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 선진화 필요성 제기
KT&G "연임 도전장 여부 알 수 없어"
[더팩트|이중삼 기자] 올해로 9년째 담배회사를 이끌고 있는 사장이 있다. 1993년 회사 공채로 입사해 30년 넘게 근무해오며 차근차근 승진을 거듭한 끝에 2015년 사령탑에 올랐다.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며 회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데 내년 3월 임기만료를 앞두고 다시 한 번 연임 도전장을 내밀지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아직 본인이 직접 의사 표명을 한 적은 없다. KT&G를 이끌고 있는 백복인 사장 얘기다.
백복인 사장은 2015년 사령탑에 올라 9년째 KT&G를 이끌고 있는 '최장수 CEO'이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담배인삼공사 시절까지 범위를 넓혀도 9년 이상 재임한 사장은 단 한 명도 없다. 한마디로 장기집권 중이다. 이번에도 연임 도전장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정부가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 선진화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사회 분위기도 한 사람이 계속 연임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지고 있는 현 시점에 백 사장이 또다시 나서기가 쉽지 않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 윤석열 정부 주인 없는 회사 경영진 사실상 '셀프 연임' 예의주시
일단 후보로 나설 수 있는 판은 깔린 것으로 보인다. 그 근거는 KT&G 정관에서 있다. 제26조(사장·이사의 선임 등)·제32조(사장후보추천위원회)에 의하면 사장은 사장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자 가운데 주주총회에서 선임한다고 돼 있다. 사장후보추천위원회는 6명 이내 사외이사와 현직사장 1명으로 구성돼 있다. 다만 현직사장이 사장후보로 추천되기를 원하거나 유고시에는 사외이사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사외이사 가운데 1인을 추가로 사장후보추천위원으로 선임해 7명 이내로 사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게 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의하면 현재 KT&G 사외이사는 김명철·고윤성·손관수·이지희·임민규·백종수 등 총 6명이다. 임기만료 기간은 각각 다르지만 짧게는 2024년 정기주주총회일, 길게는 2026년 정기주주총회일이다. 정리하면 백 사장 임기가 끝날 때까지 6명의 사외이사도 이사직으로 활동한다는 것이다. 실제 후보로 추천돼 나오더라도 내년 주주총회에서 연임 여부가 결정되겠지만 본인이 의지만 있다면 후보로 추천되는 일은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 KT&G 관계자는 <더팩트> 취재진과 전화통화에서 "정관에 사외이사 6명 이내라고 돼 있는데 현재 사외이사가 6명이니 모두 사장후보추천위원회 대상이 된다"며 "다만 현재 사외이사 6명이 그대로 사장후보추천위원이 되진 않는다. 대상이 될 뿐이다. 이사회 결의를 한 번 더 거쳐 사장후보추천위원을 선정한다. 또 6명 모두 위원이 되지 않고 2명, 4명으로 선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주인 없는 회사 경영진의 사실상 '셀프 연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점이 강력한 변수다.
◆ 현 3연임 아닌 2.5연임 또 도전하면 4연임 아닌 3.5연임 시각도
일각에서는 백 사장이 '3연임'에 이어 '4연임'에 출사표를 던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시각차이가 존재한다. 민영진 전 KT&G 사장이 2015년 7월 돌연 사의 표명을 밝히며 사장 자리에 공석이 생겼다. 당시 KT&G 측은 민 전 사장의 결정에 대해 "본인의 책임과 역할을 다했다고 판단해 결심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 회삿돈을 빼돌렸다는 의혹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것에 대한 압박으로 사의 표명을 한 것이라는 추측이 돌기도 했다.
KT&G는 정관에 따라 한 달 내로 사장후보추천위원회를 꾸려 사장 후보자 추천 작업에 착수했다. 이 때 거론된 사람은 당시 함기두 수석부사장과 백복인 부사장이다. 사장후보추천위원회는 △경영·경제에 관한 지식 △경영실적과 기간 △기타 사장으로서의 자질과 능력 등을 종합 평가한 끝에 백 부사장을 2015년 10월 사장으로 선임했다. 때문에 3연임이 아닌 2.5연임, 내년에는 4연임 도전이 아닌 3.5연임이라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백 사장이 다시 도전장을 내는 데에는 속마음이 복잡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윤석열 대통령은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를 선진화할 필요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소유분산기업은 소유지분이 잘게 분산돼 있어 주인이 없는 기업을 말한다.
