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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반도체법, 경제패권"…삼성·SK, 해법 찾기 '난항'

  • 경제 | 2023-03-03 11:52

미 반도체패권 …"한국 기업, 득보다 실 많을 수도"
업계 "중국 사업 축소, 단순한 문제 아냐"


미국이 최근 발표한 반도체지원법 세부조항에 한국 기업에 불리한 내용들이 다수 포함되면서 업계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1년 4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열린 반도체 공급망 복원에 관한 CEO 화상 회의에 참석해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미국이 최근 발표한 반도체지원법 세부조항에 한국 기업에 불리한 내용들이 다수 포함되면서 업계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1년 4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열린 반도체 공급망 복원에 관한 CEO 화상 회의에 참석해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제조사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미국이 최근 발표한 반도체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 세부조항에 △일정 기준 이상의 초과수익 반납 △중국 등 우려 국가에 10년간 반도체 투자 금지 등 사실상 투자 기업을 압박하는 조건들이 제시됐기 때문이다.

◆ 미국 정부 '반도체지원법' 사실상 '기울어진 운동장'

3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최근 발표한 반도체지원법의 일부 조항이 한국 기업에 너무 불리한 조항이 많아 '기술 노출'이나 '정보 공개' 위험으로부터 과도하게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8월 발효된 미국 반도체지원법은 반도체 시설 투자 인센티브를 포함한 527억 달러(약 69조 원)의 재정지원과 투자세액공제 25%를 담은 법안이다.

미국 상무부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발표한 반도체지원법 보조금 지급 요건은 △경제·국가안보 △상업적 타당성 △재무 상태 △투자이행 역량 △인력개발 △기타 파급효과 등 크게 6가지다.

해당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미국에 투자하는 한국 기업은 애초 미국 정부에 제출한 실적 전망치보다 더 많은 이익을 거두면 보조금의 최대 75%를 토해내야 하고, 중국에 향후 10년 동안 반도체 생산시설 증설을 할 수 없다. 아울러 수익을 산출하고 심사하는 과정에서 기업 재정 여력과 현금 흐름, 고용계획 등 기업 내부 정보를 고스란히 공개해야 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미국 정부는 겉으로는 '보조금'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외국 기업의 자국 투자 유치'라는 목적을 넘어선 요구를 하고 있다"며 "보조금은 '미끼'일 뿐이며, (한국 기업이)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 역시 전날(2일) '미국 반도체 재정 인센티브의 두 가지 함정'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반도체 생산 공정은 제조기업의 극비 사항으로 메모리 반도체는 원가경쟁력, 로직반도체는 성능 경쟁력과 직결되는 부분이다"며 "경쟁사와의 공정 격차가 중요한 반도체 산업에 있어 정보 공개는 치명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제조사들은 미국 정부의 반도체지원법과 관련해 공식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해법 찾기에 고심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더팩트 DB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제조사들은 미국 정부의 반도체지원법과 관련해 공식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해법 찾기에 고심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더팩트 DB

◆ 삼성·SK '진퇴양난'…"중국 비중 줄이기 쉽지 않아"

중국을 타깃으로 한 가드레일(안전창지) 조항도 반도체 기업에 부담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이달 내 미국 정부가 해당 조항의 세부 규정을 공개할 예정이지만, 이미 업계에서는 신규 공장 건설, 생산라인 증설 등 대중국 투자에 대해 페널티를 적용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중국 투자 비중을 줄이는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중국 시장은 국내 반도체 수출의 약 40%를 차지한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현지에서 생산하는 낸드플래시와 D램 물량 비중은 전체의 절반 수준에 이른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운영하는 낸드플래시 공장에서 전체 생산량의 40%를, SK하이닉스는 우시 D램 공장에서 전체 물량의 50%를 만든다.

업계에서는 미국 정부의 반도체지원법 가이드라인과 관련해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원론적인 대답을 내놓고 있지만,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하는 분위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특정 기업에서 견해를 밝힐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며 "다만, 이번 미국의 반도체지원법에서 노골적으로 중국을 겨냥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상당한 부담 요인이다. 만일 (미국의) 지침을 따를 경우 지난 2017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로 촉발한 무역 보복과 같이 중국에서 미국에 직접 맞대응하는 방식이 아닌 한국 기업을 타깃으로 맞대응에 나설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2일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의 반도체지원법과 관련해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2일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의 반도체지원법과 관련해 "우리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는 사항에 대해선 유관 부처·업계와 소통하며 필요한 외교적 지원을 해나갈 것이다"고 밝혔다. 임 대변인이 지난달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튀르키예 관련 브리핑에 참석해 발표하는 모습. /이동률 기자

◆ 업계 "민간 자구노력 한계…정부 적극 나서야"

미국의 이 같은 조치와 관련해 업계에서는 "사실상 보조금을 빌미로 한 미국의 '반도체패권'인 만큼 기업들의 자구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도 2일 미국 정부가 공개한 반도체지원법 가이드라인에 관해 "우리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는 사항에 대해선 유관 부처·업계와 소통하며 필요한 외교적 지원을 해나갈 것이다"고 밝혔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앞으로 보조금을 신청하는 기업과 미국 행정부 간 보조금의 규모와 지원 조건에 대한 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전문연구원은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여러 항목과 조항에서 지나친 규제가 포함돼 있다"며 "문제는 이 같은 규제 조항에 관해 기업에서는 사실상 특별히 대응할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외교 채널을 활용해 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정부가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에 따른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자동차, 배터리, 에너지 업계와 공동으로 '美 IRA 대응 민관 합동 TF'를 구축했듯이 이번 반도체지원법 역시 민관이 유기적으로 소통하고 머리를 맞대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울러 정부에서도 외교적인 역할 외에도 반도체 관련 법안의 조속한 처리 등 기업들이 제대로 경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을 실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likehyo85@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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