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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검은 옷'의 항의…금소원 분리·공공기관 지정, 왜 반대하나
직원들 "감독 독립성 약해지고, 일만 복잡해져"
이찬진 원장 "매우 안타깝다" 내부 공지…공개적으로는 말 아껴


금융감독원 노동조합 조합원들과 직원들이 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로비에서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반대하는 손피켓을 들고 서 있다. /뉴시스
금융감독원 노동조합 조합원들과 직원들이 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로비에서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반대하는 손피켓을 들고 서 있다. /뉴시스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정부가 금융감독원에서 소비자보호 업무를 떼어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을 따로 만들고 두 기관을 공공기관으로 묶는 방안을 내놨다. 이에 금감원 로비에는 검은 옷을 입은 직원 700여명이 모여 "분리·공공기관 지정 반대"를 외쳤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매우 안타깝다"는 내부 글을 올렸지만 현장에선 별도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1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당정의 조직개편안 발표 이후 금감원 업무는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정부 조직개편안에 반대하는 금감원 직원들이 대규모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어서다.

금감원 직원들은 지난 9일 오전 8시 검은 옷을 입고 금감원 로비에 집결해 '금소원 분리를 철회하라'는 피켓을 들고 소리 높여 구호를 외쳤다. 전체 직원의 약 30%에 달하는 700여명이 모였다.

직원들은 같은 날 오후 2시 전 금융권 대표이사들을 소집한 연 '금융소비자 보호' 간담회장 입구에도 일렬로 피켓을 들고 조직개편에 대한 항의를 이어갔다. 현장을 찾은 이찬진 원장은 직원들 사이를 지나 별말 없이 자리를 지켰다.

정부의 조직개편안에 따르면 금융정책은 정부 부처가 맡고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를 새로 만들어 감독을 총괄한다. 금감원 안에 있던 소비자보호 조직은 떼어 금소원을 세운다. 금감원과 금소원 모두를 공공기관으로 다시 지정한다. 취지는 역할을 나눠 책임을 분명히 하고, 소비자보호를 더 강하게 하자는 것이다. 세부 내용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확정된다.

현장 직원들이 먼저 걱정하는 건 독립성이다. 공공기관이 되면 예산과 사람 뽑는 일이 정부의 관리 틀 안으로 들어간다. 직원들은 "검사·제재처럼 예민한 판단이 바깥 눈치를 보게 될 수 있다"고 말한다. 2009년 금감원이 공공기관에서 빠져나와 독립성을 다졌는데 이번에 다시 묶이면 정치적 입김과 외부 압력에 취약해질 수 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금융소비자와 국민이 아닌 정권의 이해관계에 좌우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일의 단절과 지연 문제도 있다. 지금은 민원 접수→현장 점검→제재까지 한 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분리가 되면 민원은 금소원, 검사·제재는 금감원으로 나뉘어 자료 주고받기, 일정 맞추기에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하나의 사건을 두 기관이 따로 처리하면 한 번 더 설명하고 한 번 더 기다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직원들은 중복 보고·업무 혼선을 반대 이유로 들었다.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속도를 냈다는 불만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일 발표한 금감원 노동조합 성명서에 따르면 지난 7월 금감원 직원 1539명은 국정기획위원회에 '금소처 분리와 관련해 드리는 금감원 실무직원 호소문'을 통해 사실상 금소원 신설을 반대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감독 인적자원 분산, 조직 내 갈등, 직원의 사기 저하, 금융회사의 검사 부담 가중, 행정비용 증가, 업무중복, 책임회피 등 조직 쪼개기의 전형적 폐해가 우려된다"고 언급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은행장 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헌우 기자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은행장 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헌우 기자

정부의 설명은 분명하다. 소비자보호를 전담 기관이 맡으면 책임과 전문성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감독을 맡는 조직과 거리를 두면 서로 견제가 가능해 실수나 봐주기가 줄어든다는 논리다.

지난 8일 이찬진 원장은 직원들에게 보낸 공지에서 "감독체계 개편이 합리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과적으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금감원과 금소원 사이에 인사 교류를 열고 직원 처우 개선을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공개 자리에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이 원장은 8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증권사·자산운용사 대표들과 간담회를 마친 뒤 조직 개편에 대한 이 원장의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입장이나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이는 지금은 논란을 키우지 않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이에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된 이 원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금감원의 권한, 위상, 역할 전반을 흔드는 정부 개편안에 직원들이 반발하면서 그의 리더십 검증을 요구하는 분위기다. 이 원장이 내부 갈등을 잠재우고 직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중재 방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한동안 업무 차질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금감원 안팎에서는 '정시 출근-정시 퇴근' 등 준법투쟁에만 나서도 업무에 상당한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잦은 야근이 일상인 금감원 직원들의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다. 내부 분노가 잠재워지지 않을 경우 금감원 노조는 파업 가능성도 거론한다. 파업까지 이어진다면 1999년 통합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공공기관 재지정은 예산·인력 운용의 정부 의존도를 높여 검사·제재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며 "내부적으론 승인·보고 절차가 길어지는 게 가장 큰 부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금소원 분리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민원-검사-제재가 한 사건에서 분절되면 데이터·증빙 공유, 일정 조율만으로 수주가 더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seonyeo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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