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 교수 "핵심 기술 만들어낼 전문인력 필요…전문연구요원제도 확대해야"
[더팩트ㅣ프레스센터=이민주 기자] 정부가 병력 자원 부족을 이유로 전환·대체복무 배정 인원을 줄이고 있다. 급기야 오는 2023년 전환복무를 완전 폐지하고 전문연구요원이 속한 대체복무 인원도 축소 내지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학계는 전문연구요원제도 존치에 한국 이공계의 생사가 달려있다며 이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한림원)은 2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효과적인 과학인재 양성을 위한 전문연구요원 제도 개선 방안'을 주제로 제136회 한림원탁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학계 관계자들은 과학기술 발전과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박사과정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유지하고 나아가 이를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연구요원제도는 현역입영대상자 또는 보충역 중 일부를 선발해 전문연구 분야 연구개발 업무에 종사하도록 하는 군 복무 대체 제도다. 지난 2016년 폐지 및 축소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주제발표를 맡은 곽승엽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전문연구원제도가 적극적인 연구풍토 조성에 매우 높은 기여를 하는 동시에 박사과정 진학 및 연구직 유입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박사과정 전문연구요원제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승엽 교수에 따르면 전문연구요원제도의 2016년 생산유발 효과는 1조3247억 원이다. 이에 따른 부가가치유발 효과는 4623억 원(중소기업연구원, 2017)에 이른다.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우수 인력의 박사과정 진학 및 연구직 유입에 주는 영향도 상당하다. 곽 교수가 지난 2018년 '전문연구요원제도 운영 및 선발의 현황과 성과 분석'을 위해 서울대, 카이스트 등 대학원생 156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이같은 사실이 잘 드러났다. '전문연구요원제도가 박사과정 진학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 묻자 응답자의 80%가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전문연구요원제도가 없을 경우 희망진로'를 물었더니 '해외대학원으로 가겠다'는 학생이 49%나 됐다.
곽 교수는 "전문연구요원제도는 박사과정 진학 및 연구직 유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빅데이터, AI(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핵심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박사급 연구인력 양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박사과정 전문연구요원제도 확대를 통해 국가 과학기술 발전과 미래가치 창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연구요원 안에서도 선발 기관에 따라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어, 경쟁이 과열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발 기준을 개선해 지원자 간의 형평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전문연구요원 중 '대학원 박사과정'으로 선발되는 1000명 정원은 다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선발하는 '과학기술원 전문연구요원(400명)'과 '교육부 선발 자연계 대학원 전문연구요원(600명)'으로 나뉜다. 전자는 무시험 선발 및 자체 배정되는 반면 후자는 대학원 학점과 텝스(TEPS) 성적을 기준으로 선발한다. 이 때문에 자연계 대학원 전문연구요원 지원자들이 본업인 연구에 집중하지 못하고 영어 공부에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곽 교수는 "전문연구요원제도가 국가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꼭 필요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지원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시험 선발되는 과학기술원 전문요원과 달리 텝스 성적 등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자연계 대학원 전문연구요원'은 합격 기준 점수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이 때문에 연구에 집중해야할 학생들이 영어 공부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현재 자연계 대학원 전문연구요원 합격자 평균 텝스 점수가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박사과정 입학을 위한 기준 점수보다 높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임상호 고려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도 "전문연구요원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본업인 연구에 집중하지 못하고 텝스 준비에 매달린다. 1년 이상 연구는 전혀 하지 않고 영어 공부에만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며 "영어 실력이 연구 활동에 필요하기는 하나 어디까지나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공정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선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 간에는 입장이 갈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우수 인재의 이공계 유입 촉진을 위해 전문연구요원제도를 존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 반면, 국방부는 국가안보를 위해 대체복무의 감축이 불가피하다고 못을 박았다.
최준환 과기정통부 미래인재양성과 과장은 "전문연구요원제도는 과학고에서 이공계 학부로 진학한 학생들이 석·박사과정으로 진학하는 '과학기술 인력 양성 구조'에서 중요한 연결고리로 정착했다. 전문연구요원 제도 유지를 통해 우수 과학기술인력을 활용한 혁신성장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며 "대체복무인력을 축소 내지 폐지할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 인력이 군 복무로 인해 경력 단절을 겪는 것을 방지하고 군 복무기간 동안 국방력 강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인구 국방부 인력정책과장은 "전문연구요원을 포함한 대체복무제도가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고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있음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그러나 국가안보보다 우선하는 가치는 없다. 위협의 지속적인 증가에 따라 전방위 안보위협에 대한 대비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인구 과장은 이어 "대체복무 인원 감축은 불가피하며 제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국방부는 모든 대체복무를 동일한 선상에서 검토할 것이다. 국가정책적 필요성, 병역의 형평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꼭 필요한 부분은 유지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대체복무를 감축한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현행 '자연계 대학원 전문연구요원' 선발 제도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과학기술 연구 역량 중심으로 선발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과도한 경쟁을 부추긴 영어성적(텝스)을 고득점순에서 패스·논패스(Pass·Nonpass)로 바꾸고 서면과 면접으로 학업 및 연구역량을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권지은 교육부 학술진흥과 사무관은 "전문연구요원제도의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현 선발제도가 가진 문제로 인해 우수한 이공계 연구 인력 육성 취지가 흐려진다는 지적에 제도 개선안을 가져왔다"며 "과학기술 연구 역량을 중심으로 전문연구요원 선발 제도를 개선하려 한다. 자연과학·생명과학·의약학·공학·ICT·융합 분야로 구분해 학문 분야별로 우수 이공계 인재를 선발하려 한다. 제도개선 홍보 및 예산 확보 등을 고려해 기준 변경은 확정 발표 후 3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적용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권 사무관은 또 "면접평가를 신설하고 지원자 한 명당 20분의 시간을 줘 본인의 대표 연구 실적, 전공 능력 이해도 등 서면평가로는 평가하기 힘든 연구역량을 평가하려 한다"며 "면접 결과를 상중하(우수·보통·미흡)로 분류해 우수와 미흡은 서면 평가 순위에 관계 없이 합격, 불합격을 결정하고 보통을 받은 지원자만 서면평가 성적순으로 합격 여부를 결정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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