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길 막힌 패션업계…"살려달라" 청와대 국민청원 올라와
[더팩트|한예주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펜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내수 판매에 이어 수출길까지 막힌 패션업계에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한국 의류벤더 섬유 산업을 살려달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는 등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이렇다 할 지원책이 나오지 않으면서 업계 전반으로 대규모 인력 조정이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관측도 나온다.
16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 국가들에 의류를 수출하는 업체들은 수출사업부를 중심으로 인원 감축에 나섰다.
SPA 브랜드인 '탑텐'을 운영하는 신성통상은 최근 수출 사업이 아예 중단되면서 수출본부 직원 50여 명에게 해고를 통지했다.
신원도 해외사업부 1팀을 정리하고, 소속 직원 7명을 정리해고했다. 영캐주얼브랜드 비키의 오프라인 사업을 접으면서 담당 직원 20여 명도 내보냈다. 학생복 업체 형지엘리트는 지난달 말 40여 명의 본사 정직원 중 5명을 감축했다.
유니클로 한국법인 에프알엘코리아는 배우진 대표가 실수로 인력 감축 계획을 전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면서 감원이 이뤄질 것을 예고했다. 배 대표가 지난 2일 인사 부문장에게 보내는 이메일에는 "부문장님, 어제 회장님 이사회 보고를 드렸고 인사 구조조정에 대해 관심이 많다"면서 "보고 내용대로 인원 구조조정이 문제없도록 계획대로 꼭 추진을 부탁한다"는 글이 쓰여 있었다.
이처럼 패션업계가 코로나19 확산 두 달여 만에 구조조정에 돌입한 이유로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사업의 '구조적 위험성'이 꼽힌다. 수출에 의존하는 OEM 사업은 수출국의 시장 변동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주요 수출 시장인 미국과 유럽이 코로나 19로 거의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으면서 국내 패션업계도 '도미노 타격'을 받았다. 실제로 이들 지역 바이어들은 코로나19로 경기 상황이 나빠지자 국내 패션업체들에 선적 보류 및 주문 취소 등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여파로 미국, 유럽업체들이 주문한 물량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있다"면서 "사실상 수출 업무 자체가 없어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는 버티기 힘든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 역시 "월급 삭감과 무급휴직·육아휴직 확대로 버티고 있었지만, 자금 압박이 심해지자 인원을 감축하고 건물 등 자산을 팔아치우는 방법밖에 없다"고 답했다.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을 받기 어려운 것도 구조조정의 한 이유로 꼽힌다. 패션기업 역시 코로나19 타격이 불가피한 업종임에도 여행업·공연업·관광운송업·관광숙박업·해상여객운송업 등 관광업종과 달리 패션업은 '특별고용지원 업종'에서 제외됐다.
정부에서 전 업종을 대상으로 '고용유지지원금' 신청 접수를 받았지만, 이는 패션 산업 특성상 적합하지 않은 지원책이라고 패션계는 입을 모았다.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하면 코로나19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신사업을 진행하더라도 신규 인력 채용이 어렵다.
이에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한국 의류벤더 섬유 산업을 살려달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1만 명이 넘는 동의를 받았다.
이 청원자는 "미주에 의류 수출을 하는 벤더 업체들은 미국의 코로나19 확산으로 구매자의 일방적 구매 취소, 선적 취소, 대금지급 거부를 당하고 있고, 구조조정도 시작됐다"면서 "저희 회사는 인원 감축, 월급 삭감, 무기한 무급휴직, 육아휴직 등으로 압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의류 벤더 업체들은 한국 수출의 한 축을 담당할 만큼 좋은 성과를 냈고, 많은 종사자가 밤낮으로 피땀을 흘려왔다"면서 "실업 위기에 내몰린 의류 벤더 산업 종사자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회사에 필요한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이 없다"며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업계인 만큼 정부가 사업 특성을 이해한 후 지원책을 내줬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섬유산업연합회도 업계 차원에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오는 17일 회원사들이 모여 코로나19로 인한 애로를 정리해 정부에 건의 사항을 전달할 예정이다.
hyj@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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