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노조, 전보발령은 명백한 불법 주장
법조계, 근로자 불이익이 경영상 이전 필요성보다 커야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KDB산업은행 본점의 부산 이전을 둘러싸고 노사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산업은행 노동조합(노조)은 본점 직원 수십 명을 부산 등 동남권에 발령낸 것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올 연말까지 산업은행 본점의 부산 이전을 위한 지방이전 계획안 승인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산업은행 노조의 본점의 부산 이전에 따른 전보발령은 불법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질지 <더팩트>가 법조계 실무자와 자세히 들여다봤다.
산업은행 노조는 지난달 8일 오전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과 관련해 '전보발령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제출했다. 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심문 기일이 3월 중으로 예정돼 있는데 심문 기일 자체가 미뤄질 수 있을 것 같다"며 "법무법인과 계속 얘기를 하고 있고 명백한 불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산업은행은 지난해 11월 열린 이사회에서 지역성장부문을 확대·개편하고 해양산업금융2실을 신설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직제규정 개편을 단행했다. 같은날 강석훈 산은 회장은 해당 부서들의 소재지를 '부산'으로 정하는 내용의 '동남권 영업조직 개편(안)'을 결재했다.
산업은행은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 소재한 해양 산업금융실도 기존 1실 체제에서 2실 체제로 개편하고 조선사 여신 등 해양산업 관련 영업자산을 이관하는 등 영업조직도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본점 직원도 정기인사를 통해 상당수 전보 발령을 실시했다.
이에 관해 노조는 "강 회장은 업무상 필요성이 없음에도 '본점을 서울시에 둔다'는 산업은행법 제4조 1항을 위반해 본점 부서를 부산으로 이전하고 직원 45명을 발령내는 등 불법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노조는 "이사회를 통한 직제규정 과정에서 해당 부서의 소재지까지 결정할 수 있었음에도, 사외이사들이 해당 부서의 소재지를 부산으로 정하는 것은 산업은행법 위반이라고 문제를 제기해 어쩔 수 없이 부서 소재지를 회장 결재로 별도 진행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가처분신청서와 함께 산업은행 직원과 가족 2700여명이 날인한 탄원서와 산업은행의 전보발령 효력을 정지할 것을 촉구하는 현역 국회의원과 정당 대표 17인의 의견서도 법원에 제출했다.
◆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에 따른 전보발령은 불법?
노조 측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유한) 엘케이비앤파트너스 소속 변호사는 전보발령 효력정지 가처분신청과 관련해 "한국산업은행법 제4조 제1항과 한국산업은행 정관 제3조에 따르면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두도록 명시하고 있다"며 "한국산업은행의 직제규정 제11조에 의하면, '지역성장 부문(지역성장지원실 및 동남권투자금융센터)'은 모두 본점의 부점에 해당한다. 직제규정상 본점에 속하는 부점(내지 기능적으로 본점의 업무를 수행하는 부점)을 서울 외의 지역으로 이전 내지 설치하기 위해서는 한국산업은행법의 개정과 정관의 변경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의사결정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상태에서, 강석훈 회장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국산업은행의 내부 구성원들과 별다른 협의나 소통도 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본점의 이전을 추진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며 "특히 한국산업은행 내부적으로도 이사회·주주총회와 금융위원회의 동의를 받아 정관을 수정하는 작업도 전혀 거치지 않은 것도 문제다. 특히 한국산업은행이 금융당국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2028년까지 이전을 마치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 회장의 임기(2025년까지) 중 회장 집무실을 옮길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결국 강석훈 회장은 자신만 '쏙' 빠진 채 직원들에게만 걱정을 떠안긴 셈"이라고 꼬집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한국산업은행 정관 제3조 2항에 '이 은행은 필요한 곳에 지점, 대리점, 그 밖의 영업소 또는 사무소를 들 수 있다'라고 명시돼 있어 본점의 완전 이전이 아닌 일부 부서의 이전이 정관에 따라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엘케이비앤파트너스는 "한국산업은행법과 한국산업은행 정관은 본점의 개념에 대해서는 별도로 정의하고 있지 않으나, 강학상으로 본점이란 '영업상의 주축이 되는 기업활동 전체의 지휘·명령의 중심점으로서의 지위를 가진 영업소'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법원은 '회사의 본점을 회사의 중추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진 장소가 어디인지, 총무, 재무, 회계 등 주된 업무와 전반적인 사업이 수행된 곳이 어디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대법원 2017. 12. 21. 선고 2017두63795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7. 9. 20. 선고 2017누33246 판결 등 참조).
