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경 LG명예회장 별세…기업경영 '정도(正道)' 걸어 온 45년
[더팩트 | 서재근 기자]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14일 오전 10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고(故) 구인회 LG 창업주의 장남으로 지난 1925년 경남 진주시 지수면에서 태어난 구 명예회장은 그룹 창업 초기였던 1950년 25살의 나이로 모기업인 락희화학공업주식회사에 입사, 45년 동안 기업 경영에 전념했다.
1970년 1월 9일 LG그룹 2대 회장으로 취임한 구 명예회장은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나라 안팎의 어려운 경영 환경을 극복하고, 화학·전자 산업 강국을 위한 도전과 21세기 선진 기업 경영을 최우선 실천 과제로 제시하고, 그룹의 혁신을 주도했다.
지난 1990년 2월 '고객가치 경영'을 기업 활동의 핵심으로 제시한 구 명예회장은 경영이념으로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 '인간존중의 경영'을 선포했다. '고객가치'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경제계에 혁신적인 전기를 마련한 구 명예회장은 이후 2년에 걸쳐 그룹 전 임원 500여 명과 오찬 미팅을 가진 데 이어 1년 동안 140여 차례에 걸쳐 현장의 임직원들과 간담회 형태의 대화 자리 마련, 경영혁신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데 공을 들였다.
임직원뿐만 아니라 고객의 목소리에도 집중했다. 구 명예회장은 LG전자 서비스센터를 비롯해 당시 LG가 사업하고 있던 분야에서 고객을 만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수시로 현장을 찾아 "고객의 입장에서 듣고 생각하라. 이것이 혁신이다"라고 강조했다.
구 명예회장이 기틀을 닦은 '고객경영'은 시장개방이 본격화하던 지난 1990년대 초중반 주요 대기업을 중심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앞서 지난 1994년 중앙대학교는 "국내 기업인들 가운데 고객경영의 효시가 됐다"고 평가하며 '참 경영인 상' 수상자로 구 명예회장을 선정했다.
특히, '기술입국(技術立國)'의 일념으로 화학과 전자 분야의 연구개발에 집중해 온 구 명예회장은 70여 개의 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수많은 국내 최초 기술과 제품을 개발해 LG의 도약을 넘어 우리나라의 산업 고도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1980년대 말 대덕연구단지에 LG화학 종합기술연구원 설립을 추진했을 당시 구 명예회장은 "연구소만은 잘 지어라. 그래야 우수한 과학자가 오게 된다"라며 기술인재 유치를 위한 지속적이고 공격적인 투자를 당부한 바 있다.
아울러 구 명예회장은 평소 "우리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뛰어난 기술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라며 "세계 최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배우고, 거기에 우리의 지식과 지혜를 결합하여 철저하게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인재는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 가운데 스스로 성장하고 변신하며 육성되는 것'이라는 일념으로 인재육성에 매진해 온 구 명예회장의 노력은 그룹 인재 양성기관 'LG인화원' 설립으로 이어졌다.
지난 1988년 인화원 개원식에서 그는 "기업은 인재의 힘으로 경쟁하고 인재와 함께 성장한다"라며 "기업의 궁극적 목표인 인류의 번영과 복지도 인재의 빛나는 창의와 부단한 노력에 의해서만 이룩될 수 있다. 인재 육성은 기업의 기본 사명이자 전략이요 사회적 책임이다"라고 강조했다.
구 명예회장이 25년 간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LG그룹은 안팎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왔다. 실제로 해당 기간 LG그룹의 매출은 260억 원에서 30조 원대로 약 1150배 성장했고, 임직원 수 역시 2만 명에서 10만 명으로 늘었다. 주력사업인 화학과 전자 부문은 부품소재 사업까지 영역을 확대해 원천 기술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수직계열화를 이루며 오늘날 LG그룹의 모습을 갖출 수 있는 기틀이자 초석을 마련했다.
그가 주도한 LG그룹의 성장은 단순이 외형을 늘리는 데 한정되지 않는다. 구 명예회장은 1988년 21세기 세계 초우량기업으로 도약을 목표로 '21세기를 향한 경영구상'이라는 변혁을 발표, 경영혁신을 천명했다. 사업전략에서 조직구조, 경영스타일, 기업문화에 이르기까지 그룹의 전면적인 체질개선을 공언한 것이다.
과도하게 회장 1인의 의사결정에 의존하는 관행화된 경영체제를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선진화된 경영 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자율과 책임경영'을 절체절명의 원칙으로 내세운 '구자경식(式) 혁신'은 LG의 활동 영역을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구 명예회장의 재임기간 LG가 세운 해외 법인의 수만 50여 개에 달한다. 특히 지난 1982년 미국 알라바마 주의 헌츠빌에 세운 컬러TV공장은 국내 기업 최초의 해외 생산기지다.
이후 지난 1995년 2월 럭키금성 명칭을 LG그룹으로 바꾸면서 그룹 총수 자리를 장남인 고 구본무 회장에게 승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구 명예회장은 임종을 맞을 때까지 인재 양성을 위한 공익활동에 헌신해왔다.
LG그룹은 "구 명예회장은 시련 많은 현대사 속에서도 기업경영의 '정도'를 잃지 않았고, 언제나 남보다 앞선 생각, 과감한 결단으로 우리 경제에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던 큰 기업인이었다"라며 "회장으로 25년간 외롭고 힘든 공인의 입장에서 수많은 역경을 헤쳐 나와 오늘날 LG를 일궈낸 진정한 참 경영인"이라고 밝혔다.
한편, 구 명예회장의 장례는 고인과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최대한 조용하고 차분하게 치르기로 했다. LG그룹 관계자는 "별도의 조문과 조화를 정중히 사양하기로 했고, 빈소와 발인 등 구체적인 장례 일정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likehyo85@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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