가 인식해야 해 최대 10년간 RWA 부담이 이어진다. 금감원이 사전 통보한 2조원 규모가 그대로 확정될 경우 단순 계산만으로도 약 12조원의 RWA가 늘어나며, 금융지주들의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1%포인트 안팎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같은 우려를 의식한 듯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금융위원회와 협의를 통해 은행들의 생산적 금융에 장애가 없도록 과태료 한도를 결정할 것"이라며 "과징금을 최종 확정할 때까지 RWA(위험가중자산)에 반영하는 걸 유예하는 것을 검토, 생산금융·모험자본 투자에 정책적으로 장애가 없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 자율배상 96%·수천억 집행…과징금 감경 변수는
은행들은 이미 홍콩 ELS 손실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자율배상을 진행했다. 금융당국 통계와 업계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피해자의 96% 이상이 자율합의를 마쳤고, 배상금 규모는 국민은행 6959억원, 농협은행 2527억원, 신한은행 1865억원, 하나은행 1093억원, SC제일은행 993억원 등이다.
금소법상 과징금은 위반행위로 얻은 수입 또는 이에 준하는 금액의 50% 이내에서 사안의 중대성과 사후 배상·재발방지 노력에 따라 1~100%의 부과기준율과 최대 75% 감경률을 적용해 산정한다. 이 때문에 증권가에선 자율배상과 내부통제 개선 노력이 어느 정도 반영되느냐에 따라 최종 과징금 규모가 2조원보다 다소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징금 규모가 조 단위로 통보된 상황에서 충당금을 한번에 반영하면 해당 연도 이익이 통째로 깎일 수밖에 없다"며 "제재심과 금융위 의결 시점이 내년 1분기 이후로 걸려 있는 만큼, 확정 시기를 최대한 늦춰 충당금 반영 시점도 뒤로 미루려는 유인이 은행들 입장에선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피해자 96% 이상이 자율배상에 참여했고 은행들이 수천억원을 이미 집행한 만큼, 최종 과징금 산정 과정에서 일정 부분 감경 요소로 반영될 여지도 있다"고 내다봤다.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 이메일: jebo@tf.co.kr
-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