따라서 본점이란 '기업활동 전체의 지휘·명령의 중심점으로서 중추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는 해석이다. 한국산업은행 업무분장세칙 제5조에 따르면, 지역성장지원실은 '영업기획 및 지원', '지방경제활성화', '점포기획', '사전적 구조개선업무', '기업외대출 기획', '기업외대출지원 및 사후관리',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 업무' 등으로 대별되는 총 40개의 사무를 분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엘케이비앤파트너스는 "이러한 담당 사무의 성격에 비추어 볼 때 지역성장지원실은 본점의 지휘를 받으며 부분적으로만 독립된 기능을 수행하는 지점과 달리 은행의 영업활동 전반을 총괄하고 기획하는 일을 주된 사무로 하는 전형적인 본점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법조계, 가처분 인용 가능성 있어…근로자 불이익이 경영상 이전 필요성보다 커야
법조계에서는 근로자들의 불이익이 경영상 이전의 필요성보다 더 크고 중대하다고 본다면 가처분이 인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최종연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일반적인 전보발령 법리에 비춰봤을 때 경영상의 필요성이 근로자 개인의 생활상 불이익보다 크거나 절차적인 하자가 있으면 전보발령을 무효로 본다"며 "노조 측에서 문제 삼을 수 있는 것은 대다수 근로자들에 관해 산업은행이 부산으로 이전하는 것에 대한 일체의 협의 절차가 없었고 전혀 예측 가능하지 않은 영역이며, 근로계약서 상에 '근무지를 서울로 한다', '여의도에 위치한 산업은행 본점으로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면 해당 근무지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부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변호사는 "본점이 부산으로 이전하게 되면 노사 교섭 중인 사안에 관해서 더 이상 교섭이 무의미해지고 근로자들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된다는 측면에서도 지적될 수 있고 근로자들의 불이익이 경영상 이전의 필요성보다 좀 더 크고 중대하다고 본다면 가처분이 인용될 가능성도 있다"며 "다만 법원 입장에서는 어떤 정책적인 판단에 관해 근로 관계만을 토대로 이전 자체를 금지하는 가처분을 내리기에는 부담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전보발령에 따른 퇴직 결정의 경우 배상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놨다. 최 변호사는 "전보발령을 거부하면서 퇴직을 하는 경우는 스스로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보상받을 수 없으며, 전보발령을 불이행하고 거부하는 것도 별도의 징계 사유가 되고 영업상 손실을 끼쳤다고 하면 손해배상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로펌 소속 법조계 관계자는 "전보 발령의 경우 법에서 업무상 필요성과 당사자가 동의했는지를 본다"며 "산업은행 측에서 업무상 필요성을 명확히 증명하고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통한 판단을 한다면 재판부에서도 그에 따른 결정을 할 것 같다. 생활상 불이익이 업무상 필요성 보다 크다면 정당하다는 판단이 나올 수 있어 긴 다툼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 30일 진행된 업무보고에서 올 연말까지 산업은행 본점의 부산 이전을 위한 지방이전 계획안 승인을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융위 관계자는 "산업은행을 지방 이전 대상 기관으로 지정해야 하고 구체적인 지방 이전 계획안을 만들기 위한 자료를 준비하고 있는 단계"라며 "1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때에도 정부와 노조 간의 여러 가지 협의 같은 것들이 있었고 계획안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 직원들에 대한 보상 지원 등을 노조와 얘기하지 않고 진행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노조가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노조와 사측, 정부가 얘기를 하는데 조금 시간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산업은행 측이 이전안 준비를 거의 다 한 것으로 안다"며 "이전안이 제출되는 대로 상정을 위한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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