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분리 후 몸집 축소 불가피
신사업 발굴·신시장 개척 나설 듯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효성그룹이 3세 경영 체제에서 변화를 맞았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과 조현상 부회장이 각자 경영에 돌입했고 신설지주사 HS효성 출범, 지분 정리 등 이별 작업이 막바지에 들어섰다. 이는 각각 전문적인 사업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구조이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몸집이 줄어드는 것이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효성그룹이 HS효성과의 이별 후에도 기존의 기업 가치와 재계 위상을 유지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9일 재계에 따르면 조현준 회장은 최근 HS효성 지분을 전량 매각, 조현상 HS효성 부회장과의 지분 관계를 모두 정리했다. 상장사 기준 상호 보유 지분을 3% 미만으로 낮춰야 하는 계열 분리 요건을 갖추기 위한 움직임이다. 지난 7월 HS효성이 출범을 공식화한 데 이어 형제간 지분 정리가 빠르게 이뤄지면서 효성가(家) 3세들의 독립 경영이 9부 능선을 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으로 조현준 회장은 섬유, 중공업, 화학 등 전통 사업을 토대로 효성그룹의 미래를 이끌어갈 예정이다.
동양나이론을 모태로 지난 1966년 설립된 효성은 원천 기술을 기반으로 빠르게 사세를 확장했다. 한때 재계 10위권을 달성하며 산업 급속 성장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외환 위기 등을 거치며 재계 순위 20위권까지 밀려났고, 지난해에는 업황 호조를 보인 다른 기업들이 덩치를 키우면서 31위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기준 자산총액은 15조8000억원 수준이다.
물론 글로벌 점유율 1위 제품을 다수 보유한 효성그룹의 기업 가치 전망은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럼에도 고민이 불가피한 것은 20위권 재진입을 노리는 시점에 계열 분리를 추진하게 됐다는 점이다. 이는 경쟁 그룹의 성장세를 따라잡기 더욱 힘들어졌다는 의미다. 회사가 나눠지며 각 사업 관리 체계를 전문화해 새로운 도약 발판을 마련할 수도 있지만, 당장은 몸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재계 위상을 끌어올리기 위한 과제로는 신사업 발굴 및 신시장 개척이 거론된다. 앞서 효성그룹 역시 독립 경영 이후 성장 동력 확보에 힘을 쏟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먼저 그룹의 중심인 효성티앤씨는 스판덱스 사업을 강화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 지난 6월 김용섭 전 대표를 최고기술책임자(CTO)로 다시 불러들였다. 효성티앤씨의 목표는 전 세계 1위 스판덱스 사업에서 경쟁자들의 추격을 뿌리치는 동시에 섬유 신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현재 효성티앤씨는 스판덱스 외 지속가능한 섬유에 개발·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리사이클 섬유 브랜드 '리젠'에 지속해서 힘을 주고 있으며, 원료부터 환경친화적인 섬유 소재 개발을 통해 지난해에는 세계 최초로 옥수수에서 추출한 원료를 사용한 바이오 스판덱스의 블랙 버전 '리젠 바이오 블랙'과 100% 산업 폐기물로 만든 리사이클 스판덱스의 블랙 버전 '리젠 블랙'을 출시했다.
효성티앤씨는 지난 4월 대규모 투자 소식도 전했다. 베트남에 총 1조원을 투자해 연산 20만톤 바이오 부탄다이올(BDO) 공장을 신설하기로 했다. 바이오 BDO는 사탕수수나 옥수수 등에서 나오는 당을 발효시키는 방식으로 제조해 석탄 등 기존 화석 원료를 100% 대체한 제품을 말한다. 효성티앤씨는 친환경 제품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글로벌 소재 시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에서 이러한 투자를 결정했다.
효성중공업의 경우 인공지능(AI) 산업 성장, 신재생에너지 발전 증가, 전기차 보급 확산 등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전력 인프라 수요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특히 노후 전력기기 교체 수요가 높은 미국, 유럽을 기반으로 신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수소 분야에서도 수소 충전 시스템, 액화수소 사업 등 수익성을 높일 새로운 기회를 모색 중이다. 이와 관련해 세계 산업용 가스 1위인 독일 린데그룹과 연산 1만4000톤 규모의 울산 액화수소플랜트를 추진하고 있다.
긍정적인 부분은 효성그룹의 주요 사업 실적이 개선되고 있는 점이다. 미래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데 있어 상황이 우호적이라는 설명이다. 효성티앤씨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846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11.3% 증가하며 시장 기대치를 웃돌았다. 효성중공업의 2분기 영업이익(626억원)은 전년 대비 20%가량 줄었지만, 자재비 상승 등 건설 부문의 일회성 이슈를 중공업 부문이 만회하는 모습을 보여 추후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주력 계열사인 효성화학의 실적 부진이 길어지고 있는 것은 걱정거리다. 올해 2분기(영업손실 507억원)까지 11개 분기 연속 적자다. 이에 효성화학은 특수가스 사업부 매각을 추진하는 등 급한 불 끄기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효성화학은 당장 재무 위기를 극복하는 게 시급해 보인다"며 "사업 정상화, 재도약은 그다음에 살펴볼 문제"라고 밝혔다.
rock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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