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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미비 속 ‘걸음마 수준’ 녹색금융…금융지주 대응 현황은
K-택소노미 개정 지연·LCA 적용 유예…제도보다 빠른 금융권 ‘자율대응’

KB·신한·하나·우리·NH금융 등 주요 금융지주들이 제도 미비 속에서도 환경보호와 에너지 전환을 촉진하는 금융활동인 '녹색금융'을 적극 추진하며 기후리스크 대응에 나서고 있다. /더팩트 DB
KB·신한·하나·우리·NH금융 등 주요 금융지주들이 제도 미비 속에서도 환경보호와 에너지 전환을 촉진하는 금융활동인 '녹색금융'을 적극 추진하며 기후리스크 대응에 나서고 있다. /더팩트 DB

[더팩트 | 김태환 기자] 환경보호와 에너지 전환을 촉진하는 금융활동인 '녹색금융'이 필수 과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제도적 기반은 여전히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금융당국의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와 공시기준이 완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KB·신한·하나·우리·NH금융 등 주요 금융지주들은 각자 해석과 목표로 기후리스크 대응에 나서고 있다.

23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환경부는 지난해 말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물·순환경제·오염방지·생물다양성 등 4개 환경목표에 걸쳐 10개 경제활동을 신설하고, 기존 21개 활동을 개정·보완했다. 환경부는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과 협력해 '녹색여신 관리지침'도 마련, 금융회사가 여신업무에 K-택소노미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내부통제 절차를 제시했다.

그러나 개정안에는 핵심 항목인 '전과정 평가(LCA·Life Cycle Assessment)' 적용 시점이 빠지며 사실상 유예됐다. 전과정 평가는 원료 채취부터 생산·운송·사용·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영향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가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LCA 기반 규제가 확대되는 추세지만, 한국은 아직 적용 일정을 확정하지 못했다.

또한 K-택소노미 개정이 이뤄졌음에도 실제 금융권이 활용할 수 있는 세부기준·검증체계·데이터 인프라는 미비해 '명목상 기준 정비'에 그쳤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EU 택소노미와 비교할 때 적용범위·감독체계·검증요건에서도 격차가 크며, LNG 발전·수소 제조 등 '전환부문(transition)' 산업의 정의가 불명확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제도 정비가 늦어지다 보니 금융배출량 공시 제도 역시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최근 보고서 '금융기관의 지속가능성 공시: 금융배출량'에서 국내 금융기관의 금융배출량 공시 수준이 전 세계 흐름에 비해 아직 낮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PCAF(Partnership for Carbon Accounting Financials)에 가입한 한국 금융기관은 22곳이지만, 금융배출량을 실제 공시한 곳은 8곳에 불과하다.

보고서는 "국내 금융기관의 공시를 점검한 결과, PCAF 권고사항 중 필수항목만 충족한 사례가 대부분이며 자산군별·산업별 배출량, 데이터 품질 수준, 고탄소 산업 노출 등은 누락된 경우가 많다"며 "의무사항만 포함된 공시는 전체의 거의 100%에 달하지만, 권장항목까지 모두 반영한 공시는 8.5%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금융기관의 평균 데이터 품질 수준도 5점 만점 중 3.6점으로, 대부분 추정치에 기반한 산정임을 시사한다.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고 공시 표준화가 지연되는 가운데, 금융지주들은 자율적으로 녹색금융 확대에 나서고 있다.

KB금융은 'KB Net Zero S.T.A.R.'(탄소중립 전략)과 'KB Green Wave 2030'(ESG 금융 확대 전략)을 통해 2030년까지 내부 및 포트폴리오 배출량을 감축하고, 2040~2050년 넷제로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해 녹색 및 전환금융 여신·투자·상품 규모는 약 19조원 수준이다.

신한금융은 글로벌 지속가능개발목표(SDGs)를 기반으로 기후변화 리스크 대응과 자연자본 분석을 강화하고, K-택소노미 기반 여신시스템을 구축했다. 지난해에는 전환금융 9600억원을 집행했다.

하나금융은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지속가능금융 프레임워크'와 ESG 리스크관리체계를 운영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녹색·ESG 자금지원 6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포트폴리오 금융배출량 산정과 데이터관리 강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금융은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지난해 2700억원 규모의 녹색채권을 발행했다. 2030년까지 ESG 금융 지원규모를 100조원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NH농협금융은 금융감독원과 함께 기후리스크 관리모형을 개발하고, TCFD(기후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 권고안 지지를 선언했다. 그룹의 녹색금융 규모는 약 18조 원으로, 계열사별 ISO 14001 인증과 ‘Say on Climate’ 활동 등을 통해 대응력을 높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녹색금융 확산이 단순한 ESG 트렌드가 아니라 금융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할 핵심 변수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제도적 틀 없이 민간 자율에만 의존하는 구조가 장기화될 경우, 녹색금융은 실질적 탄소감축이 아닌 '보고용 ESG'에 머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K-택소노미나 금융배출량 공시제도가 현실에 맞게 보완되지 않으면, 각 금융회사가 각자 기준으로 ESG를 해석하게 돼 시장 혼란이 불가피하다"며 "정부 차원의 데이터 인프라, 공시 표준화, 인센티브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kimthi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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