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고무줄 회계' 제동에 보험료 인상 우려
IFRS17 가이드라인, 연말 결산부터 적용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금융당국이 보험사에 '고무줄 회계' 주범으로 지목된 무·저해지 상품의 해지율을 조정하라고 요구하면서 해당 보험 상품의 보험료 인상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 당국의 조치로 해지율을 낮게 잡으면 보험료가 높게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소비자 부담은 더 커질 것이란 분석이다. 다만, 보험사 일각에선 마진을 포기하면서 현재 보험료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도 나와 실제 인상 폭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8일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보험사들이 무·저해지 상품의 해지율을 높게 가정해 이익을 부풀렸다고 보고 보험료 납입 완료 시점에 다가갈수록 해지율이 0%에 수렴하는 새로운 회계제도(IFRS17) 원칙을 마련해 전날 발표했다.
무·저해지상품은 표준형 상품보다 보험료가 저렴한 대신 납입기간 중 해지시 환급금이 없거나 적은 상품이어서 해지율이 높을수록 보험사에는 이익이 되는 구조다. 이에 보험사들은 완납 직전까지 높은 해지율을 가정했고 높은 수익성을 산출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원칙모형(로그·선형모형)의 해지율은 가입 초반에 가파르게 낮아지고 보험료 완납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완만해진다. 완납 후에는 0.8%를 적용한다. 보험료를 많이 낼수록 계약 해지에 따른 손해도 커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계약을 해지하는 고객도 줄어들게 된다. 다만, 특별한 근거와 공시, 요건을 충족하면 다른 모형을 적용할 수 있는 예외를 뒀다.
금융당국의 원칙에 따라 해지율을 현재보다 낮게 가정하면 상품의 손해율이 늘어나 마진이 줄어든다. 줄어든 마진 만큼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해석도 있다. 당국 역시 이번 가이드라인이 보험료 인상 요인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은 업권 전반 건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실제 금융당국이 최근 전 보험사를 대상으로 재무영향평가를 시행한 결과, 국고채 10년물 금리 3.0% 기준 보험업권 지급여력비율(K-ICS·킥스)은 지난 6월 말(217.3%) 대비 약 20%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정됐다.
일부 보험사가 금융 당국이 원칙으로 삼은 로그·선형모형이 아닌 예외모형(선형·로그모형)을 선택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예외모형은 원칙모형보다 해지율을 높게 가정하기 때문에 보험료 인상 압박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예외모형을 선택한 보험사는 보험료를 싸게 팔 수 있고 기존의 보험계약마진(CSM)도 손해 보지 않게 된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원칙 모형을 선택하지 않고 예외 모형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일부 보험사가 예외 모형 선택하면 다른 회사들도 수익성 경쟁 위해 예외 모형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고 원칙 모형 적용 시 일부 보험사의 킥스 비율이 기준치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험업계에선 무·저해지상품의 보험료 상승 가능성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일부 보험사에선 마진을 포기해서라도 보험료를 인상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가격 경쟁력을 높여 매출 외형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반면 수익성에 부담이 될 수 있어 해당 상품의 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할 것이란 의견도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무·저해지 보험으로 예상되는 마진이 감소하기 때문에 현행 마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험료 인상이 돼야 하는데, 마진을 줄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무저해지 보험의 해지율 가정을 일반 보험보다 낮게 설정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보험부채 증가로 이어져 보험사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 있다"며 "다만 보험료 인상은 여러 요인을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로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나 시장 상황과 규제 환경을 고려할 때 급격하고 일괄적인 인상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다만, 이번 가이드라인을 적용 시 무·저해지 보험을 보유한 모든 보험사의 실적이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례로 CSM이 10조원대인 한 대형사의 경우 원칙 모형을 적용하면 CSM이 1조원가량 줄어들고 연간 순이익도 1000억원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각 옵션의 장단점을 고려할텐데 원칙이 상당히 부담되는 회사들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중소형사의 경우 입증의 문제보다 보험사의 생존의 문제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고민할 것 같다"고 했다.
다만, 보험사 일각에선 이번 가이드라인이 결산시점부터 반영될 경우 내년 1월 1일자로 모형을 변경하고 상품 개정을 진행하면서 보험료가 올라가고 4월에 또 한번 보험료가 오르면서 '절판 마케팅'으로 이어질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주요 계리가정 가이드라인은 올해 연말 결산부터 적용된다. 손해율 가정은 회사 내 결산 시스템 수정 등 물리적 한계가 있는 경우 2025년 1분기까지 반영할 수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결산시점의 내외부 상황을 고려해서 선택할 것 같다"면서도 "단기적으로는 보험료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혜택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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