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DLF 판매 실태 조사 중간결과 발표
[더팩트|이지선 기자] 대량 원금 손실을 불러온 해외 주요국 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상품(DLF의·DLS) 판매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여지가 있는 사례가 다수 발생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은행들은 이번 DLF에 편입된 DLS 발행 등을 지속적으로 요청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주문제작형 펀드로 자본시장법을 위반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1일 주요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상품(DLF) 관련 중간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금감원은 "현재 현장검사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시장 불안을 해소하고 향후 검사 및 분쟁조정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중간 검사결과를 발표하게 됐다"고 밝혔다.
원승연 금감원 부원장은 "혹자는 투자자들이 합리적 판단을 하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어려운 구조의 금융상품은 정보 측면에서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 불공정성이 있기 때문에 어느 국민이나 피해를 입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검사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 상품 설계부터 판매까지 사라진 '투자자보호'
금감원은 지난 8월 말부터 DLF 상품 설계와 제조, 판매 실태를 점검하기 위해 DLF 판매사인 우리·하나은행, DLS 발행사인 IBK투자증권·NH투자증권·하나금융투자, DLF 운용사인 유경·KB·교보·메리츠·HDC자산운용 등에 대해 합동 현장검사를 진행했다.
중간 검사 결과 DLF 설계 및 제조, 판매 전 과정에서 금융사들이 투자자보호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중시해 리스크 관리에 소홀하거나 내부통제가 미흡하고, 불완전 판매가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8월 7일 잔액 기준으로 주요 해외금리 연계형 DLF는 총 210개가 설정돼 3243명의 투자자(법인 222개 포함)에게 7950억 원이 판매된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기준으로 확정된 DLF 상품 손실률은 54.5%로 집계되고 있다. 만약 이 금리수준이 유지된다면 5784억 원이 손실구간에 진입해 추가 손실 예상금액은 3513억 원(예상손실률 52.3%)에 달한다.
원금이 손실될 우려가 있는 이 상품은 대부분 개인 일반투자자에게 판매됐다. 특히 그중에서도 60대 이상 투자자는 48.4%로 총 1462명이 3464억 원을 투자했다. 이들은 상품에 대한 이해도가 낮을 뿐더러 투자 손실을 만회할 수 있는 경제활동 기회도 적다.
은행들의 판매 정책을 들여다보면 투자자를 보호하려는 의지가 거의 없는 수준이다. 두 은행은 본점 차원에서 영업점 및 프라이빗뱅커(PB)들에게 백테스트 결과를 토대로 손실사례가 없다고 강조하라고 유도했다. 그러면서 목표 고객층을 단기간에 확성수익을 원하는 정기예금 선호고객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상세한 판매과정을 고려하지 않고도 서류만으로도 불완전판매를 의심할 수 있는 사례도 20% 적발됐다. 설명의무를 위반하거나 투자자 성향에 대한 서류가 사후에 보완됐고, 같은 영업점에 근무하는 무자격자가 설명을 한 뒤에 유자격 직원이 서류만 다시 작성하기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두 은행이 소비자 보호에 대한 성과지표 자체의 배점이 낮은 것도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두 은행은 일반지점에 비해 PB센터의 비이자수익이나 펀드 배점을 높게 형성하는 한편 소비자 보호 항목의 배점은 설정하지 않기도 했다. 두 은행의 경영 계획에서도 매년 수수료수익 증대 목표나 DLF 판매 목표를 상향 제시하고, 본점차원에서 매일 영업본부 등에 실적 달성을 독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 위험성 지적에도 눈 가린 금융사…유명무실 상품선정위원회
금융사들은 또한 수수료 이익 창출을 위해 내부적으로 제기된 위험 가능성에 대한 의견도 무시했다. 독일국채 DLF를 기준으로 볼 때 금융사들이 얻은 수수료 수익은 4.93%에 달한다. 은행의 경우 펀드 판매 건당 1.00%의 선취수수료를 수취한다. 이외에 외국계 IB는 상품 설계와 위험 헤지를 제공하면서 3.43%의 수수료 수익을 얻고 발행 증권사는 0.39%, 증권을 펀드에 담은 운용사는 0.11%의 수수료를 수취한다.
