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기업들, 인상 시점 놓고 고민 중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올해 하반기 일부 식품업체들이 원재료 가격 급등 등을 이유로 줄줄이 제품 가격 인상에 나선 가운데 식품별 도미노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가격 인상에 들어간 식품업체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상반기에 구매했던 원자재 가격이 하반기에 반영되고 있어 불가피한 결정을 했다는 입장이다. 가격 인상에 나서지 않은 기업들도 관련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도 하반기 한 차례 가격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2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농심은 다음 달 15일부터 라면 26종, 스낵 23종의 출고가격을 각각 평균 11.3%, 5.7% 인상한다. 농심의 라면 가격 인상은 지난해 8월 이후 약 1년 만이며 스낵 가격 인상은 올해 3월 이후 6개월 만이다. 이에 따라 출고가격 기준으로 신라면은 10.9%, 너구리 9.9%, 새우깡 6.7%, 꿀꽈배기 5.9%가 인상된다. 신라면 가격은 대형마트 기준으로 봉지당 평균 736원에서 820원으로, 새우깡은 1100원에서 1180원으로 오를 예정이다. hy(옛 한국야쿠르트) 역시 다음 달 1일부터 가격을 인상한다. 야쿠르트 라이트는 200원에서 220원으로, 쿠퍼스 프리미엄은 2500원에서 2700원으로 오른다.
농심 관계자는 "그간 라면과 스낵 가격이 소비자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내부적으로 원가절감과 경영효율화를 추진하는 등 원가 인상 압박을 감내해왔지만 2분기 국내에서 적자를 기록할 만큼 가격조정이 절실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농심은 앞서 올해 2분기 국내 영업이익이 1998년 2분기 이후 24년 만에 적자로 전환됐다고 공시했다.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유가공품 치즈 등 일부 식품 가격도 인상에 들어갔다. 업계에 따르면 사조는 오는 9월부터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닭가슴살(오리지널·블랙페퍼 100g) 가격을 3300원에서 3700원으로 12.1% 인상할 예정이다. 하림도 다음 달 편의점 기준 닭가슴살(갈릭·블랙페퍼 110g) 가격을 3400원에서 3700원으로 8.8%, 닭가슴살소시지를 2300원에서 2500원으로 8.7% 각각 올린다. 대상도 무뼈닭발 간편식 '안주야' 가격을 8900원에서 9500원으로 6.7% 인상한다. 대상의 대표 조미료 '미원'(100g)은 편의점 기준 2400원에서 2700원으로 12.5% 오를 예정이다.
빙그레가 국내 유통하는 프랑스 치즈브랜드 '벨큐브 플레인'(78g) 가격도 편의점 기준 내달부터 6000원에서 6900원으로 15% 오른다. 동원의 체다치즈(5매입)는 편의점 기준 다음달부터 2000원에서 2400원으로 20% 인상되며 매일유업 썬업 과일야채(190㎖) 음료도 1800원에서 2000원으로 11.1% 오른다. 빙그레 관계자는 "가격 인상은 맞지만 벨치즈 제품 같은 경우 수입 판매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벨치즈 본사 가격 정책이 바뀌면서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게 됐다"며 "빙그레에서 자체 생산하는 제품은 작년에 유제품 가격을 올리고 올해 초 아이스크림 제품 인상을 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가격 인상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가격 인상에 나선 식품업체들은 원·부자재 가격과 물류비 등 비용 상승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기업의 존속을 위해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 곡물가가 뛰었고 선구매했던 원자재 가격이 하반기에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A 식품업체 관계자는 "보통 식품 기업들은 원자재를 3~6개월 단위로 선구매하기 때문에 원가가 가장 비쌀 때 샀던 원자재 가격이 하반기에 판매하는 제품들에 반영되는 것"이라며 "환율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어서 식품업계에서는 부담스러워하는 상황이고 가격 인상 계획에 대해 단정 짓거나 쉽게 결정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소비자인데 영업이익이 적자인 기업은 존속 자체에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격 인상을 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제과업체 관계자도 "모든 브랜드가 그렇듯 현재 국제 곡물가 지속 상승, 원재료값과 인건비 상승 등에 대한 압박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인상 시점을 보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유업계에서는 낙농가의 원유가 인상 요청과 맞물려 올 추석 전후로 한 차례 가격 인상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업체 관계자는 "국내외 원·부자재 가격 인상과 생산 원가 상승으로 인해 가격 인상 요인이 발생한 상태"라며 "내부 비용 절감을 통해 최대한 감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다만 낙농가 원유가 인상 요청과 내부 인건비 증가 등 추가적인 상황들이 발생되고 있어 최소한의 인상 검토는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유업체 관계자는 "기존에는 관련 시장 점유율 1위인 서울우유가 추석 전후로 소비자 가격 인상을 발표하고 다른 유업체들이 따라 올리는 형태였다"며 "올해는 서울우유에서 농가에 리터당 58원을 보전해주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전개되는 방식이 예년과는 많이 다르긴 하지만 결국 서울우유에서 가격 인상에 들어간다면 다른 제조사들이 따라가는 형태가 되지 않을까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격 인상 시점이 빠르면 추석 전이고 늦어도 10월에는 결정이 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랜차이즈 업체도 하반기 기업들이 한 차례 가격 인상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맥도날드는 지난 25일부터 주요 메뉴 가격을 평균 4.8% 인상했으며 신세계푸드의 노브랜드버거도 지난 18일부터 40여 종 제품 판매 가격을 평균 5.5%(약 268원) 올렸다. 도미노피자는 지난 12일 피자 26종 가격을 일괄 인상했다. 프랜차이즈 업체 관계자는 "프랜차이즈 버거 업체들은 대부분 가격을 인상했고 피자 업체도 인상을 시작했다"며 "업계 전반적으로 하반기에 한 차례 가격 인상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업계에서도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은 기업과 일부 식품업체들은 올해 인상 계획이 없으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B 식품업체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가격 인상 계획이 없다"며 "제품 원가에 영향을 미치는 원물, 포장재 등의 가격변동 추이를 모니터링하는 등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C 식품업체 관계자도 "올해 인상 계획은 없다"며 "B2C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한 자리수인 기업의 경우 식품업체들의 가격 인상 분위기와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고 설명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가격 인상 요인에 대해서는 이해하지만 기업들이 가격 인상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고 고물가 고착 방지를 위해 힘써줄 것을 요구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가격 인상 요인이 분명히 있는 것은 이해하지만 가격 인상 분위기에 편승해 물가 인상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 것이 대기업의 역할"이라며 "일 년에 두 번씩이나 서민이나 어린이들이 주로 애용하는 식품에 가격을 올리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대기업들이 책임감 있는 경영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꼬집었다. 그는 "가격 인상 분위기 속에도 우리는 혁신을 통해 가격을 낮췄다는 기업이 있다면 그 기업은 소비자들에게 좋은 기업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