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불기 시작한 '박항서 열풍'이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도 후광 효과를 낳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베트남 축구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박항서 감독은 올해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준우승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4강 신화'를 이룩하며 국민 영웅으로 부상한 데 이어 12월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결승에서도 말레이시아를 꺾고 우승, 폭발적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축구가 열리는 날이면 베트남 전역이 축제의 장으로 변하며 "박항세오"(박항서의 베트남식 발음)를 연호하는 베트남인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박항서 열풍'을 타고 어느 정도로 '박항서 효과'를 보고 있는지 살펴 본다.<편집자 주>
베트남 진출 한국 기업들 "박항서 감독 덕에 한국 기업 이미지 좋아져"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현대자동차는 박항서 감독의 인기가 판매량 확대에 기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는 올해 11월까지 베트남 시장에서 지난해(2만6881대)보다 2배가량 늘어난 5만548대의 차량을 판매했다. 기아차 역시 지난 10월에 지난해 전체 판매량인 2만2136대를 넘어서며 순항하고 있다. 이를 놓고 제품의 품질 향상에 따른 경쟁력 강화와 '박항서 매직' 효과 등이 겹친 결과로 회사는 분석하고 있다.
베트남에 불기 시작한 '박항서 열풍'은 박항서 감독을 앞세워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더라도 한국 기업에도 후광 효과를 낳고 있다. 실제로 베트남 내 박항서 감독의 인기를 고려하면 박항서 감독이 단순히 광고 모델로만 가치가 높다고 평가할 수 없다는 게 기업인들의 분석이다.
베트남의 영웅이 된 박항서 감독은 현재 역대 어느 때보다 베트남과 한국의 정서적 거리감을 좁히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박항서 감독이 몰고 온 '축구 한류'가 '기업 한류'로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을 내놓을 정도다.
지난 1995년 흥이옌 공장을 세우며 베트남에 진출한 LG전자도 '박항서 효과'를 한껏 기대하는 눈치다. TV·휴대전화·세탁기·청소기·에어컨 등 생활 밀착형 제품을 생산 및 판매하고 있어 무엇보다 기업의 이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LG전자는 하이퐁 지역에서 직업훈련학교를 운영해 베트남 인재를 직접 챙기거나 사업연속성관리체계 인증 획득 및 선진 노경문화 전수 등 사회공헌적 활동을 통해 베트남 내 '신뢰도 쌓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베트남 사업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한화 역시 한화생명·한화테크윈·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에너지 등 베트남 진출 계열사들이 사업을 전개하는 데 박항서 감독의 긍정적 이미지가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태양광 사업과 방위산업 등은 단순한 소비재 생산과 성격이 다르다"며 "하지만 '박항서 효과'로 한국을 넘어 국내 기업들에 대한 친밀도가 높아지는 것만으로도 생산력과 직결되는 현지 인력과 협업은 물론 현지 기업들과 파트너십 구축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2007년부터 베트남에 투자해 2014년 기준 연 매출 1조 원을 돌파한 효성그룹 역시 "박항서 감독의 주가가 올라가면서 한국 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져 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 간접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효성의 효자 해외법인으로 자리 잡은 효성 베트남은 투자 및 사회공헌활동을 확대하며 지속적인 성과를 내기 위한 시장 경쟁력 강화 작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베트남 내 박항서 감독에 대한 높은 신뢰도는 이미 베트남 시장에 진출한 기업뿐만 아니라 새롭게 시장을 개척하거나 실적 반등을 노리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젊은 인구가 많고 성장 여력이 높아 '포스트 차이나'로 동남아시아 시장이 거론되고 있고, 해당 시장의 핵심지로 베트남이 부상하고 있는 만큼 다양한 규모의 한국 기업이 앞으로 베트남 시장에서 더 많은 사업을 벌일 전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국내 대기업 총수들이 올해 베트남을 잇달아 방문해 투자 확대 계획을 밝히는 것만 보더라도 베트남 시장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베트남 현지에 투자법인을 설립하며 이제 막 시장 공략에 시동을 건 SK그룹 입장에서는 '박항서 매직'으로 베트남과 한국의 정서적 거리감이 좁혀진 현 상황이 반갑다. 지난 2016년부터 베트남에서 비료 생산 및 판매를 진행하고 있는 KVF는 지난달 박항서 감독을 모델로 기용하며 판매량 상승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시장 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려는 기업들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베트남과 친해지기' 작업에 박항서 감독이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롯데그룹은 '축구'를 주제로 활발한 마케팅 활동을 벌이고 있다. 베트남은 롯데제과·롯데백화점·롯데마트·롯데지알에스·롯데시네마·롯데자산개발·롯데호텔 등 가장 많은 16개 계열사가 진출해 있을 정도로 롯데그룹 입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핵심 전략 국가'로 꼽힌다.
