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관→오피스텔, 저무는 '코오롱 과천 시대'
[더팩트 | 과천=이한림 기자] 경기도 과천시 내 유일한 대기업 본사 사옥이자 코오롱의 성장과 함께했던 코오롱 과천 사옥 별관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코오롱 과천 시대'를 활짝 열었던 이웅렬 회장의 퇴진과 맞물려 더욱 눈길을 끈다.
지난해 12월 28일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1-22에 위치한 10층 높이의 코오롱타워 별관은 영하 10도의 추운 날씨에도 철거를 위한 사전 작업이 한창이었다. 사전 공사는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됐다. 철거가 완료되면 높이 120m에 달하는 28층 주상복합 오피스텔이 새롭게 들어설 예정이다.
코오롱 과천 시대를 이끌었던 이웅열 회장은 1일부터 코오롱 회장직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나 창업의 길로 들어선다. 그는 지난해 11월 28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코오롱원앤온리타워에서 '깜짝 퇴진'을 발표한 후 과천 본사가 아닌 마곡으로 출근하며 30여 년 코오롱 회장 업무를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코오롱그룹 관계자는 "(이웅열 회장은)최근에는 마곡으로 출근했으나 지난해 12월 28일 오후 4시 그룹 종무식 후 출근하지 않은 걸로 안다. 2018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은 징검다리 연휴로 일부 직원들만 출근했다"며 "별도의 퇴임식은 없었고 향후 거취에 대해서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20여년 간 코오롱 주요 계열사들의 본사였던 코오롱 별관의 철거는 깜짝 퇴진을 선언한 이웅열 회장과 맥락을 같이 하게 됐다. '오너 3세'인 이웅열 회장은 취임 1년 뒤인 1997년 서울 무교동에 있던 본사를 과천 별양동으로 이전한 주인공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크다.
야심차게 본사를 지방으로 이전한 것과 달리 '과천 코오롱'의 출발은 좋지 않았다. 서울에서 과천으로 본사를 이전한 첫 해인 1997년 국내 기업들을 악몽에 빠트린 IMF외환위기가 터졌기 때문이다. 이웅열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IMF를 맞으며 부채비율을 줄이기 위해 그룹 계열사 26개를 15개로 줄이고 구조조정에 돌입하는 등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이후 이웅열 회장은 축소된 회사 몸집을 한 곳에 모아 위기를 타개하는 전략을 택했다. 강남 소재 FnC코오롱인더스트리를 제외한 모든 계열사를 과천으로 집결시켜 빠른 의사 소통을 통해 리스크를 줄이는 경영 방침을 펼쳤다. 2001년 완공된 별관도 이 때 지어졌다.
본관에 그룹 지주사인 ㈜코오롱, 그룹 회계를 담당하는 코오롱베니트, 회사 모태 사업인 코오롱패션의 과천직영점 등이 위치해 있는 것과 달리 별관에는 코오롱글로벌 등 주요 계열사를 포함한 그룹 내 각 분야의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계열사들의 본사 사무실이 자리했다.
특히 별관은 이웅열 회장이 회사를 이끌면서 임직원에게 강조했던 미래 사업을 영위하는 계열사들이 집약된 장소이기도 했다. 이후 2003년 코오롱글로벌이 인천 송도로 자리를 이동했지만 일부 계열사들은 지난해 4월 완공된 코오롱온앤온리센터로 소재를 옮기기 전까지 별관에 남아 있었다.
변비약 '비코그린'으로 알려진 코오롱제약, 세계 최초 골관절염 세포유전자 치료제 '인보사'를 만드는 코오롱생명과학, 코오롱 의류의 원사와 원단을 제조하는 코오롱패션미터리얼 등이 모두 '별관 출신'이다. 여기에 과천으로 출근하는 코오롱 직원들을 위한 코오롱어린이집의 소재지도 별관이었다.
다만 그간 코오롱 별관의 소유주는 코오롱이 아니었다. 코오롱은 그간 별관을 부동산리츠회사 등에 매각해 계열사들이 임대해 자리하고 있는 방식으로 사용했다. 지난해 3월 별관의 건물 소유주인 미국계 프로젝트금융사 과천PFV가 과천시 오피스텔 사업을 시행하며 별관에 위치한 코오롱 계열사는 이동하기 시작했다. 별관에 위치해 있던 코오롱제약, 코오롱패션미터리얼 등은 바로옆 본사로 이동했으며 코오롱생명과학은 마곡 코오롱원앤온리타워로 소재를 옮겼다.
◆ 코오롱 별관은 오피스텔로…분위기 바뀌는 과천
코오롱 별관 부지에는 완전히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다. 지하 5층~지상 10층의 일반 사무실 공간이 지하 8층~지상 28층, 599세대, 최고높이 119.55m 규모의 주상복합 초고층 오피스텔로 탈바꿈한다. 지상 3층까지는 상업시설이 들어서며 용적률이 무려 1238.36%에 달하는 초고밀도로 지어진다. 2020년 10월 준공을 목표하고 있다.
1일 기준 오피스텔 공사가 진행 중인 코오롱 별관의 소유주는 KB부동산신탁주식회사다. 코오롱 별관은 2001년 ㈜코오롱을 포함한 4개 자회사가 공유자 형태로 건물을 지어 사용했지만 2005년 부동산리츠회사인 코크렙7호에 매각한 후 코오롱은 별관을 임대해 사용해 왔다. 이후 2010년 부동산리츠회사 케이브이1호를 거쳐 2015년 미국 자본이 투입된 프로젝트금융사 과천PFV에 소유권이 이전됐다.
과천PFV은 코오롱 별관 건물을 허물고 새롭게 오피스텔을 짓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공사는 대림산업을 지정했으며 철거 및 신축 공사를 위해 2018년 7월 KB부동산신탁주식회사에 신탁한 후 소유권을 이전한 상황이다.
한 대기업의 역사와 함께한 오피스 건물이 과천 최초의 초고층 주상복합 오피스텔로 변경되는 셈이다. 동시에 일부 주민들은 과천의 지역 경제 발전을 이끌며 랜드마크 역할을 자처했던 코오롱 색깔이 빠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오피스텔 공사를 위한 코오롱 별관 철거를 반대하는 주민들은 이 건물이 주변 건물보다 최대 4배 높아 조망권이 침해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또 인근에 이마트 등 상업시설·지상 35층 규모로 지어질 '과천 위버필드' 등이 들어서게 되면 극심한 도로 정체가 예상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철거 반대 집회에 참석한 한 주민은 "도시미관이나 전망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사각형 형태의 흉물"이라고 강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다른 시각도 있다. 과천에 랜드마크 역할을 해왔던 코오롱 사옥이 과천에 유례가 없던 초고층 오피스텔로 전환되면 인근 집값이나 근처 상권이 호재를 입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 때문이다. 코오롱 별관 맞은편에는 SK건설과 롯데건설이 공동 시공을 맡은 과천 위버필드가 지반 공사에 돌입했다. 그 뒤로는 내년 분양을 앞둔 과천주공6단지 재건축 GS건설의 '과천자이'가 들어설 예정이다.
별양동 한 공인중개사는 "오랜 기간 동안 과천의 랜드마크 역할을 했던 코오롱 사옥이 오피스텔로 바뀐다는 얘기를 듣고 안타까워 하는 주민들이 있다"며 "동시에 과천에 유례없는 초고층 오피스텔이 들어오는 만큼 투자를 문의하는 사람들의 발길도 최근 들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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