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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가 문제다⑥] 사법리스크에 발목 잡힌 윤경립…유화증권 흔들

  • 경제 | 2024-01-08 00:00

상속세 아끼려고 통정매매…항소심서 1심 파기
지난해 3분기 시장점유율 0.02% 그쳐 
수익성 개선도 첩첩산중


윤경립 유화증권 대표이사 회장(왼쪽 위)이 통정매매 혐의로 사법부 판단을 받고 있다. /유화증권 홈페이지 갈무리, 이한림 기자
윤경립 유화증권 대표이사 회장(왼쪽 위)이 통정매매 혐의로 사법부 판단을 받고 있다. /유화증권 홈페이지 갈무리, 이한림 기자

우리나라 대기업은 대부분 오너 일가가 직접 경영에 개입하는 '재벌 경영'을 하고 있다. 이는 최고경영자(CEO)가 하기 어려운 중대한 기업의 의사결정을 신속히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굴곡이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성장세를 이어가는 대기업들이 오너 경영의 긍정적 사례다. 하지만 오너가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거나 퇴행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오너 리스크'가 있는 기업을 차례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황원영 기자] 1962년 창립, 올해로 62주년을 맞는 고참급 증권사가 있다. 증권가 상징인 여의도 한복판에 지상 20층 규모의 사옥을 가진 유화증권이다. 한편으로는, 긴 역사가 무색할 만큼 사세가 초라한 회사이기도 하다. 유화증권의 직원수는 60명, 지점은 3개에 불과하다. 투자자들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M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도 갖추지 않았다. 시장점유율은 0.02%에 그쳐 증권사라는 수식어에 의문부호가 붙기도 한다.

이 회사가 최근 오너리스크로 위기에 처했다. 오너 2세인 윤경립 대표이사 회장이 통정매매 혐의로 사법부 판단을 받으면서다. 최근 보석 석방됐으나 그간 구속 재판을 받으면서 윤 회장의 경영폭이 좁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잇단 적자에 점유율 하락까지 겹치자 투자자들의 원성도 커지고 있다.

윤경립 회장은 창립자인 고(故) 윤장섭 유화증권 명예회장의 아들이자 유화증권 최대주주다. 1957년생인 윤 회장은 서울고,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뒤 1984년 유화증권에 입사했다. 4년 뒤인 1988년 업무부 차장, 1989년 이사, 1991년 상무이사, 1995년 전무이사를 차례차례 거치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1997년 유화증권 대표이사 부사장에 오른 윤 회장은 3년 만에 유화증권 대표이사 사장 명함을 달며 전권을 쥐었다. 지난해 11월말 기준 유화증권 발행주식 7417만8840주 중 윤 회장이 17.64%(1308만2347주)를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주식 취득 과정에서 발생했다. 윤 회장은 윤장섭 명예회장으로부터 회사 지분을 넘겨받으며 수차례 통정매매한 혐의로 지난해 실형을 선고받았다. 윤 회장은 지난 2015년 11월부터 2016년 6월까지 부친이 소유한 주식 약 80만주(약 120억 원 규모)를 매수했는데, 이 과정에서 자사 임직원들을 동원해 가격과 물량을 사전에 협의하는 등 통정매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통정매매는 당사자가 부당이득을 취득할 목적으로 증권 거래시 거래 시기와 수량, 단가 등을 사전에 담합, 협의하는 행위를 말한다. 주식시세를 조정함으로써 시장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어 현행 자본시장법은 통정매매를 부정행위로 보고 금지하고 있다.

당시 유화증권은 자사주를 공개매수한다고 공시한 뒤 실제로는 사전에 거래 시기·수량·단가를 협의해 거래했다. 윤장섭 명예회장의 매도 주문에 대해 통정매매로 즉시 매매계약이 체결되도록 하고, 일반인의 매도 주문은 성사되지 않게 조작했다.

윤경립 회장은 윤장섭 명예회장으로부터 회사 지분을 넘겨받으며 수차례 통정매매한 혐의를 받는다. 사진은 윤장섭 명예회장이 2015년 11월11일~17일까지 단행한 주식 매매. 이 중 12일, 16일, 17일 장내매도한 주식을 윤 회장이 고스란히 장내매수했다. /전자공시시스템 갈무리
윤경립 회장은 윤장섭 명예회장으로부터 회사 지분을 넘겨받으며 수차례 통정매매한 혐의를 받는다. 사진은 윤장섭 명예회장이 2015년 11월11일~17일까지 단행한 주식 매매. 이 중 12일, 16일, 17일 장내매도한 주식을 윤 회장이 고스란히 장내매수했다. /전자공시시스템 갈무리

실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윤장섭 명예회장이 2015년 11월12일 10만주(주당 1만4500원)를 장내매도하자 윤 회장이 이 주식을 그대로 장내매수하며 받아냈다. 같은 달 17일에는 부친이 4만9442주(주당 1만4400원)을 매도하자 윤 회장이 5만주를 1주당 같은 가격에 사들였다. 이 같은 형태의 거래가 수차례 이뤄진다. 유화증권도 이듬해인 2016년 4월까지 윤장섭 명예회장이 매도한 주식을 자사주로 취득했다.

검찰은 윤 회장이 147억 원에 달하는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의심하고 2022년 12월 그를 불구속 기소했다.

