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현실에 맞는 규정 개정 없이 주차난 해소 힘들어"
[더팩트ㅣ이선영 인턴기자] #. 서울에 사는 직장인 A 씨는 매일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서 주차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야근하거나 회식이라도 잡힌 날이면,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하는 것을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 경기도 화성 신축 아파트 단지에 최근 이사를 온 B 씨는 주말에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할 일이 생길 때면 마음이 불편하다. 입주민들조차 부족한 주차공간으로 크고 작은 잡음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에서 손님들이 주차 공간을 찾지 못해 헤매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 등에는 아파트 입주민들이 주차난을 호소하는 내용의 글들이 끊이지 않고 올라오고 있다. 10년, 20년을 넘은 구축 아파트는 물론, 들어선 지 5년 이내 신축 아파트 단지에서도 주차 부족 문제는 끊이지 않는다.
이 같은 문제를 두고 건설업계에서는 매년 늘어나는 자동차 소비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해석도 나오지만, 주차 문제로 시름하는 단지 내 입주민들 사이에서는 건설사가 단지 조성 단계부터 주차대수를 보수적으로 책정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도 적지 않다.
차량 보유 대수별 주차 비용 문제를 두고 입주민 간 갈등이 빚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다산신도시 내 한 신축아파트의 경우 차량 등록 대수가 2대를 넘는 세대에 20만 원에 달하는 주차요금을 산정하는 문제를 두고 입주민 간 잡음이 일고 있다.
실제로 서울 지역 1000세대 이상 2000세대 미만, 준공 1년 이내 아파트 단지의 주차대수 비율을 살펴보면, 대다수 단지가 1:1.5를 넘지 않았다. 세대당 2대씩 자동차를 보유하더라도 주차 공간이 모자란 셈이다. 경기도 지역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해당 단지 입주민 카페에는 "새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주차공간 1대도 제대로 보장 못 받는다는 억울한 심정은 이해하지만, 차량이 2대 등록된 세대에서도 맞벌이나 생계를 위해 불가피하게 자동차를 쓸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비싼 주차비에 대한 경제적 심적, 부담이 너무 크다"고 호소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실성을 고려한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누적 자동차 등록 대수는 전년 대비 2.2%(55만 대) 늘어난 2491만1101대다. 인구 2.07명당 자동차 1대를 보유한 셈이다. 특히, 맞벌이 비중이 늘면서 최근에는 신혼부부 중심의 2인 가구에서도 자동차를 2대씩 보유한 세대가 많아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아파트 주차대수 비율을 세대당 2대로 확대해달라는 내용의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부족한 주차 문제로 입주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고 밝힌 청원자 A 씨는 "현재 전국아파트 95% 이상이 주차대수 비율이 가구당 2대가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향후 아파트 주차면적을 1세대당 2대로 건축하면, 주차난이 조금이나마 감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물론 땅도 좁고, 아파트가격이 상승하겠지만, 주차타워를 짓더라도 1세대당 2대 주차로 인해 차가 없는 세대는 다수차량 보유 세대와 임대계약해, 임대료를 받는다면 분쟁이 덜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해본다"며 "앞으로 더 얼마나 많은 분쟁이 일어나야 (주차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반면, 공동주택 주차대수 관련 규정은 20년이 넘도록 제자리걸음이다. 입주자들 사이에서는 현행 규정이 이 같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주차 대수는 주택 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27조제1항제1호에 따라 △세대당 산정기준 △전용면적당 산정기준 등 두 가지 방법 가운데 더 많은 주차대수가 나온 결과값으로 산정한다.
먼저 세대당 산정기준을 적용하면, 60㎡ 이하 세대에는 0.7대의 주차대수가, 60㎡ 초과 세대에는 1대의 주차대수가 허용된다. 예를 들어 60㎡ 이하 10세대, 60㎡ 초과 10세대인 아파트 단지의 경우 주차대수 비율이 1:0.85대만 넘으면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전용면적당 산정기준은 85㎡ 이하 세대의 전용면적 전체 합계에 해당 지역별 면적당 대수 비율을 곱하고, 85㎡를 초과하는 세대에도 동일하게 면적당 대수 비율을 곱해 둘을 더한다.
주택 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서울시는 기준 전용면적 85㎡ 이하일 경우 주차대수를 전용면적의 합계로 나눈 값이 75분의 1을 넘어야 하고, 전용면적이 85㎡를 초과하는 경우 그 비율이 65분의 1을 넘어야 한다. 광역시와 수도권은 전용면적 85㎡ 이하일 경우 85분의 1, 85㎡를 초과하는 경우 70분의 1 이상을 지켜야 한다.
예를 들어 서울 지역 내 전용면적 84㎡ 1000가구로 구성된 아파트 단지의 경우 1120대 이상의 주차대수를 확보하면 된다. 1120대로 계산하면 해당 단지의 주차대수 비율은 1:1.12대다.
주차난을 겪고 있는 단지 내 입주민들은 물론 건설업계에서도 현실을 고려한 규정 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데는 기준점이 되는 주택 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이 만들어진 시점과 무관하지 않다.
세대당 산정기준의 셈범이 주택 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포함된 것은 지난 1996년이고, 이후 2010년 7월 규정 개정으로 지역별로 85㎡를 기준으로 세분화한 전용면적당 산정기준이 적용됐다. 사실상 12년 동안 주차난 해소를 위한 규정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현행 규정을 토대로 건축비나 여러 요인을 따져 신축 아파트 단지의 주차대수를 산정하면 그 비율이 평균 1:1.3 정도 수준이 나온다"며 "단지별 주차대수 비율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점차 가구별 차량 대수가 늘어나면서 서울 및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주차 관련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신축 아파트 단지는 지상 주차장이 아예 없고, 지하 주차장 형태로 지어져 예전과 비교해 공사비용이 훨씬 더 많아졌다"며 "사실 건설사는 시공사 입장이다 보니 설계나 이런 것들은 발주처인 시행사나 조합에서 주관해서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사 비용과 분양에 따른 이윤 타당성이 나와야 하는데 손익분기를 넘어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규정에서 정한 범위를 훨씬 넘어서게 주차대수를 산정하기란 사실상 쉽지 않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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