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000억 원 안전 비용 투자 무색
[더팩트ㅣ이한림 기자] 충남 서산시 대산읍에 위치한 대산석유화학단지(대산공단)에서 올해 2월부터 매달 한 건의 사고가 발생하며 근로자와 주민부터 지자체와 석유화학업계 전반에 우려의 시선이 깔리고 있다. 지난해 대산석유화학단지에 위치한 업체들이 모여 지자체와 약 8000억 원의 안전 비용을 투자하겠다고 합심한게 무색할 만큼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 상황이다.
26일 대산석유화학단지와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올해 2월부터 이달까지 대산석유화학단지에 입주해 있는 한화토탈, 롯데케미칼, 현대오일뱅크, LG화학에서 각 1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각 사는 사고 직후 오너나 대표가 직접 현장을 찾아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안전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내놓고 있으나 피해를 입은 인근 주민을 비롯, 환경단체 등의 불만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먼저 가장 최근에 발생한 사고는 지난 20일 LG화학 촉매포장실에서 발생한 폭발 화재 사고다. 화재는 40여 분만에 진압됐지만 당시 촉매 테스트를 진행했던 연구원 1명이 사망했고 2명이 화상을 입었다. 인근 주민의 인명 및 재산 피해는 없었으나 정부는 LG화학 촉매포장실에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리고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있는 시점이다.
LG화학은 이례적으로 총수인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사고 직후 직접 현장을 찾아 사고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안전 관리 체계를 살필만큼 강도 높은 대처를 진행했다. 또 26일에는 안전 확보가 되지 않으면 기존 사업도 철수하겠다며 '환경안전 강화대책'도 내놨다. 철저한 반성을 통해 모든 것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 사업과 환경 안전에서 낮아진 이해관계자들의 신뢰를 높히겠다는 방침이다.
한 달 전인 4월에는 현대오일뱅크의 대산석유화학단지 내 배출 가스 연소 탑(플레어 스택) 공정에서 심한 악취가 발생하며 인근 주민 70여 명이 병원에 이송된 사고가 있었다. 현대오일뱅크는 정기 보수를 위한 공정 처리 부하량 감소 과정에서 액화석유가스(LPG)를 회수하는 작업을 벌이는 중 일부 가스가 순간적으로 연소 탑에 지나치게 많이 유입된 게 원인인 것 같다"고 해명했으나 인근 주민들은 "악취로 밤새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악취로 인해 고통을 받은 주민과 근로자를 병원으로 후송하는 버스를 마련해 치료를 돕는 것으로 대처했다. 또 기계적 결함 여부를 면밀히 살피고 인근 주민에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방송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3월 사고는 롯데케미칼에서 발생했다. 대산석유화학단지 내 나프타분해공장의 컴프레셔 하우스에서 굉음을 동반한 폭발 사고였다. 사망자는 없었으나 40여 명의 근로자와 인근 주민이 부상을 입어 병원에 후송됐으며, 석유화학단지 주변을 둘러싼 독곶리 편의점과 식당 등의 유리창이 깨지고 폭발하거나 공장 지붕의 파편이 인근 민가까지 날아가는 등 재산 피해도 동반해 올해 피해 규모가 가장 컸던 폭발 사고로 꼽힌다.
롯데케미칼은 사고 후 곧바로 임병연 롯데케미칼 대표를 현장에 파견해 인근 주민과 협력 업체, 주변 공단에 끼친 심려에 사과하는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또 사고의 명확한 원인규명과 근본적인 재발방치 대책 마련을 최우선으로 하고 모든 과정을 관계 기관과 함께 투명하게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워 대처하고 있다.
2월 사고가 발생한 업체는 지난해 유증기와 KPX그린케미칼 암모니아 유출 사고로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던 한화토탈이었다. 한화토탈이 생산하는 화학용제를 싣고 대산항으로 운반하는 컨테이너 차량이 전복되면서 9톤 가량의 화학물질이 유출된 사고다.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은 아니지만 물질 일부가 배수로를 통해 대산항 앞바다로 흘러들어 100m 가량의 기름띠를 형성했고 해양환경공단과 해양경찰 등이 출동해 오일펜스를 치고 7시간 가량의 방제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고가 발생한 업체들은 모두 사고 직후 안전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다만 중소협력업체를 포함한 대산석유화학단지 내 입주 업체 근로자와 인근 주민, 환경단체, 관계 기관의 불만과 불안은 지속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8월 대산석유화학단지 내 현대오일뱅크와 한화토탈, LG화학, 롯데케미칼 등 4개사가 충남도와 함께 앞으로 5년 동안 안전·환경 분야에 807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도 발표한 지 1년이 되지 않은 시점에서 '1달 1사고'가 4달 연속 이어지고 있어 업체들의 안전 대책이 무의미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더욱이 대산석유화학단지는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와 울산 미포석유화학단지와 함께 국내 3대 석유화학단지로 불리는 곳이지만 국가산업단지인 여수와 미포와 달리 개별입지 공장지역이다. 이에 대산석유화학단지에 위치한 입주사들이 개별적으로 안전 대책을 강구하고 관리해야 하나 잇따른 사고로 관계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있는 상황이다.
대산석유화학단지 인근 마을인 독곶리에서 생업을 하고 있는 한 주민은 "사고가 코로나보다 무섭다. 사고의 대부분이 잠을 자고 있는 새벽에 발생했기 때문에 또 사고가 날까봐 불안해서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고 있다"며 "공단 내 기업들이 사고가 나면 늘 사과를 하고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있지만 수년째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만 보인다"고 우려했다.
한 환경단체 관계자는 "화학사고의 원인은 사고 직전 근로자의 안일한 판단일 수 있으나 가장 큰 원인은 노후된 설비에서 비롯된다"며 "업체에서도 사고 원인을 기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한 줄 발표에만 그치고 있다. 피해자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와 보상은 당연하고 피해를 입은 부상자에게는 완전한 회복이 이뤄질 때까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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