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목적 암보험금 ELS 투자 확인
금감원, 설 연휴 뒤 2차 현장검사 예정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손실 사태와 관련해 상품 판매 과정에서 불완전판매가 확인됐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 원장은 이달 금융회사와 소비자 간 손실을 배분하는 분쟁 배상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원장은 4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아직 홍콩ELS 검사가 끝나진 않았지만 불완전판매 혹은 부적절한 판매가 사례가 있었다는 걸 확인했다"며 "암 보험금을 수령해 가까운 시일 내 치료 목적으로 지출해야 하는데 그런 걸 원금손실이 예상되는 곳에 투자했다거나, 해당 돈이 3~5년 내 원금보장이 안된다면 노후 보장이 안되는 그런 케이스가 확인됐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달 금융회사와 소비자 간에 손실을 배분하는 분쟁 배상안을 마무리할 예정"이라며 "공적 절차와 별개로 금융사들이 검사 결과에 따라 일부를 자율적으로 배상할 수 있는 절차를 병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향후 ELS 판매와 관련해서는 "시중은행의 ELS 판매 전면 금지를 포함한 다양한 것들을 검토 중"이라면서도 "이 경우 선택권이 침해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은행 소규모 점포까지 판매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혹은 자산관리를 하는 PB 조직이 있는 은행 창구를 통해 판매를 하는 게 적절한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지난 2일까지 예정됐던 홍콩 ELS 주요 판매사에 대한 1차 검사에 이어 설 연휴 이후에 홍콩 ELS를 판매한 KB국민은행 등 주요 판매사에 대한 추가 현장 검사에 나설 예정이다. 금감원은 1차 검사 결과를 설 연휴 전후로 정리한 뒤 추가 검사에 돌입한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달 8일부터 주요 판매사인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 등 은행 5곳과 한국투자·미래에셋·삼성·KB·NH투자·키움·신한투자 등 증권사 7곳을 대상으로 현장검사를 벌였다.
금감원은 이르면 다음 달 불완전판매 주요 유형과 비중, 판매 과정에서의 문제점 등을 담은 검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그에 따른 배상 기준안도 마련 중이다. 금감원은 고령층 등에 알기 쉽게 상품 설명이 됐는지, 투자자가 과거 고난도 상품에 투자한 경험이 있는지, 가입 채널이 어떻게 되는지 등에 따라 유형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최근 홍콩H지수가 급락하면서 ELS 투자자들의 원금 손실이 갈수록 불어나고 있는 상태다. 실제로 금감원에 접수된 분쟁조정과 민원 신청 건수는 이달 2일 기준 약 3000건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H지수는 홍콩증시에 상장된 중국기업 중 50개 종목을 추려 산출한다. H지수를 기초로 한 ELS는 통상 3년 뒤 만기가 됐을 때 가입 당시보다 H지수가 70% 아래로 떨어질 경우 하락률만큼 손실을 보는 구조다. 2021년 2월 1만2000선을 넘어섰던 H지수는 현재 5200~5300대로 주저앉았다. 현 지수대로라면 올해 상반기 손실이 5조~6조 원대 규모에 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현재 은행들은 잇달아 ELS 판매를 전면 중단했다. 5대 시중은행 중 홍콩 ELS 판매 규모가 큰 국민·신한·하나·농협은행이 창구 문을 닫았고, 규모가 작은 우리은행만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시장 상황을 더 지켜보고 판매 중단을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당국의 이번 ELS 배상 기준안 마련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앞서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와 2021년 라임펀드 사태 당시 당국은 손실액의 40~80%를 배상하라고 금융사에 권고했다. 적합성 원칙과 설명 의무 위반, 부당권유 등에 따른 기본 배상 비율을 정하고 투자자의 자기 책임 사유를 투자자별로 가감해 최종 배상 비율을 정하는 방식이었다.
다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번 ELS 배상 기준안 마련은 DLF 때보다 더 난이도가 높다는 분석도 있다. DLF는 독일 국채 10년물 채권의 만기수익률을 기초자산으로 두는 펀드로 ELS보다 훨씬 복잡한 구조인 데다 과거에 많이 팔렸던 상품도 아니었던 터라 금융사의 불완전판매를 입증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했다는 것이다.
불완전판매 여부와 배상 기준안이 발표되면 은행과 증권사들은 투자자와 자율 조정에 나서게 된다. 금감원의 분쟁조정은 강제성을 띠는 형식은 아니기 때문에 금융사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 투자자와 금융회사 간 소송전으로 번지게 된다. 은행권은 투자 손실액의 20~40% 수준에서 차등 배상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투자자들은 전액 배상을 요구하고 있어 장기간 난항이 예상된다.
한편, ELS는 기초자산으로 삼은 지수 등에 연계돼 특정 조건 충족 시 약정된 투자 손익이 결정되는 초고위험 파생결합 금융투자상품이다. 6개월마다 기초자산 가격을 평가해 조기상환 기회를 준다. 만기 시에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기준을 밑돌면 가격 하락률만큼 원금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에서 판매된 홍콩H지수 기초 ELS 상품에서는 올해 들어서만 2300억 원의 원금 손실이 확정됐다. 만기 도래한 원금 약 4353억 원 가운데 2057억 원만 상환됐으며 전체 손실률은 52.8%(손실액 2296억 원)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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