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인프라 정비·투자 활력 제도 필요…신탁제도 개선"
산업 간 경계가 사라지는 빅블러(Big Blur·경계 융화 현상)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가 성장 둔화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낡은 규제를 과감하게 혁파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여러가지 규제 완화 방안이 언급되고 있지만, 대내외 운영 상황과 이해관계 대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창립 20주년을 맞은 <더팩트>가 경제·산업에 반드시 필요한 규제 혁신을 재계·유통·금융의 틀에서 짚어보고 문제를 진단한다. 규제 혁신, 어떤 변화가 있었고, 또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를 '혁신이 답이다'가 11회 특별기획 시리즈로 조명한다. <편집자주>
[더팩트ㅣ박경현 기자]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 바람이 부는 가운데 금융사 신탁업이 확대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올해 초부터 경제둔화 우려 등으로 위축된 금융업권 전반에 새로운 수익원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시선이 모인다.
◆ 금융당국, 해묵은 규제 완화 추진 본격화…신탁 운용 자율성 확대
2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금융사에 맡겨진 신탁재산은 총 1218조9000억 원으로 지난해 말(1166조7000억 원) 대비 4.5% 증가했다. 업권별로는 은행이 518조6000억 원(42.5%)으로 가장 많고, 그 뒤를 증권사가 302조5000억 원(24.8%)으로 뒤따르고 있다.
신탁은 투자자가 현금이나 채권, 증권, 부동산 등의 재산을 신탁업자인 금융회사에 맡기면 금융회사는 신탁목적에 따라 해당 재산을 관리·운용·처분한 뒤 발생된 이익을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것을 뜻한다.
신탁은 재산 종류에 따라 금전신탁, 재산신탁, 종합재산신탁 등으로 나뉘며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등에서 수탁을 맡는다. 이 중 증권사의 신탁업무는 돈을 관리하는 금전신탁이 주를 이룬다.
신탁시장이 빠른 성장 추이를 보이자 최근 금융당국은 금융규제혁신 추진 방향에 '신탁의 운용 자율성 강화'를 포함하는 등 신탁 재산(투자일임 재산) 범위 확대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신탁제도 개편으로 시장 규모를 더 키우겠다는 의지다.
실제로 당국은 지난 7월 열린 금융규제혁신회의에서 신탁제도 개선 등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을 논의했다. 재산신탁 범위를 넓혀 운용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당국은 신탁제도 개선과 관련해 이미 1차 검토를 마친 상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당시 회의에서 "자본시장의 인프라를 정비하고 투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며 "종합자산관리가 가능하도록 신탁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기존 한정된 신탁 재산 범위에서 벗어나 부채, 담보권, 보험금 등으로 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다. 현행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따르면 증권사 및 신탁업자는 △금전 △증권 △금전채권 △동산 △부동산 △지상권·전세권·부동산임차권·부동산소유권 이전등기 청구권 등의 부동산 관련 권리 △무체재산권(지식재산권 포함) 외에 수탁할 수 없다.
당국은 앞서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수탁 가능 범위 확대를 추진했지만 번번이 무산된 바 있다. 그러나 새 정부 들어 금융시장 정책 방점이 규제 완화에 찍힌 데다, 확대 범위 또한 꽤 구체적으로 거론된 점은 신탁시장의 도약 가능성이 커졌단 평가다.
◆ 업권 전반 영향 어떨까…증권업 "신탁업 활용 움직임 커"
금융업권 중 신탁 관련 규제 혁신으로 가장 먼저 수혜를 입을 곳은 증권사들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신탁업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커진 데다, 실제 수익 역시 늘고 있어서다.
증권사의 신탁 수탁고는 최근 들어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기준으로 최근 4년 새 전체 신탁 수탁고가 48.6% 증가하는 동안 증권사 수탁고는 52.5% 늘었다. 증권사가 신탁보수를 통해 내는 수익도 해마다 느는 추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21개 증권사의 신탁보수는 총 826억6796만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709억6898만 원) 대비 16.48% 늘어난 규모다.
업계는 향후 신탁 재산(투자일임 재산) 범위 확대로 운용 자율성이 커질 경우 유언대용신탁 등 종합재산관리 서비스가 더 활성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최근 증권사들은 증시 불황과 금리인상 여파로 업황이 좋지 않아 본 수익원인 브로커리지와 IB 외에서 수익성을 늘리려는 움직임이 많다"며 "회사마다 신탁업 서비스를 속속 키우고 있어 신사업 발굴 및 수익원 다각화의 일환이 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신탁업을 가장 크게 영위 중인 은행을 비롯해 보험사 등 업권 전반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은행사의 경우 기존 예대마진 의존성을 낮추고 새로운 수익 창출의 기회가 생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신탁업이 활성화되면 은행업 입장에선 수익창출할 기회가 많아지게 된다"며 "금융투자업계 신탁업 확대가 금융기관 간 경쟁을 허용하고 예대마진 외 수수료 등 비이자수익 창출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유익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은행업권은 증권사와 다르게 불특정금전신탁 허용이 되지 않고 있어 은행권도 불특정금전신탁이 열리는 등 보다 유연한 규제혁신이 나타날 시 업권 활성화에 도움이 클 것이란 입장도 나왔다.
서 교수는 "신탁 수탁고를 보면 2021년 이후에 증권업 수탁이 급증하는 경향이 있다"며 "금전·재산신탁 면에서 불특정금전신탁의 영향이 크다. 증권업은 펀드 등 불특정금전신탁이 가능해 은행이 신탁 업무에서 뒤처지는 경우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pk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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