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파업' 외친 기사들 대규모 집회에도 여론은 냉담
[더팩트 | 광화문=지예은 기자·김서원 인턴기자] 전국의 택시 노동자들이 카카오모빌리티의 카풀 서비스 추진에 강력히 반발하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6만여 명(주최 측 추산)의 택시기사들이 파업으로 운전대를 놓고 서울 광화문 북측광장에 집결해 카풀 서비스 반대를 외쳤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여론은 우호적이지 않아 보인다. 집회 현장 주변에서 만난 시민들 대다수는 냉담한 편이었다.
18일 오후 2시 광화문 북측광장과 주변 4개 차로는 전국에서 몰려온 택시 기사들이 몰려 혼잡에 빠졌다. 이날 전국 택시노동조합 연맹·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등 4개 단체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가 '전국 30만 택시 종사자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유례없는 사상 최대 규모의 집회였다.
이들이 이렇게 모인 이유는 카카오가 추진하고 있는 '카풀 서비스' 때문이다. 출퇴근 시간대 자가용 운전자가 앱으로 목적지가 같은 승객들을 모아 돈을 받고 원하는 장소까지 태워다 주는 서비스다. 택시 기사들은 생존권을 위협받는다고 주장한다.
이날 집회 시작 1시간여 전부터 택시파업 기사들이 한데 모여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웠다. 이들은 '택시를 살려내라'라고 적힌 빨간색 머리띠를 두르고 있었다. 또 '카풀 앱 불법영업 아웃(OUT)!', '여객 운송질서 확립!'이란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손에 하나씩 들고 있었다. 오후 1시쯤에는 일부 기사들의 삭발식도 진행했고 전운이 감돌았다.
이후 오후 2시가 되자 집회 참여자들이 광화문역과 경복궁역 등을 통해 현장으로 나오며 지하철은 만원을 이뤘다. 다른 지역 택시기사들이 타고 온 전세버스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광화문 일대는 차량 정체에 시달리기도 했다.
집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전국택시연합회 박복규 회장이 먼저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법망을 피해서 자가용 승용차도 택시처럼 영업할 수 있도록 하고 대형 정보기술(IT) 업체가 중간에서 이익을 챙기는 것이 어떻게 4차 산업인지 모르겠다"며 "차라리 벼룩의 간을 내놓으라고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인택시연합회 박권수 회장은 "생계 걱정 없이 가족과 하루 밥 세 끼를 먹고살게 해달라고 호소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고 외쳤다. 이어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 구수영 위원장은 "카풀 앱뿐만 아니라 쏘카와 그린카 등이 택시 시장을 잠식시키는 주범"이라며 "우리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취재진은 이 밖에도 집회에 참여한 다른 택시기사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보기로 했다. 전국운수노동조합연맹 유재곤 사무처장은 "이번 집회는 밥그릇 싸움이 아니고 법질서 유지를 위한 투쟁"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택시 시장이 포화 상태라며 정부가 감차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택시 공급을 확대한다니 말이 맞지 않다. 정부의 종합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비대위는 결의문을 통해 정부에게 즉각 불법 유사 택시 영업행위인 카풀 앱의 근절대책을 촉구했다. 해당 문서에는 "공유경제라는 미명 하에 30만 택시 종사자와 100만 택시 가족의 생존권을 말살하는 카풀 영업행위 추진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카카오택시를 통해 사세를 확장한 카카오모빌리티는 카풀 서비스를 본격 추진하며 택시 생존권을 짓밟고 있다"고 적시돼 있었다.
이후 이들은 집회를 마치고 오후 3시 4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청와대와 가까운 효자동 치안센터로 행진을 이어갔다. 약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이번 결의대회를 지켜본 시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이들 대다수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다. 먼저 광화문 일대를 지나던 한 시민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집회가 있는지 모르고 이쪽으로 왔다"면서 "약속시간 맞추려고 열심히 가고 있었는데 길이 막혀서 난감했다"고 밝혔다. 다른 시민은 "(택시파업 기사들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결국 밥그릇 지키려고 광장에 가득 모인 것이 아니냐"고 일갈하며 "승차거부 등 비양심적인 기사들이 적지 않다. 카풀을 반대만 하면 안 될 것 같다"고 냉소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이어 또 다른 시민은 "택시기사가 아니라 입장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용자 입장으로서 이태원이나 서울 광화문 종로 쪽에서 승차거부 당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여기 모인 사람들이 카풀을 반대하고 있지만 나로서는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답했다. 온라인에서도 택시파업에 냉소와 조롱이 가득한 내용들이 적지 않다.
일부 누리꾼은 "택시 파업은 택시기사들의 욕심 채우기"(xlov****) "돈 내고 눈치 보며 이용하는 택시 그만 타고 싶네요. 계속 파업해주세요"(s0l2****) "택시 파업해서 불편한 사람이 많을까 편한 사람이 많을까요? 개인적으로 오늘 도로가 매우 쾌적해서 좋았습니다만..."(rhkd****) "카풀에 뭐라고 하기 전 택시업계 분들 솔직히 반성합시다. 승차거부하는 거 어제오늘 일이 아니잖아요"(dong****) 등의 반응을 보였다.
반면 집회를 한동안 유심히 지켜보던 한 시민은 "영세 자영업자들이다 24시간 일하고 투잡도 뛰고 있지 않나. 먹고살기 힘든데 정부를 못 믿으니까 이렇게 모인 거라고 본다"고 집회 참여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카카오모빌리티의 카풀 서비스 추진에 대한 강력 반발이 일자, 그동안 택시업계와 대화를 이어가던 카카오모빌리티는 난감해졌다. 앞서 카카오모빌리티는 카풀 서비스를 위해 지난 2월 252억 원을 들여 카풀 앱 '럭시'를 인수했다. 하지만 택시업계가 이에 반대하자 카카오T의 카풀 사업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이후 카카오모빌리티가 지난 16일 운전자용 앱 '카카오T 카풀 크루'를 오픈했지만 택시업계의 대규모 파업 사태에 난감해하고 있다. 카풀 서비스를 언제 시작할지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 관계자는 "1년이 넘게 택시업계와 정부 관계자들과 대화하며 노력했지만 협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카풀 서비스를 준비해놓고도 시기를 정하지 못해 깜깜한 상황이다"고 밝혔다. 그는 "승차 공유는 출퇴근 및 심야 시간대 택시 공급 부족에서 오는 승차난으로 사용자들로부터 필요성이 제기된 서비스"라면서 "목적이 시민들의 승차난 완화인 만큼 정식 서비스 출시 전 택시업계와 상생을 위한 협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말 정부는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구성해 카풀 서비스에 대한 규제 혁신 문제를 해커톤 주제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택시업계에서 해커톤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으면서 1기 4차위가 종료될 때까지 카풀 문제는 끝내 논의되지 못했다. 택시업계와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카카오모빌리티가 상생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한편 카풀 비대위는 지난 4일과 11일 경기도 판교 카카오모빌리티 사옥 앞에서 카풀 반대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 이후 이들은 출퇴근 카풀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천막농성을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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