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포·마 뗀 JY…삼성 '플랜B' 없는 '사면초가'
[더팩트 | 서재근 기자] "50년의 역사가 3년의 고초로 무너질 위기에 직면했다."
재계 안팎에서 '삼성의 위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직언(直言)에 인색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들조차 "창사 이래 가장 심각한 상황"이라는 평가를 내놓을 정도다.
지난 4월 삼성전자 경기도 화성사업장에서 치러진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나란히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에서 '세계 1위' 도약 의지를 천명했을 때만 하더라도 민관 협력 모델의 시너지를 기대하는 장밋빛 전망이 나왔지만, 2개월여 만에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지난 7일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이후 6일째가 지날 때까지 이 부회장이 누구와 만나 무슨 얘기를 나눴는에 관해 삼성발로 확인된 사안은 없지만, 현지 주요 언론 등을 통해 전해진 바를 종합하면 이번 출장은 철저하게 '위기 대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게 업계 안팎의 중론이다. 이 부회장이 지난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치러진 30대 그룹 총수 간담회에 불참하면서까지 현지 일정을 소화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는 점 역시 이 같은 해석에 설득력을 더한다.
이 부회장은 이번 일본 출장에서 현지 기업인과 재계 원로, 금융권 관계자들과 잇달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부친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때부터 대를 이어 온 견고한 '대일 파트너십'을 총동원해 '우회 수출' 등 반도체 핵심 소재를 확보할 수 있는 '플랜 B'를 구축하는 데 올인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삼성전자 안팎에 산재한 리스크 요인이 '총수 리더십'만으로 해결책을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삼성전자의 올해 2분기 경영실적을 살펴보면, 영업이익은 6조50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반 토막'이 났다. 반도체 수요 둔화에 발목을 잡혔다.
미중 무역 분쟁으로 촉발한 미국이 화웨이 제재와 더불어 구글과 아마존 등 삼성전자의 주요 반도체 수요처인 글로벌 IT 업체들마저 잇달아 데이터센터 건립을 미루면서 실적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전 세계 경제의 중추를 맡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은 이번 일본 사태와 더불어 가장 큰 고민거리다. 최근 막을 내린 G20 정상회담을 계기로 삼성전자는 어느 한쪽의 편에 서지 않아도 되는 물리적 시간을 버는 데 성공했지만, 소강상태의 균형이 언제라도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파운드리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이 부회장은 지난 4월 오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분야 연구개발 및 생산시설 확충에 133조 원을 투자하고, 전문인력 1만5000명을 채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장기 투자 계획을 발표했지만, 일본이 파운드리 사업에 핵심 소재인 '포토리지스트'를 수출 규제 리스트에 포함하면서 첫발도 제대로 떼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그 사이 파운드리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직접 경쟁을 벌이는 업계 1위 대만 TSMC는 지난 6월 전년 대비 22% 늘어난 3조2459억 원의 매출을 기록, 월별 기준 최고의 성적표를 받아드는 데 성공하며 삼성과 격차 벌렸다.
국가 간 외교전에서 촉발한 리스크가 기업 경영의 발목을 잡자 경제단체 '맏형' 격인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 수장까지 정치권을 향해 작심 발언을 토해내는 등 재계의 불만도 최고조에 달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일본은 치밀하게 정부 부처 간 공동작업까지 해가며 선택한 작전으로 보복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서로 비난하기 바쁘다"며 "중국과 미국 모두 보호무역주의로 기울어지며 제조업 제품의 수출이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우리는 여유도 없으면서 하나씩 터질 때마다 대책을 세운다. 이제 제발 정치가 경제를 놓아줘야 할 때"라며 강한 어조로 쓴소리를 한 바 있다.
진짜 문제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된 사정 당국의 수사다. 지난해 2월부터 사정 당국이 삼성전자 수원 본사와 삼성바이오, 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물산 등 그룹 계열사를 상대로 벌인 압수수색 횟수는 19차례 달한다.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전자·전기계열사의 사업을 지원·조율하는 사업지원테스크포스(TF) 역시 기능이 마비된 지 오래다.
특히, 애초 회사 가치를 산정하는 방식의 적법성 시비를 가리기 위한 검찰 수사가 '삼성 승계' 쪽으로 무게추가 옮겨지면서 재계는 물론 학계와 법조계 안팎에서도 "유죄를 예단하고, '표적 수사'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는 식의 수사를 종결하고, 분식회계의 적법성 유무를 명료하게 가려내는 데 집중하라"는 지적이 나온다.(2019년 6월 12일 자 <[TF초점] "결론은 삼성 해체인가" 삼성 수사 바라보는 각계 '우려'> 기사 내용 참조)
한 재계 관계자는 "대외 불확실성에 이 부회장의 대법원판결,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수사, 노조 설립 방해 의혹 관련 재판 등 수년째 쉼 없이 이어지고 있는 일련의 악재로 삼성에 쌓인 피로도는 이미 한계치에 다다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며 "
또 다른 관계자는 "재판은 고사하고, 검찰의 수사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각계 해석이 분분한 사안에 관해 그룹 윗선의 개입과 그들의 유죄를 예단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며 "삼성을 비롯해 국내 경제계가 처한 위기는 정부와 기업 간 긴밀하고 지속적인 공조와 협력없이 특정 기업(인)의 노력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likehyo85@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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