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군분투' 반도체·자동차 등 미국서 실리 챙겨야
중·러 무역 보복 가능성 커져…대응책 마련 '시급'
[더팩트 | 서재근 기자]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성사된 한미 정상회담 일정이 본격화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5대 그룹 총수는 물론 다수 대기업 총수들도 어김없이 경제사절단으로 동참했다.
지난 2011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 이후 무려 12년 만에 이뤄진 우리 정상의 국빈 방미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기대 못지않게 우려도 섞여 있는 분위기다. 최근 들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말 그대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혼돈'이기 때문이다.
'대만해협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 이후 중국 정부가 '말 참견을 말라', '대만 문제로 불장난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불에 타 죽을 것'이라는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양국 간 냉기류가 형성됐다. 여기에 정부가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전제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러시아도 발끈했다.
사실상 '친(親)미·일', '반(反)중·러' 구도가 형성된 모양새지만, 미국의 노골적인 자국 우선주의 산업정책 기조 등을 고려할 때 대미 외교도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여전히 미국 시장에서 전기차 보조금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앞에는 '일정 기준 이상의 초과수익 반납', '중국 등 우려 국가에 10년간 반도체 투자 금지' 등 압박 조항들이 빽빽하게 놓여있다.
심지어 최근 미국 정부는 중국이 마이크론의 대중국 반도체 판매를 금지할 경우 우리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에 D램을 수출해 중국의 수요 부족분을 메우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이번 방미 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우리 기업에 주어진 최대 미션으로 한반도 안보와 더불어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 등 주요 경제 현안에 대한 해법 찾기가 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에 주어진 과제는 또 있다. 바로 우리 기업들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강대국들의 경제패권이라는 소나기를 막아주는 '슈룹(우산)'이 돼주는 일이다.
이미 우리 기업은 강대국들의 일방적이고 노골적인 경제보복에 무방비로 피해를 입은 전례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로 촉발된 중국의 무역 보복이다. 사드 배치 이후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이렇다 할 핑계조차 듣지 못한 채 수년간 중국 현지 시장에서 보조금을 받지 못했고, 그 사이 현지 업체들에 점유율을 내줬다. 또한, 한때 중국 내 1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한 롯데마트는 중국 무역 보복 조치 3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정부의 친미 외교 기조 속에 중국은 물론 이제는 러시아마저 무역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러시아의 우쿠라이나 침공 때도 '철수' 대신 '버티기'에 나섰던 현대차의 현지 판매량은 이미 급감했다. 유럽기업인협회(AEB)에 따르면 현대차의 올해 1분기(1~3월) 러시아 판매량은 738대다. 이는 전년 대비 98% 줄어든 수치다. 시장 점유율 역시 같은 기간 10.8%에서 0.5%로 쪼그라들었다.
미국이라고 안심할 수 없다. 최근 공개된 IRA세부 지침에 따른 최대 7500달러 보조금 지급 대상 전기차 명단(16개 모델)에 미국을 제외한 그 어느 나라의 완성차 제조사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만 보더라도 미국 정부의 산업 정책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수출이 나라 경제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 하는 상황에서 갈수록 커져만 가는 강대국의 자국 중심주의와 보호무역 기조는 가장 심각한 리스크 요인일 수밖에 없다. 이미 한국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수출액에서 한국 수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1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인 2.74%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기업들의 자구 노력만으로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정부는 반드시 이번 국빈 방문과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핵심적인 경제 동맹국임을 확실히 각인시키고, 가시적인 성과물을 가져와야 한다. 성과 없는 편들기는 부질없는 '외사랑'일 뿐이다.
아울러 정부는 안보를 핑계 삼아 우리 기업을 상대로 한 노골적인 경제 보복 조치에 대해서는 그 대상의 구분 없이 단호하고 분명하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
likehyo85@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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