롯데그룹은 지난달 1일부터 베트남에서 새로운 그룹 광고를 실시하고 있다. 이 광고는 현지 분위기를 고려해 축구를 소재로 만들어졌다. 광고는 청소부와 경비원을 가장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고등학교 축구 시합 중 난입해 학생들과 깜짝 이벤트를 진행하는 내용이다. 등장 선수로는 베트남의 손흥민이라고 불리는 꽁 푸엉과 골키퍼 부이 띠엔 중이 참여했다.
롯데그룹은 베트남에서 1998년 롯데리아를 시작으로 백화점·마트·호텔·시네마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20여 년에 걸친 단계적인 투자로 인해 지난해 매출 1조 원을 달성하는 등 사업이 안착 단계에 돌입한 상태다. 이 성공 과정에서 적극적인 브랜딩을 통해 베트남 국민들에게 롯데라는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와 충성도를 높인 점이 주요했다는 게 롯데그룹의 설명이다.
사실 '베트남 축구'에 대한 롯데그룹의 관심은 이전부터 높았다. 마케팅 솔루션 계열사 대홍기획은 롯데그룹이 베트남 시장 저변을 확대하는 작업을 벌일 때 베트남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가 축구라는 것을 알고 이를 주제로 한 다양한 마케팅을 기획했다. 베트남 국영방송 VTV와 손잡고 베트남 축구 꿈나무 육성을 위한 축구단 선발 오디션 및 트레이닝 과정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을 방영한 것이 대표적이다.
롯데그룹은 지난 2016년 호치민 지역 유소년 축구클럽인 '롯데 키즈 FC 1기'를 창단하기도 했다. 취약 가정 아동을 돕고 베트남 유소년 축구 발전에 기여한다는 차원이었다. 이러한 활동 덕에 베트남 내에 롯데 브랜드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올해 박항서 감독이 국민적 영웅으로 추대받으면서 롯데의 축구 관련 활동이 더욱 빛을 보고 있는 중이다.
기업들이 베트남에 녹아들기 위해 박항서 감독과 축구를 활용하는 사례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앞서 삼성전자는 아시안게임 기간에 베트남 대표팀에게 연습 공간을 제공해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또 대표팀 전원에게 '갤럭시노트8'을 기증하기도 했다. 롯데마트는 대형 TV를 설치해 편하게 응원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현지인들의 마음을 얻기도 했다.
박항서 감독과 베트남 대표팀이 승승장구하면서 한국 기업들이 누릴 간접적 마케팅 효과도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딱 잘라 효과의 크기를 예상하긴 어렵지만, 이전보다 한국 기업에 대한 베트남인들의 태도가 호의적으로 변화한 만큼 '박항서 매직'이 직접적인 매출 증대 효과로 이어지길 기업들은 기대하고 있다. 한 금융 업계 관계자는 "현지에 가보면 박항서 효과가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라며 "베트남 축구팀이 큰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록해 이러한 분위기가 지속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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