지난해 8월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주식시장에서 일반 투자자들로부터 자기주식을 적법하게 취득할 것처럼 공시한 다음 실제로는 통정매매를 통해 부친 주식을 매수했을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시세조종까지 하는 등 기망적 방법을 사용해 부당한 사적이득 취득했다"며 "증권사의 대표이사로서 범행이 증권시장의 공정성과 투자자의 신뢰를 침해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직업윤리를 저버렸다"고 꼬집었다. 이에 윤 회장에게 징역 1년6개월에 벌금 5억 원을 선고하고 구속 수감했다.

윤경립 회장이 구속되면서 유화증권은 오너 공백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됐다. 이에 회사는 지난 2022년 9월 고승일 유화증권 고문을 대표이사로 선임하며 경영 안정에 나섰다. 유화증권은 그간 윤경립 단독 대표이사 체제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2022년 6월 금융위 고발로 윤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뤄지자 3개월 만에 윤경립·고승일 각자 대표이사로 체제로 전환했다.

아울러 오너 3세의 지분 확대가 이뤄졌다. 윤 회장의 장남인 윤승현 씨는 지난해 3월 유화증권 보통주 5000주를 장내매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지분을 늘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말 기준 윤 씨의 지분율은 4.88%(362만1750주)에 이른다. 1989년생인 윤 씨는 유화증권에서 근무하고 있다. 경영일선에 나서진 않았지만, 오너의 사법리스크가 불거지자 후계승계 작업에 속도가 붙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가 1심 판결을 파기하면서 윤 회장은 남부지법에서 다시 1심 재판을 받게 됐다. 지난해 11월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서울고법 형사12-1부(김길량 진현민 김형배 부장판사)는 원심판결을 직권으로 파기했다. 예전 자본시장법상 법정형이 징역 20년 이하, 벌금형이라 법원보직법에 따라 합의부에서 심리할 만한 자료를 찾을 수 없다는 게 이유다.

아울러 윤 회장은 2심 선고를 앞두고 청구한 보석이 인용돼 재구속도 면하게 됐다. <더팩트> 취재 결과 윤 회장은 지난해 11월 22일 보석 인용으로 구속된 지 약 11개월 만에 석방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불구속 상태로 남은 재판을 받고 있다.

유화증권은 지난 1987년 8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사진은 유화증권의 최근 한 달간 주가 추이.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 갈무리
유화증권은 지난 1987년 8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사진은 유화증권의 최근 한 달간 주가 추이.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 갈무리

오너리스크에 실적은 내리막길이다. 윤 회장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직후 2022년 3분기 유화증권은 영업수익 180억9200만 원, 영업이익 7억4900만 원을 기록했다. 1년 전과 비교해 3.2%, 90.4% 줄어든 수준이지만, 손실은 면했다. 그러나 같은 해 4분기 28억4000만 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지난해에도 실적 개선을 이뤄내지 못했다. 유화증권은 지난해 1분기 85억8500만 원 영업이익을 거뒀으나, 2분기 128억6400만 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내면서 마이너스 성적표를 썼다. 상반기 기준으로는 42억7900만 원, 3분기 누적으로는 33억1100만 원의 영업손실을 각각 기록했다.

실적 부진에 더해 시장지배력도 하락했다. 분기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유화증권의 거래점유율은 0.02%에 불과하다. 윤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불거진 2022년 0.05%와 견주면 0.03%포인트 하락했다. 점포수 열세에 M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 등도 갖추지 않아 투자자들의 접근성이 떨어져 사실상 증권사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유화증권은 지난 1987년 8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상장한 지 37년이 흘렀으나, 투자자들에게 그리 조명받는 종목은 아니다. 유화증권은 지난 4일 전 거래일 대비 1.27% 내린 2335원에 장을 닫았다. 52주 최고가는 2485원, 같은 기간 최저가는 2085원으로 큰 폭의 변동 없이 2000원대에서 움직이는 중이다. 지난해 12월19일부터 이달 4일까지 10거래일간 투자자별 거래실적을 보면 기관과 외국인이 각각 100주, 502주를 순매도하고 개인이 3602주를 순매수하는 등 거래량도 미미한 수준이다.

그나마 주가 흐름을 개미들이 견인하고 있지만, 오너리스크에 실적 부진까지 겹치면서 투자자들의 원성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투자자들은 "배당수익률이 5%에 근접한데도 주가를 보면 속이 울렁거린다", "100억 원대 손실(지난해 2분기)이라니 무리하게 투자했다가 실패한 게 아니냐", "이러다 배당도 못 받겠다" 등의 원성을 쏟아내고 있다.

오너리스크에 실적 악화, 시장점유율 하락까지 겹치면서 유화증권 수익성 개선 여부는 불투명하다는 평가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인 증권사와 달리 자기매매, 임대 수익 등이 주를 이루는 회사로 투자자 관점에서는 회사가 현재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 있다"며 "단순히 현재 상황으로만 단정할 수는 없으나 법적 분쟁이 남아 있는 등 단기간에 개선 가능성도 크게 보이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상장 증권사임에도 시장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볼 수 없어 밖에서 어떤 비즈니스를 펼치는지 의문"이라며 "시장영향력이 워낙 미미해서 증권시장 내에서는 존재감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오너리스크에 따른 실적 개선방안이나 주가 부양책과 관련해 유화증권 관계자는 답변을 회피했다.

won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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