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전기차 시장 영역 확대 위한 잰걸음... 여세추이(與世推移)에서 제구포신(除舊布新)까지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이솝우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근면과 성실이 강조된 산업사회에 많은 울림을 줬다. 이기려면 토끼처럼 빨리 달리되 쉬지 않아야 하며, 거북이처럼 꾸준하고 성실하게 달려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스마트한 사회는 그걸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빠른 변화와 적응까지 요구한다. 거북이가 이기기 위해선 토끼가 잠자기를 기대한 게 아니라 경주 장소를 바다로 바꾸는 것이다. 속도와 꾸준함에다 스마트한 창의성이 요구되는 셈이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 시인이자 정치가인 굴원(屈原)이 지은 어부사(漁父辭)를 보면 여세추이(與世推移)라는 글귀가 등장한다. 여세추이는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함께 변화해간다는 뜻이다.
"성인은 세상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성인불응체어물/聖人不凝滯於物), 세상을 따라 변하여 갈수 있어야 한다(이능여세추이/而能與世推移)".어부사에서는 문맥상 혼탁한 세상의 흐름에 따라간다는 의미로 쓰였지만, 일반적으로 시대나 세상의 변화에 융통성 있게 적응해가는 도리를 말한다.
한비자(韓非子)의 오두(五蠹) 편에도 "성인은 옛 도를 닦아 지키려고 하지않으며, 항상 옳은 것도 법으로 삼지 않고,(성인불기수고불법상가/聖人不期修古不法常可),세상의 일을 논하여 적절한 대비책을 세운다(논세지사인위지비/論世之事因爲之備)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세추이는 오늘날에도 중요한 자세이자 미덕이다. 그동안 정중동 행보를 보여온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의 최근 행보와도 무관치 않다. 그는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 참석을 신호탄으로 국내외에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사태 이후 본격화된 잰걸음은 활동 범위도 재계를 넘어 정부, 국민과의 소통까지 넓히고 있다. 재계는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으로 바뀌는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테슬라의 약진으로 특징지어지는 세계자동차 업계는 혁명에 버금가는 수준의 격변기다. 테슬라의 주가는 미국 증권가에서 27일(현지시간) 1539달러로 마감했다. 1년 전보다 무려 500% 이상 올랐다. 상식을 벗어나 고공행진이다. 월가의 전문가들도 혼란스럽다.
주가총액이 2500억 달러를 넘었다. 연간 판매량이 50만대도 안 되는 자동차 회사가 지난 50년간 세계자동차 시장을 지배했던 포드 GM 폭스바겐 도요타 등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의 주가 총액을 하나하나 앞질러 ‘실리콘밸리 자동차시대’를 연 것이다.
테슬라 1위에는 이유가 있다. 친환경적이긴 한데 작고 느리며, 주행거리가 짧다는 전기차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렸다. 날렵하고 세련된 디자인에 소비자들은 열광한다. 전기차의 짧은 주행거리에 대한 불만까지 해소했다. 세계 자동차업계의 지형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전기차로 옮아 가고 있는 사실도 한몫했다. 테슬라의 진격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최근 SNE리서치가 발표한 '세계 전기차 판매량'에 따르면 테슬라는 2020년 1~5월 11만1000대의 전기차를 세계 시장에 판매, 점유율 17.7%로 1위를 나타냈다. 현대·기아차는 같은 기간 4만8300대의 전기차를 판매, 합산 점유율 7.2%를 보였다.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 14일 14일 정부가 발표한 한국형 뉴딜국민보고대회에서 현대기아차그룹이 5년 내 전기차 1위 기업이 되겠다고 공표했다. 5년 이내에 전기차 100만 대를 팔아 전기차 부문에서 전세계 1위 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특히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을 적용하여 제네시스 에센시아, 기아 퓨처론, 현대 프로페시 등의 콘셉트카와 같은 양산 전기차를 출시하겠다고 한다. 어려운 시기에 국민과 정부를 향한 비전 제시는 당연히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글로벌 전기차 공급순위를 봐도 현대차 1만8000대로 5위, 기아는 1만1000대로 10위다. 테슬라는 10만1000대로 압도적 1위다. 여기에 100만 마일 내구의 자체 배터리 개발 계획, 11억 달러를 투자해 건설할 테라팩토리 계획, 하반기에 적용할 레벨-3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 등 전기차에 관한한 명불허전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을 앞두고 병사들에게 단생산사(團生散死)를 강조했다. 명량해전 무렵 조선의 전황은 최악이었다. 그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공포(恐怖)와 분열을 잠재울 수 있는 하나된 정신적 힘이었다. 실제로 뭉치며 그래도 살길이 있지만 흩어지면 죽는건 자명한 상황이었다. 이는 세계 해전사에서도 빛나는 승전의 원동력이 된다.
정 수석부회장의 국내행보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 5월13일 충남 천안의 삼성SDI 사업장을 찾아 이재용 삼성 부회장을 만난 데 이어 지난달과 이달 구광모 LG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을 잇따라 회동했고 다시 이 부회장을 만났다.
표현이 과할 수있으나 정 부회장으로서는 단생산사의 심정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만난 총수들이 전기차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LG화학은 전기차 배터리 세계 1위 업체이고 삼성 SDI는 세계 4위 업체다. SK도 세계 7위권이다.
재계도 장차 올지 모르는 전기차 배터리 부족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회동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 부회장의 세계 1위 전기차 업체 선언과도 맞닿아 있다. 전기차 보급이 워낙 빠르다 보니 부족 시기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올해 전세계 신차 중 전기차의 비율은 2.7%. 5년뒤 10%.10년 뒤는 25%에 이를 전망이다. 배터리 부족은 이르면 내년 말쯤 나타날거란 예상도 나온다. 세계 전기차 업체들도 배터리 업체들과 다양한 연합을 형성하는 추세다.
재계 한 관계자는 "주요 그룹 총수가 연쇄 회동에 이어 대국민 발표까지 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고 전력을 다하고 있는 만큼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는 내년 국내에서 진검 승부를 먼저 시작한다. 전기차만을 위한 전용 플랫폼 인 E-GMP를 기반으로 한 차세대 전기차를 내놓고 테슬라를 바짝 추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삼성, LG, SK와의 협업도 강화한다. 완성도 높은 수입 전기차도 잇따라 들어오는 내년 하반기는 국내시장이 요동칠 것 같다.
중국 춘추좌씨전(春左氏傳) 기록에 춘추시대(春秋時代) 노(魯)나라 소공(昭公) 17년 겨울 하늘에 혜성이 나타나자 대부(大夫) 신수(申須)가 제구포신(除舊布新)의 징조로 해석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혜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불길함의 상징인데 이를 변혁의 징조로 본 것이다. 제구포신은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는 의미다. 정 수석부회장의 제구포신을 기대한다.
bienns@tf.co.kr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