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사업에서 민간 브랜드로…'한국의 건강' 상징

아플 땐 약을 먹고,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는 영양제를 먹습니다. 이제는 약국뿐만 아니라 편의점이나 온라인 등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에겐 익숙한 약과 영양제들은 각자의 역사와 속사정을 갖고 있습니다. 이 코너는 유명한 약·영양제의 개발과정이나 히스토리를 조명합니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조성은 기자] 기력이 떨어진다 싶을 때, 누구나 한 번쯤 찾는 건강기능식품이 있다. 바로 홍삼이다. 특유의 쌉쌀한 향과 맛 때문에 호불호는 갈리지만 "몸에 좋다"는 점만큼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특히 홍삼은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높다. 가족의 건강을 챙기려는 마음이 담긴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홍삼 전체 매출의 약 30%가 명절 전후에 집중된다고 알려져 있다. 홍삼은 '효도의 상징'이자 '가족 건강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홍삼의 재료인 인삼의 역사는 매우 오래됐다. 인삼이 약재로 쓰였다는 기록은 기원전 3000년경 중국 의서에 등장한다. 특히 한반도에서 자란 인삼은 약효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 동아시아 전역에서 인기가 높았다. 삼국시대에는 이미 주요 수출품이었는데 513년 백제 무령왕이 양나라 무제에게 인삼을 선물했다는 기록이 있고, 이후에도 중국과의 조공무역 목록에서 인삼은 빠지지 않았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고려인삼'은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조선시대에는 궁궐의 진상품으로, 왕실의 보약으로 쓰였다.
인삼을 증기로 쪄서 말린 것이 바로 홍삼이다. 17세기에 개성 상인들이 주도했다고 알려져 있다. 증포 과정에서 인삼 속 사포닌 성분이 변형돼, 진세노사이드 Rg3·Rg5·Rh2 같은 특이 사포닌이 생성된다. 이 성분들이 면역세포 활성화, 항피로, 혈류 개선, 항산화 작용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논문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면역력 증진 △피로개선 △혈소판 응집 억제를 통한 혈류 개선 △기억력 개선 △항산화 작용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홍삼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국책사업이기도 하다. 조선시대부터 인삼은 국가 전매품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전매국이 인삼의 생산과 유통을 독점했고, 해방 후에는 그 체계가 대한인삼공사로 이어졌다. 1996년 정부가 대한인삼공사를 민영화하면서 KGC인삼공사가 출범했고, 그 대표 브랜드가 바로 '정관장'이다.
정관장은 홍삼을 '보약'에서 '생활식품'으로 바꿔놓았다. 1990년대 후반까지 홍삼은 노년층의 선물용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정관장은 광고의 키워드를 '면역력'에서 '사랑'과 '가족'으로 전환했다. "당신이 지켜온 건강, 이제는 제가 지켜드릴게요." 효도와 정(情)을 앞세운 이 감성 마케팅은 큰 호응을 얻었기도 했다.
이후에는 소비층을 넓히기 위해 젊은 세대를 겨냥한 제품이 잇따랐다. 2010년대 출시된 '홍삼정 에브리타임'은 마케팅의 전환이기도 했다. 스틱형 파우치로 간편하게 섭취할 수 있도록 설계해, 홍삼을 '선물용 보약'에서 '매일 챙겨먹는 루틴식품'으로 재정의했다.
홍삼은 지금도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식약처와 업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홍삼 시장 규모는 약 1조3000억원, 건강기능식품 전체 시장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사스(2003), 메르스(2015), 코로나19(2020) 같은 감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매출이 급증했다. 후발주자들도 뒤따랐다.
CJ제일제당은 '한뿌리' 시리즈, 한국야쿠르트(hy)는 '홍삼의 정', 동원F&B는 '천지인 홍삼정'을 선보였다. 젤리·스틱·음료 형태로 젊은 소비층을 겨냥해 홍삼의 이미지를 보다 '가볍고 일상적인 건강식품'으로 바꿔놓았다.
업계 관계자는 "홍삼은 국가 전매품에서 국민 소비재로 바뀌었다"며 "유교적 효도와 자본주의적 자기관리의 접점에 있는 브랜드"라고 했다. 그러면서 "건기식 시장이 다변화하는 가운데 여전히 '한국의 건강'을 대표하는 제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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