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기업, 신년사 통해 '위기 극복' 화두 제시
지속가능 경영 위한 친환경, ESG 행보도 강조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신년사를 발표하며 2023년 경영 방향성을 제시했다. 대부분 올 한해 사업 환경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며 '위기 극복'을 새해 화두로 내세웠다. 숨은 키워드로는 ESG 경영의 중심축인 '친환경'이 꼽힌다. 환경·기후변화를 심각한 위기로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는 게 기업의 역할이자 경영 목표라는 점을 더욱 명확히 했다는 평가다.
4일 재계에 따르면 새해 첫 근무일인 2일 주요 대기업에서 내놓은 신년사에는 '위기'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았다. 유례없는 글로벌 복합 경제 위기가 심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가운데 기업들의 경각심이 신년사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들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임직원 모두 원팀이 돼야 한다는 '혁신 의지'를 드러냈다.
실제로 단어별 거론 횟수에서도 '위기'라는 키워드가 신년사에서 많이 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데이터 연구소 CEO스코어가 국내 10대 그룹 신년사의 키워드를 조사한 결과, '위기'는 지난 2년 동안 10위권 안에 들지 못했던 키워드였지만, 올해 29회 거론되며 4위에 올랐다. 같은 조사에서 가장 많이 제시된 키워드는 고객(35회), 2위는 성장(34회)이었다.
일부 기업인은 강한 어조로 현 상황을 진단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신년사에서 "영구적 위기(Permacrisis) 시대가 도래했다"며 "철저하게 리스크를 대비하고,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호영 LG디스플레이 사장은 "어려워도 시간이 경과하면 회복이 나타나던 과거의 상황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이라고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의 회장은 "지정학적인 긴장이 언제 해소될지 알 수 없는 상황으로, 세계 경제는 기존 질서가 붕괴하고 새로운 질서가 정착되기까지 상당 기간 불확실성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손자병법에서 '고난을 극복해 오히려 기회로 삼는다'라는 뜻의 이환위리(以患爲利)의 자세를 당부했다.
대부분 기업이 올해 닥칠 경영상 위기를 경고하는 상황에서 신년사 숨은 키워드로는 '친환경'이 꼽히고 있다. 환경과 관련된 단어는 대기업들의 ESG 경영 보폭이 본격 확대된 지난해부터 재계 총수와 CEO의 경영 메시지에 자주 등장하는 추세다. 한 기업 관계자는 "기업 목표를 ESG 원칙에 맞춰 바꾸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친환경 강조'는 자연스러워 보인다"고 밝혔다.
먼저 재계 1위 삼성이 새해 첫 경영 메시지에서 올해를 '신(新)환경경영전략'을 본격화하는 원년으로 삼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삼성환경선언'에 이어 30년 만에 '新환경경영전략'이라는 환경 선언을 발표하고, 기업 경영 패러다임을 친환경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내용은 초저전력 반도체·제품 개발 등 혁신 기술을 통해 기후위기 극복에 동참하고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것으로, 친환경 분야 투자 금액만 2030년까지 7조 원에 달한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신년사에서 "친환경 기술을 우리 미래 경쟁력으로 적극 육성하고, 삼성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내일을 만드는 것이 되도록 하자"고 강조했다.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에서 3일 타운홀 미팅 방식의 신년회를 연 정의선 현대자동차(현대차)그룹 회장도 신년사에서 "'지속가능 미래를 위한 올바른 행동'이라는 그룹의 사회 책임 메시지에 걸맞게 환경을 생각하고 서로 협력하며 인류와 함께 성장하는 모범적인 기업이 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탄소중립 실현은 물론 미래 세대, 환경,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다양한 사회적 책임 경영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밖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새해 메시지를 통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키워드로 제시했다. 그는 "그늘이 더욱 깊어지는 시기인 만큼 우리 사회의 온도를 높이기 위한 기업의 책임에도 적극 임하자"며 "탄소중립, ESG 등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 또한 글로벌 스탠다드를 선도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와 대응을 해나가자"고 말했다.
친환경 행보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인식은 현재 친환경 산업을 육성하는 기업들의 신년사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핵심 사업에서 탄소중립 로드맵을 충실히 이행하고 탄소 정책과 성과에 대한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해 친환경 리딩 기업으로서 위상을 공고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은 임직원들에게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 친환경 사업 전환의 성과를 이루자"고 독려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친환경 사업 추진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고, 권오갑 HD현대그룹 회장은 "지향하는 기술 개발은 친환경, 디지털, 안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이것은 단순히 기술 진보를 넘어 ESG 경영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ock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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