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외 악재 속 더해진 '사법 리스크'…삼성 "정상적인 경영 어려워" 거듭 호소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년 4개월 만에 다시 구속 갈림길에 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미중 무역 갈등, 한일 갈등 등 대외 악재 속에서 위기 극복에 주력해왔던 삼성이 '총수 부재'에 따른 충격까지 떠안게 될지, 삼성의 앞날이 법원 판단에 달렸다.
경영권 부정 승계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재용 부회장은 8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했다. 이후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 등 3명에 대한 영장심사가 진행됐다.
검찰은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고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계열사 합병·분식회계를 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날은 사안의 중대성과 증거인멸 우려 등을 이유로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재용 부회장 측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인으로서 도주 우려가 희박하고, 장기간 수사로 증거인멸 우려 또한 없어 불구속 재판을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날 오전 10시 굳은 표정으로 법원에 도착한 이재용 부회장은 심사 내내 법정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점심은 미리 준비해놓은 도시락으로 해결한 뒤 장시간 심사를 받았다. 이날 심사가 길어진 이유는 양측이 치열한 법리 공방을 펼친 데다 검찰이 제출한 구속영장 청구서가 1명당 150쪽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분량이었기 때문이다. 함께 제출한 수사 기록은 20만 쪽 분량에 달한다.
영장심사를 마친 이재용 부회장은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로 이동할 예정이다. 그곳에서 심문 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기한다.
결과는 다음 날(9일) 새벽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르면 이날 밤늦게 나올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심사가 일과 시간을 넘길 정도로 길었던 만큼 구속 여부 판단 역시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2017년 초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앞선 2차례 영장실질심사에서도 구속 여부가 모두 심사 다음 날 오전 4시 이후에 결정됐다. 이날도 삼성 주요 경영진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릴 것으로 보인다.
법원의 구속영장 심사 결과에 따라 삼성의 앞날은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특히 2년 4개월 만에 총수 구속 상황이 반복된다면, 현재 진행형인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경영 위기 극복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현재 삼성은 주력인 반도체(DS)·스마트폰(IM)·가전(CE) 등 모든 부문에서 위협을 받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미중 무역 분쟁 이슈로 '샌드위치' 신세에 놓여 있다. 여기에 일본의 규제가 더욱더 확대될 조짐을 보여 초비상이 걸렸다. 스마트폰은 이미 시장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데다 화웨이, 샤오미, 오포, 비보 등 중국 기업들이 지배력을 키우고 있어 경쟁력 확보를 위한 혁신 투자 활동이 필수적이다. 가전 역시 시장이 위축된 상태라 판매 부진을 뚫을 해법 마련을 위한 연구 및 투자가 필요하다.
그동안 이재용 부회장은 굵직한 현안을 풀어내기 위해 직접 발로 뛰는 현장형 총수로 꼽혀왔다. 하지만 이번 사법 리스크가 재부각되면서 그의 활동 보폭이 좁아지고 있다. 삼성 입장에서 재구속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맞게 되면 가장 중요한 시기에 리더십 부재 위기에 처하는 셈이다.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 등 미래 성장 계획 또한 올스톱 단계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
재계는 꾸준히 우려를 제기해왔다. 범죄 사실을 밝히는 건 당연하지만, 1년 반 동안 수사를 이어나가며 50여 차례 압수수색을 하고, 110여 명에 대해 430여 회 소환 조사를 실시하는 등 '기업 괴롭히기'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앞서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에 대한 위법성 여부를 따지는 건 명확하게 해야 한다"며 "다만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수사처럼 기업 수사를 장기적으로 끌고 가면서 기업들이 다른 글로벌 기업들과 제대로 경쟁할 수 없도록 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기소 타당성을 판단해달라'며 이재용 부회장 측이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한 지 이틀 만에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검찰을 향한 시선은 더욱더 차가워졌다. 공정한 수사를 위해 스스로 도입한 수사심의위원회 제도의 무력화를 자초했다는 비판이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이미 자존심을 지키려는 차원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겹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삼성 내부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법원의 판단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날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을 면해도 안도할 수 없지만, 일단 '총수 부재'라는 초유의 사태만은 피하고 싶은 심정이다. 앞서 삼성은 이례적으로 앞날에 대한 걱정이 담긴 입장문을 통해 수차례 결백함을 강조해왔다.
삼성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우리 경제는 한 치 앞을 전망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주역이 돼야 할 삼성이 오히려 경영의 위기를 맞으면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리고 있다. 부끄럽고 송구스러운 마음"이라며 "장기간에 걸친 검찰 수사로 인해 삼성의 정상적인 경영은 위축돼 있다. 삼성의 경영이 정상화돼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매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rock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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