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증인 신청 빗발…'망신주기' 국감 우려 여전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올해 국정감사(국감)에 기업인들이 증인·참고인으로 대거 출석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10대 그룹 총수들이 국감장에 모습을 드러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대기업집단에서 '총수' 또는 '오너'로 불리는 인물이 국감장에 출석한 사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무리한 소환 요구를 이어 나갈 경우 '기업감사', '망신주기식 국감'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10대 그룹 총수 출석 여부 관심
29일 정치권과 재계에 따르면 삼성, SK, 현대차, LG, 롯데, 포스코, 한화, GS, 현대중공업, 신세계 등 10대 그룹 총수들의 이름이 국감 증인·참고인 신청 명단에 오르내리고 있다.
최근 5년간 10대 그룹 총수 가운데 국감에 출석한 인물은 한 명도 없다. 국내 10대 그룹의 공정거래법상 동일인 중 국감에 모습을 드러낸 사례는 2015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한 번뿐이다. 그동안 출석 요구가 없진 않았으나, 빡빡한 경영 일정과 겹쳐 불출석한 경우가 많았다. 건강 문제 등으로 인해 현실화되지 않은 사례도 있다.
물론 올해 국감에서도 10대 그룹 총수들의 출석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주요 현안과 관련해 총수보다 실무를 담당하는 전문경영인을 불러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여야 협의 과정에서 총수들의 이름이 하나둘 빠지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증인 채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외통위)에서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미국 주도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칩4) 등과 관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를 부르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는 10대 그룹 내 국감 출석이 현실화된다면,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당사자가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최정우 회장은 지난해에도 10대 그룹 총수 중 유일하게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끝내 국감장 증인석에 오르지 않았다. 올해는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가 최정우 회장을 증인 명단에 올렸다.
행안위는 태풍에 따른 피해가 예상됐음에도 포스코가 막대한 피해(매출 2조400억 원 감소 추산)를 입은 것과 관련해 미흡한 점이 없었는지 등을 최정우 회장에게 물을 예정이다. 이외에도 광양제철소 하청 노동자 사망 사고, 포항제철소 사내 성폭력 사건 등 올해 포스코를 둘러싼 여러 문제에 대해 질의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 이미 '기업감사' 분위기 형성돼
10대 그룹 총수가 출석하지 않더라도 올해 국감이 사실상 '기업감사'로 변질됐다는 지적은 벌써 제기되고 있다. 다수 상임위에서 주요 기업인들의 출석을 요구하는 중으로, 윤석열 정부 첫 국감을 앞두고 증인·참고인 신청을 놓고 여야의 힘겨루기가 이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기업인들을 일단 불러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고 호통을 치는 이른바 '망신주기식 국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재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는 이재승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장(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세탁기 불량 사태 등에 대한 설명을 듣겠다는 것이다. 또 IRA 대응 질의를 위해 공영운 현대차 사장을, 태풍 피해 관련 질의를 위해 정탁 포스코 사장을 불렀다. 중소벤처기업부·특허청 국감에는 최수연 네이버 대표가 출석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7일 증인·참고인 명단을 확정한 정무위원회(정무위)는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사장)을 GOS(게임 최적화 서비스) 사태 등을 질의하기 위해 국감장으로 부른다. 남궁훈 카카오 대표와 시중 5대 은행 수장들도 증인으로 채택했다. 회사 물적분할과 관련해 류진 풍산그룹 회장과 차동석 LG화학 부사장도 증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는 농어촌상생협력기금과 관련해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부회장)을 참고인으로 소환해 질의한다. 증인대에는 임형찬 CJ제일제당 부사장을 세워 쌀값 하락에도 제품 가격을 인상한 배경 등에 대해 듣는다.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증인으로는 원·하청 임금 구조 개선 문제와 관련해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채택됐다. 이 밖에 최익훈 HDC현대산업개발 대표(광주 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 송호섭 스타벅스코리아 대표(증정품 발암물질 유출 논란)가 증인으로 서게 됐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서는 최수연 대표, 남궁훈 대표를 포함한 플랫폼 기업 수장, 유영상·구현모·황현식 등 이동통신 3사 대표들이 거론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는 숙박 애플리케이션 과다 수수료 문제 등을 이유로 배보찬 야놀자 대표, 정명훈 여기어때 대표 등을 부른다.
재계 관계자는 "국정에 대한 감사가 이뤄지는 자리에서 기업인들을 공개적으로 야단치는 목적으로만 시간을 소요한다면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인다"고 밝혔다.
rock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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