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집값 잡느라 우리만 피해" 노원‧마포·과천 '뿔났다'
[더팩트|윤정원 기자] 정부가 발표한 신규 공공주택 건설과 관련해 지방자치단체 곳곳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간 사전 상의 없이 공급대책이 발표된 데다 지역 주민에게 전가될 불편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4일 '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통해 13만20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공언했다. 정부는 서울 노원구 인근의 태릉골프장 부지에 1만가구, 마포구 상암동에 6200가구, 정부과천청사 일대에 4000가구 등을 추가로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 노원구, 文대통령에 서한까지…"태릉골프장 1만가구 건설 반대"
주요 개발 대상부지로 지목된 태릉골프장이 있는 서울 노원구에서는 즉각 토로가 이어졌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정부 대책 발표 이후 문재인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오승록 구청장은 서한에서 "충분한 인프라 구축 없이 또다시 1만가구의 아파트를 건립한다는 정부 발표는 그동안 불편을 묵묵히 감내하며 살아온 노원구민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오 구청장은 "노원구는 전체 주택의 80%가 아파트이고 인구밀도가 높아 주차난 가중, 교통체증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태릉골프장 83만㎡에 1만가구를 건설할 경우 매우 심각한 고밀도 주택단지가 된다. 당초 목표인 집값 안정보다 노원구의 베드타운화가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해 임대 주택 비율은 30% 이하로 낮추고 나머지는 민간 주도의 저밀도 고품격 주거단지로 조성해야 한다. 노원구 주민들에게 분양물량의 일정 부분을 우선 공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 구청장은 "어쩔 수 없이 육사를 이전한다면 이 일대는 아파트 건립보다 자족 기능을 높이는 직주 근접 산업이 들어와야 한다"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한 빅데이터·AI 원천기술 등 융복합 생태계 구축으로 도시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덧댔다.
서울 노원을이 지역구인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우원식 의원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태릉골프장을 택지로 개발하기로 가닥 지어진 데 대해 유감"이라며 "1만가구 고밀도 개발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대표적 생태공원, 저밀도 개발, 근본적 교통대책, 자족기능 강화, 주민 친화적 개발이 전제되지 않는 계획 추진은 구민의 동의를 얻기 힘들다"고 말했다.
◆ 마포구 "상암동에만 6200가구 공급, 말도 안 돼"
마포구도 상암동의 신규택지 개발과 공공기관 유휴부지를 활용한 6200여가구의 주택 공급계획에 반대했다. 마포구는 해당 계획에서 마포구 주택 계획은 제외해달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앞서 정부가 발표한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에는 △서부운전면허시험장 부지(3500가구) △상암DMC 미매각 부지(2000가구) △상암 자동차 검사소(400가구) △상암 견인차량 보관소(300가구) 등이 포함됐다.
특히 상암동 서부면허시험장에 대한 반발이 극심하다. 서부면허시험장의 경우 규모는 크지만 활용률은 미비한 시설로 상암동 지역 주민에게는 별 혜택이 없이 활용되던 공간이다. 마포구는 이 부지를 신전략거점으로 삼고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서울시와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던 상황인데, 급작스러운 정부의 통보가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대책 발표일 유동균 마포구청장은 "상암동 하나의 동에 6200여가구의 임대주택을 건설하는 내용을 해당 지자체인 마포구와 단 한 차례의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은 동의할 수 없다"며 "상암동 랜드마크 부지 인근은 상업시설이 거의 없고, 월드컵경기장 등으로 교통난이 심각한 지역이다. 고밀 개발로 대규모 주택이 공급되면 교통체증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동균 구청장은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신규주택 공급을 늘려야 하는 정부의 정책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상암동의 유휴부지를 활용해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것은 마포의 도시발전 측면에서 계획된 것이 아니라, 마포를 주택공급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라며 "무리한 부동산 정책은 결국 정부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포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임대비율 47%인 상암동에 또 임대주택을 지어야 하냐"며 반발했다. 정청래 의원은 "주민들의 항의 목소리를 듣고 기사를 통해서 알았다"며 "마포구청장도 나도 아무것도 모른 채 발표됐다.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 과천시 "강남 집값 잡으려 과천 희생 말라"
과천에서는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과천을 '수단'으로 여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불거졌다. 김종천 과천시장은 지난 4일 성명서를 통해 "서울과 수도권 집값 폭등 문제를 과천시민의 희생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계획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김종천 시장은 "과천시민이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청사 유휴부지에 4000가구의 대규모 공동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시민과 시에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주는 일"이라면서 "정부과천청사 부지에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발상은 과천의 발전이 아니라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주택공급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천시가 이같이 반발하는 건 이미 주변에 대규모 택지가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천은 3기 신도시 발표와 맞물려 발표된 과천지구와 함께 주암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지구, 과천지식정보타운 등 2만1000여가구의 택지 조성 사업을 진행 중이다.
김 시장은 "이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최대한 협조하고 있다. 과천지식정보타운, 과천 공공주택지구, 과천주암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공급촉진지구 조성사업 추진으로 과천에는 오는 2026년까지 총 2만1275호의 공동주택이 들어서게 된다"며 "그동안 이에 따른 지역공동화 현상과 상권 침체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정부의 보상이나 자족기능 확보를 위한 대책이 없어 자구책을 마련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경기 과천·의왕의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또한 정부의 주택공급 방안에 대해 비판했다. 이소영 의원은 "과천의 숨통인 청사 일대 공간을 주택공급으로 활용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주장했다.
garde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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