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관리 체제 돌입…계약금 반환소송 등 갈등 격화 예상
[더팩트|한예주 기자] 항공업계 '빅딜'로 기대를 모았던 아시아나항공 매각 작업이 10개월 만에 무산 수순을 밟게 됐다. 채권단의 매각 대금 인하라는 최종 카드에도 HDC현대산업개발(HDC현산)이 재실사 요청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이르면 이번 주 금호산업과 채권단이 HDC현산에 '아시아나항공 매각 계약 해지' 입장을 통보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의 관리 체제에 들어가 'KDB아시아나항공'으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의 매각 주체인 금호산업은 HDC현산의 최종 의사를 확인한 뒤 조만간 계약 해지를 통보할 예정이다.
채권단은 전날 HDC현산이 산업은행 측에 재실사 요구를 고수하는 입장을 내놓자 HDC현산에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가 없다고 최종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지난달 26일 정몽규 HDC그룹 회장과의 최종 담판에서 인수가를 최대 1조 원가량 낮추는 내용의 파격 제안을 내놨지만 이 같은 제안에도 묵묵부답이던 HDV현산이 결국 일주일 만에 사실상 채권단의 제안을 거부했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작년 11월 12일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되며 시작된 HDC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결국 10개월 만에 '노딜'(인수 무산)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금호산업은 작년 4월 아시아나항공 매각 주관사를 선정한 것을 시작으로 매각 공고, 예비입찰, 본입찰 등을 거쳐 작년 11월 매입 가격을 1조 원가량 더 써낸 HDC현산과 미래에셋대우컨소시엄을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이어 작년 12월 27일에는 매각 주체인 금호산업과 현산·미래에셋 컨소시엄이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업계에서는 이미 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무산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 종합 모빌리티 그룹으로 도약할 것"이라는 정몽규 HDC그룹 회장의 꿈이 현실화하는 듯했지만, 올해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항공업계를 덮치면서 상황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HDC현산이 4월 초 예정됐던 아시아나항공 유상증자를 연기한 데 이어 4월 말 주식 취득일까지 무기한 연기하면서 이상기류는 더욱 거세졌다. 이후 HDC현산이 소극적인 태도로 돌아서자 금호산업과 채권단은 대면 협상을 거듭 요구해왔다.
침묵을 지키던 HDC현산은 결국 6월 초 채권단에 인수 조건 재검토를 요구했고, 이어 7월 말에는 "선행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며 12주간의 재실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채권단과 금호산업은 HDC현산에 아시아나항공의 인수 의지가 없다고 보고 거래 종결을 지연하기 위한 의도라고 맞서 왔다.
지난달 20일 성사된 권순호 HDC현산 사장과 서재환 금호산업 사장의 대면 협상이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하고 끝난 데 이어 지난달 26일 이동걸 회장과 정몽규 회장의 최종 담판도 끝내 성과를 내지 못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여파로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상황이 한층 악화한 만큼 HDC현산의 입장에서 이 같은 리스크를 안고 당초 계획대로 인수를 추진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금호 측도 그룹 주력 계열사였던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에 실패하면서 구주 매각 대금 3200억 원으로 그룹 재건을 꿈꾸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일단 채권단은 다음 주 중으로 '플랜B'를 가동할 예정이다. 산업 경쟁력 강화 장관회의를 열고 아시아나항공 경영 정상화 방안을 논의하는 등 '아시아나항공 살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먼저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기안기금 지원으로 당장의 차입금 상환 압박을 막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2조 원의 기간산업안정기금 투입이 예정된 상황이다. 다만 기안기금 지원만으로 경영 정상화가 어려운 만큼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 관리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아시아나항공은 6년 만에 다시 채권단 체제 하의 경영에 돌입하게 됐다. 앞서 아시아나항공은 박삼구 전 회장의 공격적인 사업 확장과 글로벌 금융위기가 겹치며 금호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자 지난 2009년 12월 채권단과 구조조정 방식의 일종인 자율협약 절차를 밟은 바 있다. 회사는 자율협약을 체결한 지 5년만인 지난 2014년 12월에 졸업했다.
영구채 주식 전환 등을 통해 채권단의 관리 체제에 돌입하면 아시아나항공의 사업 재편이나 인력 구조조정 등도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 안팎의 분석이다. 산은은 아시아나항공의 영구채 8000억 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출자전환할 경우 지분율이 37%까지 올라가 금호산업(31%)보다도 많아진다.
대주주인 금호산업 지분에 대한 무상감자 논의도 시작한다. 또 아시아나항공의 자본금을 줄이는 무상감자를 실시함과 동시에 신규 자금 지원을 통해 회사 경영 정상화에 나서는 안을 논의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무상감자는 옛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경영 정상화 과정과 유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을 정상화한 뒤 재매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과 '통매각' 대상이었던 에어부산과 에어서울, 아시아나IDT 등 자회사의 분리 매각 가능성도 대두된다.
다만, 앞선 대우조선해양 사례처럼 아시아나 재매각 성사까지 최소 10여 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되는 중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항공 시장 변화에 따라 관련 작업이 더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 아시아나항공의 경영 정상화 자체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정상화 후에도 새 인수자를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당장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사업 개편 등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이전과 같은 업황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아시아나항공의 생존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HDC현산과의 M&A 무산으로 인한 계약금에 대한 법적 공방도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채권단과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계약금 2500억 원 관련 법적공방을 위해 명분 쌓기에 주력하려는 분위기다. 이에 맞서 HDC현산도 동의 없이 자금이 지원된 것과 회계 관리가 부실했다는 점을 들어 계약금 2500억 원의 반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hyj@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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