윤 대통령은 "과거 정부 투자기업 내지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되면서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은 소위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것이 작동돼야 한다"며 "(소유분산기업의 대표이사들이 장기 연임하는 문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투명하지 못한 지배구조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지난해 12월 국민연금도 소유분산기업의 불투명한 '황제 연임'을 문제점으로 꼬집으며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는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기관투자가들의 의결권 행사지침을 말한다. 윤 정부 기조가 소유분산기업의 투명성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9년째 사령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백 사장이 쉽사리 도전하기에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KT&G 최대주주가 중소기업은행으로 변경된 점도 부담 요소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의하면 중소기업은행은 KT&G의 지분 6.93%를 가진 최대주주다. 국민연금공단은 6.31%다. 중소기업은행의 최대주주는 기획재정부로 59.5% 지분을 가지고 있다. 2018년 중소기업은행은 절차상 문제와 경영 공백 리스크 등을 이유로 백 사장의 연임을 반대했다. 당시 주주총회 표결에서 승리하며 연임에 성공했지만 만약 내년 표결에서 중소기업은행과 국민연금이 반대 입장을 같이 할 경우 연임에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게 된다. 특히 사회 분위기에 더해 올해 상반기 실적이 하락한 점을 들어 소액주주들까지 반대 입장을 표한다면 연임 여부는 불 보듯 뻔하다.
실제 수익성 악화는 백 사장 연임을 반대할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상반기 영업이익 감소 수치가 KT&G 경영진 유지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실적 감소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국민연금이 KT&G의 대주주인 만큼 단순 감소 수치로 경영진의 능력 부족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KT&G 관계자는 "현재로선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고 알 수도 없다"며 백 사장의 연임 도전 여부에 대해 선을 그었다.
◆ 올해 상반기 실적 하락…2027년 매출 10조 원 선포
연임 도전 여부와 별개로 백 사장은 KT&G를 성장 기업으로 이끌었다. 오는 2027년까지 매출 10조 원 달성이라는 목표도 세웠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의하면 KT&G 최근 5개년 매출은 △4조4715억 원(2018년) △4조8076억 원(2019년) △5조553억 원(2020년) △5조2283억 원(2021년) △5조8514억 원(2022년)을 기록했다. 다만 올해 상반기 매출은 2조7416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매출 2조8200억 원) 대비 784억 원 줄었다. 영업이익은 △1조2534억 원(2018년) △1조3746억 원(2019년) △1조4731억 원(2020년) △1조3383억 원(2021년) △1조2676억 원(2022년)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5626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606억 원)보다 980억 원 줄었다. 원부자재 가격 상승이 수익성 저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KT&G는 분석했다.
백 사장은 올해 초 오는 2027년까지 약 4조 원을 투자해 매출 10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는데 현재 해외궐련, 궐련형 전자담배 등 사업 실적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일례로 해외권련사업 부문은 인도네시아 등 해외법인의 커버리지 확대와 해외 생산 거점화 전략을 통해 매출이 성장했다. 중남미·아프리카 시장 역시 현지 모니터링을 토대로 영업활동을 벌이는 등 시장 기반을 다지고 있다. 국내 차세대 담배사업 부문은 시장 규모 확대와 독자 플랫폼 중심 스틱 경쟁력 강화 효과로 올해 2분기 디바이스 점유율 약 61%(CVS 기준), 스틱 점유율 약 47%(CVS 기준)를 기록하는 등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에서 지속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자세히 보면 올해 2분기 기준 궐련형 전자담배 스틱 판매 수량은 36억3000개비로 지난해 동기 대비 43.5% 늘었다. 해외 궐련형 전자담배 스틱 판매 수량은 현지 수요 증가에 힙입어 같은 기간 대비 72.7% 성장한 22억1000개비를 판매했다. 현지 법인 생산 물량을 포함한 해외 궐련 매출은 2655억 원을 기록했다. 수출 궐련 매출은 중동·중남미 등 주요 권역 가격 인상 정책을 통해 지난해 동기 대비 5.9% 증가한 1529억 원을 올렸다. 국내 궐련 매출은 4266억 원을 달성했다. KT&G에 의하면 국내 궐련시장 기준으로 2021년에는 64.6% 점유율에서 2022년 65.4%로 증가했고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는 65.5%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KT&G 관계자는 "하반기에도 그룹의 3대 핵심 성장사업인 NGP·해외궐련·건기식 부문의 경쟁력 강화를 통한 기업가치 제고에 집중할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백 사장은 영남대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충남대 경영대학원 졸업, 서울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 KT&G 전신인 한국담배인삼공사에 입사해 △글로벌본부 터키사업팀장 △마케팅본부장 △전략기획본부장 △생산R&D부문장 △부사장 등을 지낸 뒤 2015년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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