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김병준 회장직무대행 추대
정경유착 논란에 "그 고리, 반드시 끊겠다"
관건은 4대 그룹 재가입…"신뢰 회복 선행돼야"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과거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까. 국내 민간 경제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재계 맏형' 자리를 되찾기 위해 12년 만에 회장을 바꾸고 새로운 체제를 구축했다. 단체를 이끌게 된 인물은 현 여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낸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이다. 기업 경영 경험이 전혀 없는 정치인 출신이 전경련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의심의 눈초리가 여전한 가운데, 그의 최대 과제로는 국민 신뢰 회복 등 4대 그룹 재가입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일이 꼽히고 있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전경련은 전날(23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김병준 회장직무대행(6개월) 체제의 시작을 알렸다. 회장직무대행 추대 안건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후 김병준 직무대행은 "선배 기업인들이 전국경제인연합회란 이름에 흔히 쓰이는 명칭인 '기업인'이 아닌 '경제인'이란 단어를 쓴 건 '경세제민', 즉 세상을 이롭게 하고 국민을 돕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숭고한 의지를 담은 것"이라며 "이런 창업자들의 마음을 되새기며 전경련의 환골탈태를 이끌겠다"고 밝혔다.
김병준 직무대행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 정책실장과 교육인적자원부장관 겸 부총리를 지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됐으나, 임명되지는 않았다. 이후 2018년에는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 지난해에는 윤석열 대통령 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 등을 지냈다.
1961년 설립 후 기업 경영 경험이 없는 인물이 전경련 회장 자리에 오른 건 처음이다.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은 기업인 중 전경련 회장직을 맡겠다는 인물이 나타나지 않아서다. 그동안 부회장단 안에서 회장을 선출해왔던 전경련은 허창수 회장 임기 만료를 앞두고 뒤를 이을 인물을 찾았지만, 주요 후보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 김윤 삼양그룹 회장 등이 고사하면서 인선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이웅열 명예회장이 나서 회장후보추천위원장을 맡아 다시 후보를 찾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았다.
허창수 회장이 12년 동안(33대 회장 취임 후 2년 임기 6회 연속) 단체를 이끈 것도 후보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2017년, 2019년, 2021년 거듭 퇴진 의사를 밝혔음에도 후임자가 나타나지 않아 연임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회장 후보가 나타나지 않는 건 주요 기업인들이 국정농단에 연루됐던 전경련의 회장직을 맡는 것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내 재계의 맏형 격이었던 전경련은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 당시 K스포츠·미르재단 후원금 모금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빚었다. 비판적인 여론이 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 때 주요 행사에서 배제되는 이른바 '패싱 굴욕'을 겪었다.
결국, 이웅열 회장후보추천위원장의 선택은 '김병준 카드'였다. 김병준 직무대행은 회장직무대행을 수락한 배경에 대해 "전경련은 선배 기업인들이 쌓아 올린 위대한 유산이고 자산이다. 그 자산을 버리는 것은 나라에 큰 손실일 것"이라며 "미력하지만, 저라도 힘을 보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직무대행 첫 과제에 대해서는 "'자유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철학적 기조, 방향을 재정립하겠다"며 "이러한 철학을 체계화하고 뒷받침할 수 있는 국제적 수준의 싱크탱크 설립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정치인이 전경련의 지휘봉을 잡으면서 정경유착으로 곤욕을 치른 전경련이 정치인 출신을 데려온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참여연대는 최근 성명에서 "전경련이 윤석열 캠프 출신 정치인을 직무대행으로 인선하려는 시도가 정경유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윤석열 정부와의 통로로 활용해 다시금 재벌·대기업의 정경유착의 고리를 복원하고 이어가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병준 직무대행은 정기총회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정경유착 논란'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스스로 정치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에서 34년간 봉직한 학자이고, 학자로서 사회에서 필요할 때마다 역할을 했다"며 "전경련이 과거 유착 고리가 있어 고생한 만큼, (나는) 그 고리를 끊으려 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계는 향후 김병준 직무대행의 최대 과제로 국정농단 사태 당시 탈퇴한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이 재가입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는 일을 꼽고 있다. 4대 그룹이 올해도 복귀하지 않으면 전경련의 위상 회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재계 중론이다. 현재 국내 주요 그룹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이끌고 있는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4대 그룹 재가입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특히 '국민 신뢰 회복'이 선행돼야 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4대 그룹의 재가입이 이뤄지려면 전경련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부정적인 시선이 달라져야 할 것"이라며 "전경련이 혁신을 시도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새로운 체제에서 과감히 새 판을 짤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김병준 직무대행도 '국민 신뢰 회복'에 대한 중요성을 지속 강조했다. 그는 직무대행 수락 인사말에서 "전경련이 다시 국민의 사랑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는 "과거 권력을 정부나 정치권이 갖고 있었다면, 지금은 국민이 권력을 갖고 있다"며 "국민들 속으로 들어가서 국민들로부터 지지받는 전경련을 만들면 4대 그룹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기업을 하는 사람 모두 전경련과 함께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rock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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