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위기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과 성원해 달라"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뇌물 공여 사건 혐의와 관련해 다시 한번 재판을 받게 됐다. 대법원이 2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이하 영재센터) 후원금 16억 원과 마필 구매비 34억 원을 모두 뇌물로 봐야 한다고 결론 내면서 삼성 내부에서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9일 오후 2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 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루된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 판결을 선고했다. 이날 판결 결과에 따라 그룹 수장의 운명이 달라지는 만큼 삼성에서는 재판 시작 전부터 숨을 죽인 채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뇌물공여를 비롯해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가법) 상 횡령 ▲특경가법상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 은닉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모두 5가지다.
삼성에 가장 절실한 법리 해석은 '상고 기각'이었다. 대법원이 이 부회장의 2심의 법리 해석을 타당하다고 판단, 형을 확정하는 것이다. 집행유예 판결이 확정될 경우 2년여 동안 이 부회장의 발목을 잡았던 법정 공방을 매듭짓고 경영현황에 집중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2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34억 원의 '말 소유권(구입비)'과 영재센터 지원금 16억2800만 원, 재산국외도피혐의에 관한 판단을 달리할 경우 상황은 180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재산국외도피죄의 경우 범죄 금액이 50억 원을 넘을 경우 법정형이 최대 무기 또는 10년 이상 징역으로 집행유예 선고 자체가 불가능한 만큼 삼성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밖에 없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아쉬운 결과'다. 비록 모든 무죄 혐의가 뒤집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지만,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영재센터 후원금에 이어 줄곧 핵심 쟁점으로 다뤄졌던 마필 구매비 부분에 있어 마필 구매 비용을 제외한 말 사용료에 관해서만 뇌물로 간주한 2심의 판단을 뒤집으면서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뇌물 규모는 실형의 기준인 '50억 원'을 훌쩍 넘어 86억 원까지 늘었다.
초유의 '총수 부재' 가능성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삼성은 겉으로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모양새지만, 내부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분위기다. 미중 무역 전쟁 여파에 이어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에 이르기까지 쉴 틈 없지 몰아치는 대외 악재 속에 '총수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지만, 이날 판결로 자칫 '대응 동력'을 상실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물론 이 부회장의 '집행유예' 가능성은 열려 있다. 대법원이 삼성이 해외 법인에 용역비를 송금한 것과 관련, 검찰이 적용한 재산국외도피죄에 관해 원심과 같이 무죄로 판단해서다. 마필 구매 비용과 영재센터 후원금 부분에 있어 파기환송 결정이 나왔지만, '작량감경'에 따라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 선고를 받을 수 있다.
작량감경이란 법률상의 감경 사유가 없어도 범죄의 구체적인 정상을 고려했을 때 법률로 정한 형이 과중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법관 재량으로 형량의 상한과 하한을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다. 특경가법 하한형이 징역 5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부회장의 형량은 징역 2년 6개월까지 줄어들 수 있다.
삼성 변호인단 측에서도 "가장 무거운 재산국외도피죄가 무죄 확정했다는 점, 삼성이 어떤 특혜 취득하지도 않았음을 인정받았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법조계 일각에서도 이미 이 부회장이 지난 2017년 2차 구속영장 청구 이후 353일 동안 수감생활을 했고, 1심에서 유죄로 판단한 횡령액 전부를 변제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작량감경 가능성에 충분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2019년 8월 28일 자 <[이재용 대법선고 D-1] '파기환송=구속수감'…법조계 "'절대공식' 아니다"> 기사 내용 참조)
판결 이후 삼성 측은 "이번 사건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즉각 입장 자료를 냈다. 특히, 해당 자료에서도 이 같은 불안과 우려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삼성 측은 "최근 수년간 대내외 환경의 불확실성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 왔다"며 "미래산업을 선도하기 위한 준비에도 집중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갈수록 불확실성이 확산하는 경제 상황 속에서 삼성이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 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성원을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재계 안팎에서도 아쉬운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대법원은 최고 권력인 정부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는 기업의 상황에 관해 경제계가 느끼는 바와 너무 뚜렷한 견해차를 보였다"며 "특히, 경제계 안팎으로 불확실성이 확산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 같은 법리해석이 나온 것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고 말했다.
likehyo85@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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