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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증 없이 인정된 '쪽지 메모·특혜 의혹'…'최태원 세기의 이혼' 대법원 판단은

  • 경제 | 2024-06-05 00:00

'쪽지 메모' 탓에 재산 분할 1.3조? 논란 여전
6공 특혜설도 뚜렷한 물증 없어
최태원 "SK 명예 위해 진실 바로잡겠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항소심 판결과 관련해 사용처 등이 입증되지 않은 '비자금 쪽지 메모'가 판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새롬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항소심 판결과 관련해 사용처 등이 입증되지 않은 '비자금 쪽지 메모'가 판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재산 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항소심 판결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판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비자금 쪽지 메모' 등 판단 근거와 관련한 의구심 섞인 시선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상고 의사를 밝힌 최 회장 측은 '쪽지 메모' 등 앞서 입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부분에 대한 진실을 바로 잡기 위해 적극 문제를 제기할 전망이다.

5일 법조계와 재계에 따르면 상고심에서는 노 관장이 재산 형성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고 인정된 부분에 대한 법리적 확인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노 관장의 부친인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SK그룹에 흘러 들어가 기업 성장의 마중물이 됐다는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과 관련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비자금 유입을 인정한 데에는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과 노 관장의 모친 김옥숙 여사가 '선경(현 SK) 300억'이라고 쓴 '쪽지 메모'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그 효력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신빙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 제기되는 것은 비자금 유입 정황만 인정됐고, 비자금 사용처 등에 대한 재판부의 구체적인 설명이 이뤄지지 않아서다. 비자금이 태평양증권 인수, 이동통신사업 진출, SK 주식 매입 등에 사용됐다는 노 관장의 주장이 일방적으로 고려됐을 뿐, 이 대목은 구체적 물증이 전혀 나오지 않아 단정 지을 수 없다는 평가다. 과거 노 전 대통령 비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에서도 비자금 유입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최 회장 측이 "비자금을 받은 적이 없고, 어음은 노 대통령 퇴임 후 활동비를 지원하겠다는 의미"라고 항변했음에도, 앞서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자금 쪽지 메모의 증거력과 함께 특혜 입증 부분도 주요 쟁점으로 거론된다. 항소심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이 일종의 보호막·방패막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는데, 마찬가지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판단이다. 실제로 재계는 SK그룹의 이동통신사업 진출 과정에 특혜가 있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이에 대해 SK그룹 일부 CEO는 "노태우 정부 당시 압도적인 점수로 제2이동통신사업권을 따고도 정부의 압력 때문에 일주일 만에 사업권을 반납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직접 경험한 일이기도 하다"며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어렵게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했다"고 밝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입장문과 '구성원에게 드리는 글' 등을 통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입장문과 '구성원에게 드리는 글' 등을 통해 "곡해된 진실을 반드시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더팩트 DB

최 회장 측은 특혜가 아니라 오히려 역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최 회장 측 변호인단은 "이동통신사업 진출을 포함해 각종 유무형의 혜택은 전혀 입증된 바 없으며, 오로지 모호한 추측만을 근거로 이뤄진 판단이라 전혀 납득할 수 없다"며 "SK그룹은 당시 사돈이었던 6공의 압력으로 각종 재원을 제공했고, 노 관장 측에도 오랫동안 많은 지원을 해왔다"고 말했다.

아울러, 사실 관계를 다투지 않는 법률심인 대법원 상고심에서 노 전 대통령, SK그룹을 둘러싼 의혹을 그대로 인용하더라도 '노 관장의 기여' 부분을 달리 해석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경영 활동을 하지 않은 노 관장이 직접 SK그룹 성장에 얼마나 기여했을지 불분명하다는 설명이다. 1심에서는 최 회장 보유 주식을 부친인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이 증여·상속한 특유재산(혼인 전 보유한 고유 재산)으로 보고 재산 분할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법조계 관계자는 "비자금 실체, 특혜 여부 외에도 재산 분할 범위가 타당한지 등 규명이 필요한 내용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항소심 판결과 별개로 경영 활동을 흔들림 없이 이어 나간다는 방침이다. 당장은 SK그룹 내 혼란을 수습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3일 임시 수펙스추구협의회에 참석해 항소심 판결이 그룹 가치와 역사를 심각히 훼손한 부분에 대한 그룹 차원의 입장을 정리하고, CEO들과 대책을 논의했다. 이후 사내 게시판에 '구성원에게 드리는 글'을 올려 임직원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는 "이 순간에도 국내외 사업 현장에서 촌음을 아껴가며 업무에 매진하는 구성원 여러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무겁다. 개인사에서 빚어진 일로 의도치 않게 걱정을 안겨드려 죄송하다"며 "저와 경영진을 믿고 업무와 일상에 전념해 주시길 부탁한다"고 전했다.

향후 최 회장은 진실 규명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천문학적 재산 분할액이 책정됐을 뿐 아니라, 항소심 판결을 통해 SK그룹의 성장이 경영진과 임직원의 땀이 아닌 오롯이 '정경유착'으로만 이뤄진 것처럼 비춰지는 데 대해 몹시 안타까움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지난 71년간 쌓아온 SK그룹 가치와 그 가치를 만들어 온 구성원들의 명예,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며 "SK그룹과 구성원 모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진실을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rock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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