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창업자, 10일 20시간 넘는 검찰 조사
'오너' 구속 시 해외 진출·투자에도 차질 예상…'서비스형 AI' 방향성 제시해야
[더팩트|최문정 기자] 카카오 그룹의 사법리스크가 최고조에 달했다. 지난해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의 주가 조작 혐의로 카카오 법인과 주요 경영진을 향한 수사망이 창업자인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에까지 미쳤다. 이에 따라 카카오의 성장 동력에도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김범수 창업자는 지난 9일 서울남부지검에 출석해 20시간이 넘는 강도 높은 밤샘 조사를 받았다. 김 창업자가 수사 당국의 소환 조사를 받은 것은 지난해 11월 금융감독원 조사 이후 꼬박 8개월 만이다.
카카오는 지난해 3월 하이브와의 혈전 끝에 SM엔터테인먼트를 품에 안았다. 카카오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다수의 케이팝 가수를 보유한 SM엔터테인먼트와의 시너지를 내며 해외 사업 등에 집중한다는 청사진을 그렸지만, 인수 과정에서 김범수 창업자, 배재현 전 투자총괄 대표 등의 경영진이 시세조종에 가담하거나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 수사당국은 카카오가 하이브를 견제할 목적으로 2400억원을 투입해 '시세조종'에 나섰다고 보고 있다. 특히 카카오가 사모펀드업체 원아시아파트너스에 SM엔터테인먼트 주식 1000억원 어치를 구매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내용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아울러 카카오가 SM엔터테인먼트 주식의 5% 이상을 보유하고도 이를 공시하지 않아 '대량보유보고' 규정을 어겼다는 부분도 주요한 쟁점 중 하나다.
특히 지난 5일 있었던 관련 사건 재판에서는 이준호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투자전략부문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배재현 전 대표가 원아시아파트너스 지모 회장에게 우호 지분이 돼 주면 SM엔터테인먼트의 굿즈사업권 등을 넘기겠다는 구두 약속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배재현 전 대표와 함께 카카오 그룹의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김범수 창업자 역시 다시금 수사 물망에 오른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검찰은 김 창업자의 추가 소환조사 여부나 구속영장 신청 등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당국의 칼날이 김범수 창업자를 겨눈 가운데, 김 창업자를 중심으로 쇄신과 인공지능(AI) 신사업을 준비하던 카카오의 성장 동력을 향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김범수 창업자는 지난해 12월 경영 복귀를 선언했다. 이후 약 2년 만에 직원들과 만나 "항해를 계속할 새로운 배의 용골을 다시 세운다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재검토하고, 새롭게 설계해 나갈 것"이라며 "카카오라는 회사 이름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각오로 임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모바일 시대를 바탕으로 성장한 카카오가 AI 시대에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카카오는 외부 감시 기관인 '준법과 신뢰 위원회(준신위)'를 신설했다. 김소영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삼아 출범한 준신위는 카카오 그룹의 윤리·책임 경영 정착을 돕는다는 구상이다.
김범수 창업자의 선언과 함께 카카오는 핵심 경영진 교체 작업을 시작했다. 본사에서는 임기가 만료된 홍은택 전 대표가 물러나고, 후임으로 정신아 대표가 취임했다. 기술력 강화를 위해 '먹튀 논란'으로 인한 비판을 감수하고 카카오뱅크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역임한 정규돈 CTO를 본사로 영입했다.
그룹 컨트롤타워인 CA협의체의 역할과 구성도 손봤다. 김범수 창업자와 정신아 대표가 공동으로 협의체 의장직을 맡고, 각각 경영쇄신위원장과 전략위원장직을 겸임하고 있다.
카카오는 'AI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 올해 SK텔레콤 CTO 출신의 이상호 최고AI책임자(CAIO)를 영입했다. 또한 연구·개발 자회사인 카카오브레인 조직을 본사에 흡수해 AI 전담조직 '카나나'를 만들었다.
그러나 김범수 창업자의 향후 거취가 불안해지면서 카카오가 변화와 혁신의 동력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 6개월 동안 카카오의 변화는 경영 일선에 복귀한 김범수 창업자가 이끌어 온 것으로 안다"며 "그동안 자율경영 중심의 회사였던 카카오가 김 창업자 주도로 '중앙집권형' 경영 체제를 잡아가는 상황에 그의 부재는 변화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범수 창업자가 경영 일선에 복귀하기 전 미래이니셔티브센터의 센터장 역할을 맡아 해외 진출 등에 나서왔던 만큼, 관련 영향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AI 시대를 맞아 AI 반도체 확보와 협력사 모색처럼 창업자의 의지가 필수적인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안건에 있어 뒤쳐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네이버의 경우, 최근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최수연 대표가 AI 반도체 대표 기업인 엔비디아를 만나 '소버린 AI' 등에 대한 논의를 나누기도 했다.
카카오는 주요 기업들이 앞다퉈 자체 생성형AI 모델을 내놓던 지난해 자체 모델 '코GPT 2.0'을 공개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하지만 번번히 공개를 미뤄 기술력에 대한 의구심을 낳았다. 올해 카카오는 단순한 모델 공개를 넘어서 AI를 실제 서비스에 적용해 기술력을 입증하고, 수익성에 기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특히 메시지 서비스인 카카오톡에 AI를 입혀 신기능을 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사법리스크로 인한 주요 경영진 상황이 이어지면, 하반기 출시 예정인 AI 서비스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오동환 삼성증권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정신아 대표가 내정된 지 반년이 넘었지만, 아직 신규 성장 전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AI 개발조직 통합이 진행됐지만, 신규 모델 출시 일정이나 AI 서비스의 방향이 공개되지 않아 투자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카카오는 대형 플랫폼의 '골목상권' 진출과 관련한 비판 여론으로 신사업의 수익 모델 도입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공격적인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사법과 규제 리스크가 해소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안재민 NH투자증권 연구원도 "AI를 주축으로 산업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빅테크의 공세까지 나타나고 있다"며 "카카오의 정체성과 향후 전망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라며 "이를 타개할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munn0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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