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67마리 무상 분양…안내견 둘러싼 편견 개선도 '노력'
[더팩트|최문정 기자] "아무리 돈이 많이 들더라도 외국에서 최고의 안내견 훈련사를 데려와 용인에서 몇 마리라도 만들어 내야 한다."
1993년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신경영 선언'과 함께 회사의 대대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변화의 바람은 사회 공헌 사업에도 함께 불었다.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견 사업이다.
그해 9월 문을 연 삼성화재안내견학교는 1994년 국내 첫 안내견 '바다'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267마리의 안내견을 무상으로 분양했다. 삼성화재안내견학교는 매년 12~15마리의 안내견을 배출하고 있으며, 현재 약 70마리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2년 9월 20일 자 <29년간 이어진 이건희 회장의 동행…삼성, 안내견 분양·은퇴행사 개최> 기사 내용 참조)
◆ 생후 50일 '뽀시래기'가 늠름한 안내견이 될 때까지
20일 안내견학교에 들어서자 생후 약 3개월이 된 8마리의 골든리트리버 강아지들이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활발히 돌아다니며 높은 탁자 위에 기어 올라갔다 훈련사의 도움으로 겨우 땅으로 내려오는 모습은 의젓한 안내견의 모습보다는 평범한 '개린이'였다.
이런 강아지들을 데려다가 안내견에 적합한 모습으로 훈련시키는 과정이 '퍼피워킹'이다. 퍼피워킹은 평범한 자원봉사 가정에 강아지를 맡겨 약 1년 동안 지하철, 버스, 마트와 같은 장소와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사회화'를 가르치는 과정을 의미한다.
삼성화재안내견학교 관계자는 "퍼피워킹은 아파트, 주택 등 거주 형태와 상관없이 모두 가능하다"며 "개를 키운 경험이 없는 사람들도 신청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단, 최소 1명은 강아지와 상주해야 하고, 안전상의 문제로 초등학교 4학년 이하 어린이가 있는 가정에는 퍼피워킹을 보내지 않는다.
강아지를 돌보는 데 필요한 사료, 병원비 등은 모두 삼성에서 제공한다. 현재 퍼피워킹 가정은 약 1000개로 늘었고, 대기 가정도 110여 개의 이른다. 퍼피워킹을 신청한 뒤 강아지를 실제로 만나기까지 약 2년이 소요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
퍼피워킹을 마친 강아지들은 테스트를 거친 뒤 안내견 후보로서 6개월간 훈련을 받는다. 테스트 통과율은 약 30~35% 정도다.
삼성화재안내견학교 관계자는 "안내견 테스트를 통화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개가 모자란 것이 아니다"라며 "안내견이라는 특수한 역할에 맞는 후보를 뽑는 것이기 때문에 개의 성격 등을 고려해 선발하는 과정일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안내견이 되지 못한 개들은 일반 가정에 반려견으로 분양된다"라고 말했다.
현재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는 총 16마리의 훈련견이 있다. 훈련견이 지내는 견사는 마치 기숙사처럼 꾸며져 있었다. 그러면서도 온돌바닥을 갖추거나, TV를 비치하는 등 안내견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실제 가정과 비슷한 환경을 갖췄다.
훈련견들은 6개월 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5일 교육을 받는다. 교육은 상점, 인도, 도로 등 실제로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걸을 환경에 익숙해지고,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할 수 있게끔 하는 훈련으로 구성됐다.
유석종 삼성화재안내견학교 프로는 "흔한 오해 중 하나가 훈련견들이 오랜 시간 동안 훈련을 한다는 것"이라며 "실제로는 약 30~40분정도 훈련을 받고, 주말에는 쉰다. 외출은 개들이 즐거울 때까지만 훈련하고 있고, 그렇게 해야 향후 시각장애인들과 생활할 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기숙사 앞에는 삼성화재반려견학교의 운동장이 갖춰져 있었다. 넓은 잔디밭에는 마치 어린이 놀이터처럼 미끄럼틀 등이 배치돼 있었고, '개리비안베이'로 불리는 전용 수영장도 있었다.
유석종 프로는 "견사에서 운동장까지 문을 열어주면 한 번에 나올 수 있어 훈련견들이 매일같이 놀고, 여러 활동을 할 수 있는 '프리런'이라는 시간을 많이 준다"며 "놀이터 시설의 경우, 개들이 약간 높은 곳에 올라가 멀리 내다보는 걸 좋아해 일부러 설치했다"라고 설명했다.
시각장애인과 동행하는 소임을 마친 안내견들이 잠든 추모 공원도 마련돼 있었다. 추모비에는 지금까지 삼성화재안내견학교를 거쳐 안내견으로 활동한 뒤 세상을 떠난 모든 안내견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아직 안내견과의 추억을 잊지 못한 사람이 많은 듯 추모 공간은 온통 꽃다발과 따뜻한 메시지로 가득했다.
◆ 안내견은 동물학대?…"오히려 기대수명 길어"
"비장애인들이 리트리버 반려견과 길을 걸으면 '산책'이라고 하지만, 같은 개가 시각장애인과 걸으면 '일하고 있다'고 말해요"
유석종 프로는 안내견을 향한 세간의 인식을 이렇게 꼬집었다. 유 프로는 시각장애인으로서 3번째 안내견 '해달'과 함께하고 있다.
그는 "안내견을 힘들게 하면서까지 일을 시키거나 하지 않는다"며 "안내견에게 중요한 것은 함께 걷는 이가 시각장애인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밥을 잘 챙겨주는지, 애정을 쏟아주는지 여부"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안내견의 수명은 일반 반려견보다 약 1~2년 정도 길다.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 은퇴견까지 추적해 건강검진을 제공하고 있고, 주인과 가까이 붙어 충분한 운동을 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삼성화재안내견학교 측은 안내견과 시각장애인이 '함께 걷는' 관계임을 강조했다. 시각장애인이 주도권을 갖고 목적지까지 걸음을 옮기면, 안내견이 그의 눈이 돼 장애물을 피해서 가는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다.
유 프로는 "시각장애인은 목적지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나가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장애물을 피해서 똑바로 걷는 것이 어려운 것"이라며 "미리 시각장애인이 연습을 통해 익힌 길을 안전히 걸을 수 있도록 안내견이 장애물을 피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흰 지팡이는 사람이 목적지도 알고, 장애물도 다 피해야 하는 반면, 안내견과 함께 걸을 때는 사람과 개가 2개의 역할을 나눠갖는 것이라 훨씬 안전하고 올곧은 자세로 이동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개교 29주년을 맞은 삼성화재안내견학교는 이날 새로운 안내견과 졸업한 안내견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는 '함께 내일로 걷다,' 행사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서는 △퍼피워커 △시각장애인 파트너 △은퇴견 입양가족 △삼성화재안내견학교 훈련사 등 안내견의 생애와 함께 해 온 50여명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를 격려하며 안내견과 은퇴견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했다.
munn0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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