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부당해고' 인정 안 돼
협력사·낙농가 손해배상도 어려워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유제품 전문기업 푸르밀이 지난 17일 전 직원을 대상으로 사업 종료와 정리 해고를 통보했습니다. 김성곤 푸르밀 노동조합위원장은 25일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당시 소식을 접한 직원들이 배신감과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푸르밀의 일방적인 통보에 노조는 '부당해고'라며 반발하고 있는데요. 푸르밀은 협력사에도 계약 위반에 따른 위약금 등을 감수해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푸르밀의 정리 해고를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수 있을지, 협력사에는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지 따져봤습니다.
지난 17일 푸르밀 직원들이 받은 공고문에는 "임직원 여러분께 사업 종료를 전하게 돼 매우 안타깝고 송구합니다. 회사는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4년 이상 매출 감소와 적자가 누적돼 내부 자구노력으로 회사 자산의 담보 제공 등 특단의 대책을 찾아봤지만 현재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돼 부득이하게 사업을 종료하게 됐습니다. 당초 50일 전까지 해고 통보해야 하나 (근로기준법 제24조 3항) 불가피한 사정에 따라 정리 해고를 결정하게 돼 아래와 같이 공고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푸르밀의 일방적인 통보에 정직원 약 350명을 포함해 협력업체 직원 50명, 배송 기사 100명, 500여 개 대리점의 점주 등이 일자리를 잃게 됐습니다. 공고문을 통해 푸르밀은 근로기준법 제24조 3항을 불가피한 사정으로 따르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한 셈인데요.
법제처에 따르면 근로기준법 제24조(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 3항에는 '그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를 말한다. 이하 "근로자대표"라 한다)에 해고를 하려는 날의 50일 전까지 통보하고 성실하게 협의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노조는 푸르밀이 '부당해고'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업 종료와 정리 해고를 철회해달라는 내용증명을 발송하기도 했죠. 노조의 주장이 받아 들여진다면 해고는 무효가 되고 푸르밀은 추가 임금 등을 지급해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따른 해고이며 해고를 피하기 위해 노력한 점 등이 인정될 경우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됩니다.
또한 푸르밀이 대형마트 등 유통사, 식품사 등과 계약 관계가 남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들 회사에 손해배상금을 물어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푸르밀에 직접 원유를 납품하는 낙농가와의 계약 종료일은 연말이기 때문에 낙농가에서 푸르밀에 손해배상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FACT체크1=푸르밀 전 직원 해고 통보 '부당해고' 인정 가능성
법조계에서는 푸르밀의 정리해고에 법적인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일부 사업의 폐지의 경우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을 수 있지만 사업 전체를 폐지하는 '폐업'이기 때문에 '부당해고'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문은영 변호사(법률사무소 문율)는 "직원들에게는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비슷한 사례를 찾아봤을 때 사업 일부 폐지인 경우 정리해고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사업 전부 폐지인 경우 사실상 통상 해고로 본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다"며 "일부 폐지의 경우 근로기준법 24조의 해고 요건을 갖춰야 하지만 전부 폐지인 경우 통상적으로 정리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유효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대법원은 폐업 해고는 원칙적으로 기업 경영의 자유에 속하며 위장 폐업이 아닌 이상 유효하다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93다7457, 2016두64876 판결 등).
문 변호사는 "직원들은 전원 해고 임에도 '부당해고'로 인정될 가능성이 희박하고 인정 받는다고 해도 돌아갈 회사가 없기 때문에 막막한 상태인 것 같다. 법상으로는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인 것으로 보인다"며 "민사 상으로는 경영진들의 배임 횡령 혐의 등을 살펴봐야 한다. 직원들이 부당해고로 인정받고 위자료 청구 등을 한다고 해도 회사가 지불 능력이 있어야 한다. 재산이 없고 채권자들이 다수 나타나 순위에서 밀린다면 손해배상을 청구해도 받을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김광훈 노무사도 "사업종료를 이유로 해고할 경우 근로자들이 이를 다투는 것은 쉽지 않다"며 "정신적 피해보상도 그 인정 가능성이나 보상액 등을 살펴봐야 하는데 근로자들이 만족할만한 대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법조계 관계자 역시 "위장 폐업을 했을 경우 근로기준법상 부당해고로 판단할 수 있다. 회사 운영이 어려워 폐업을 결정했다면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기 어렵다"면서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 등을 해도 돌아갈 회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보상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FACT체크2=푸르밀, 협력사 계약 위반 위약금·낙농가 손해배상 유무
푸르밀은 협력사와의 계약 위반에 따른 위약금도 감수해야합니다. 푸르밀 내부 자료에 따르면 푸르밀은 이마트, 홈플러스 등 유통사뿐 아니라 CJ푸드빌, CJ프레시웨이, 국군복지단, 군지사, SPC, 아워홈, 삼성웰스토리, 롯데GRS, 롯데제과, 카페베네 등과 납품 계약을 체결한 상태입니다. 협력사와의 계약 종료일은 사업 종료 통보일(오는 11월 30일) 이후인 올해 연말이나 내년입니다. 업계에 따르면 제품 납품 중단에 따라 전체 손해배상금으로 지급해야 할 수도 있는 금액이 13억 원 이상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푸르밀에 원유를 공급해 온 낙농가들도 푸르밀의 영업종료 통보에 반발하면서 25일 집단행동에 나섰습니다. 농민 약 50명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푸르밀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독단폐업 푸르밀을 규탄한다"며 "낙농가의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호소했습니다. 이들은 푸르밀의 요청에 따라 푸르밀에만 1979년부터 40여 년간 원유를 공급해 왔으나 푸르밀이 돌연 내달 30일 자로 영업종료를 통보하면서 공급처를 잃게 됐죠.
푸르밀이 지불 능력이 부족한 상태로 법인을 없앤다면 협력사와 낙농가 등도 손해배상금을 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문은영 변호사는 "지불 능력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재산이 없다면 법인이 없어진 후에 손해배상 판결문은 휴지 조각이 된다"며 "관련 업계에서 상당히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경영진이 채권을 일부 탕감받더라도 인수해서 상당 기간 회생 절차를 거치면 노동자들도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법조계 관계자는 "푸르밀 측이 회사를 정리하기 전에 법적 판결을 떠나 인간적인 도리로 손해배상이나 보상을 하지 않는다면 법인이 없어지는 상태에서 손해배상금을 받기는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협력사들은 아직 계약 위반에 따른 별도의 손해배상 청구 계획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완제품을 단순 구매하던 회사들은 손해배상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PB(자체 브랜드) 상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이 푸르밀의 갑작스러운 사업 종료에 당황스러워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 다른 협력업체 관계자는 "현재는 협력사를 찾는 것이 우선이고 손해배상은 추후의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가맹점주들에게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진행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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