이 과정에서 은행은 상품의 기준이 되는 하락이 진행되는 동안 손실 배수를 높이는 등 상품 구조를 변경해 일정 수준 이상의 약정수익률을 유지하면서 DLF를 계속 판매했다. 또 자산운용사가 단순히 과거 금리를 토대로 실시한 수익률 모의 실험 결과를 그대로 수용해 판매에 사용했다.
은행들의 내규에 따르면 상품을 출시하기 전 상품선정위원회의 심의 및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이번 DLF 상품 중 심의를 거친 건은 1% 미만에 불과했다. 우리은행의 경우 DLF 380건 중 기초자산이 동일하다는 이유로 2건만 상품선정위원회에 회부했다. 일부 위원들이 평가표 작성을 거부하자 찬성 의견으로 임의 기재하고 반대의견을 표명한 위원을 교체하기도 했다. 하나은행의 경우에도 753건의 상품 중 위원회에 부의한 건은 6건에 불과하며 손실사태가 발생한 DLF는 기초자산 일부가 동일하다는 이유로 이를 상품위원회에 올리지 않았다.
김동성 은행 담당 부원장보는 "이번 사태는 은행 뿐 아니라 자산운용사나 증권사 등에서도 상품을 최종적으로 검토하는 위원회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은 사례"라면서 "생각보다 상품위원회 구성원들의 직급이 낮아 투자자 보호를 위해 움직이는데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제도 개선의 여력이 있는지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자체 리스크 분석도 미흡했다. 두 은행 모두 자산운용사의 백테스트 결과에 대해 추가 검토나 보완을 하지 않은채 그대로 수용했다. 손실가능성이 증대하는 상황에서도 상품 구조를 바꿔 상품 판매를 지속하기도 했다.
은행이 판매한 DLF 상품에 편입된 독일국채 금리 연계형 DLS를 발행한 증권사의 경우 지난 3월 이미 내부 리스크관리부서로부터 "거래는 가능하지만 상품의 원금 손실도 가능하다"며 "평판리스크에 우려되는 부분이 있으니 신중히 거래하라"라는 의견이 거듭 나왔지만 개의치않고 해당 증권을 발행했다.
금감원은 증권사들이 외국계 IB에 가격변동 리스크를 분산하는 백투백헤지로 리스크를 직접 부담하지 않아 수수료 창출을 위해 DLS 발행을 단행했을 것으로 봤다. 그중에서 한 증권사는 투자자 약정수익률을 낮추고 그대신 증권사 수수료를 높인 사례도 있었다.
◆ 은행이 설계 전 과정에 관여…금감원 "검사에 협조해달라"
금감원은 이번에 판매된 DLF 상품의 설계나 판매 전 과정에 은행이 큰 역할을 했다고 봤다. 가장 처음에는 외국계IB가 국내 지점 등을 통해 증권사에 DLS상품을 소개했고, 증권사는 은행에 판매를 제안했다. 이후 은행은 만기나 손실발생이 가능한 금리수준, 손실배수, 약정 수익률 증의 DLS 기본 조건을 결정해 증권 발행을 요청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은행이 펀드 상품을 직접 설계하는 주문자제작생산(OEM) 펀드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본시장법상 은행이 펀드 상품 제작을 주문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검사 과정에서 은행이 상품 운용에 참여했다는 OEM을 의심하면서 검사를 했지만 아직 중간단계인 만큼 요건이 정확히 일치하느지에 대해서는 논쟁점이 있다"면서도 "법률적으로 검토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금감원은 향후 사실관계 확정 등을 위해 추가 검사를 실시하고 법리검토와 제재 절차 검토도 진행할 예정이다. 원승연 부원장은 또한 "은행들은 사과를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뢰 회복과 재발 방지를 위해 검사 과정을 통해 문제점이 객관적으로 드러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으므로 검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를 바라면 분쟁조정 과정에서도 고객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달라"고 당부했다.
이근우 금감원 일반은행검사국 또한 "현재 우리은행의 독일국채금리 연계형 DLF 상품에 대한 조사는 다른 사례에 비해 빠르게 검사가 진행되고 있다"며 "검사 절차는 은행의 동의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협조적으로 자료가 제출되지 않으면 진행이 빨리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검사 결과가 확정된 이후에 분쟁조정도 진행될 전망이다. 김상대 금감원 분쟁조정2국장은 "불완전 판매 여부라던가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 등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검사로 사실관계가 확정된 후에 분조위가 열릴 것"이라며 "검사 이후 금융기관의 소명 절차 등도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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