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중동점, 일방 폐점에 보상도 지지부진 '마트 안 자영업자' 피눈물
[더팩트ㅣ안옥희 기자] '유통업계 첫 여성 CEO' 임일순 사장의 취임 첫해가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갑질' 문제로 얼룩지고 있다. 홈플러스가 지난 4월 18일 경기 부천에 있는 중동점의 폐점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면서 점포 내 영세자영업자(소상공인)들의 생존권과 재산권을 외면하고 있어서다.
일방적인 통보로 '묻지마 폐점' 논란이 빚어진 홈플러스 중동점은 사실상 영세 자영업자의 무덤으로 전락하고 있다. 중동점은 보상금을 둘러싼 임대 점주들과 협의에 난항을 겪으며 각종 후폭풍에 휩싸여 있다. 폐점으로 인해 자영업자뿐 아니라 그들이 고용한 직원들은 일터를 잃고 실직자가 됐으며, 협력업체들도 일감을 잃게 됐다.
◆ 홈플러스 중동점 점주도 '위기의 자영업자'
최근 경기 불황, 임차료 상승과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자영업의 위기가 가속하는 가운데 대형마트 입점 상인인 자영업자들도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법적으로 임차인 보호장치가 미흡한 것도 이들의 고통을 가중하고 있다.
국내 570만 명의 자영업자 중 73만 명은 한 달에 100만 원도 벌지 못한다. 위기의 자영업자들이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부각되면서 정부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임법) 개정 등 자영업자 지원 대책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청와대는 대통령 자영업 비서관을 신설하고 상인 출신의 현장 전문가인 인태연 전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회장을 임명하기도 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홈플러스는 일방적인 중동점 폐점 조치로 논란의 중심에 서며, 정부 정책 기조에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달 6일 청와대 자영업 비서관이 신설될 만큼 정부가 자영업자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다. 홈플러스 등 유통 대기업의 자영업자에 대한 '갑질' 사례가 공론화하면 구체적인 실태 조사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홈플러스 중동점은 영업이 종료되는 오는 10월 13일까지 모든 임대점포의 퇴점을 완료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개별 점주와 보상 협의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지난 4월 폐점 소식이 전해지면서 중동점 13개 매장 임대 점주들은 홈플러스 측의 일방적인 폐점과 보상 절차에 반발하며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홈플러스를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했다. 당시 홈플러스 측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원만한 합의를 이끌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더팩트>가 지난 7월 말부터 한 달간 홈플러스와 중동점 임대 점주들 간 퇴점 협상 과정을 취재한 결과 홈플러스는 공언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었다. 점포 영업 종료까지 두 달이 채 남지 않았지만, 개별 점주들과 보상 금액 관련해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특히 홈플러스는 보상 금액을 산출한 명확한 근거와 기준을 점주들에 공개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보상 금액을 결정해 통보하고 있어 점주들과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상권을 일군 점주들의 공로는 생각하지 않고 홈플러스가 오직 기업 논리에 기대 '마트 안 자영업자'들의 생존권과 재산권을 위협한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 폐점 후폭풍, 영업 종료 코앞인데 보상 협상 난항
중동점 지하 1층 주차장에서 스팀세차 프랜차이즈 매장인 '크린매직'을 운영하는 점주 A씨는 홈플러스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협상이 답보 상태에 빠졌다.
A씨는 지난해 9월 전 점주 B씨에게 해당 점포 임차권 양수‧양도를 통해 중동점 매장을 개점했다. 인테리어 등 시설 공사를 마친 뒤 영업을 시작하자 약 6개월 만에 청천벽력 같은 중동점 매각 소식이 들려왔다. A씨가 지난 4월 중동점 폐점 발표 직전 홈플러스 측에 중동점 매각 사실 확인을 요청했으나 그때까지도 홈플러스 측은 해당 사실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지난해 전 점주인 B씨가 중동점 폐점 정보를 미리 입수하고 매장을 넘긴 정황을 포착하고 B씨를 사기죄로 고발한 상태다. B씨는 A씨에게 계약 기간이 1년 여 남은 매장을 넘기면서 해마다 5월 31일 자동으로 계약이 갱신되므로 영업을 계속 할 수 있다고 안심하게 한 후 계약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홈플러스 노조는 지난해 7월부터 줄곧 중동점 매각설에 대한 우려를 표명해왔다. 점포 매각으로 인한 직원들의 고용 불안 문제 때문이다. 부동산업계에서 중동점 매각과 관련한 구체적인 소문이 돌았고 노조 역시 이에 대해 사 측에 지속적인 확인을 요구해왔다. 그때마다 홈플러스 측은 중동점 매각설을 부인해오다가 지난 4월 18일 중동점 폐점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지난해 말 한 업체와 1400억 원대 중동점 매각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점 자리에는 49층 짜리 초고층 오피스텔(주상복합)이 신축될 예정이다. 다만 해당 계약은 제삼자 비밀매각 방식으로 진행돼 누가 인수하고 시공하는지 공개되지 않았다. 홈플러스 재임대 여부 역시 확인되지 않았다.
홈플러스가 폐점을 결정한 표면적 이유는 수익성 악화다. 그러나 점주들은 중동점이 평소 장사가 잘되는 매장이었다고 주장한다. 홈플러스는 다음 달 동김해점 폐점에 이어 10월 중순 중동점 점포 영업을 종료할 방침이다.
홈플러스의 대주주인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를 인수할 때 차입한 4조 원 대 투자금 회수를 위해 점포를 적극적으로 매각하고 있다. 지난 2016년 '세일 앤 리스백(Sale & Lease-back·매각 후 재임대)' 방식으로 핵심 부동산 5개를 처분해 6000억 원을 확보한 바 있다. 최근 MBK파트너스가 추진 중인 홈플러스 매장 40여 곳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약 2조 원대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 상장 역시 같은 맥락이다.
홈플러스 노조는 이 같은 리츠 매각이 향후 고용 불안을 가중한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리츠 매각이 시작되면 홈플러스 수익 대부분이 임대료로 빠져나가 수익구조가 약화해 비용 절감을 위한 구조조정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노조는 국토부의 홈플러스 리츠펀드 설립과 AMC(자산관리회사) 인가 보류, 고용 보장을 위한 제도적 규제 장치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A씨는 점포 매각 계획이 있는 상황에서도 테넌트(임차인) 입점 계약을 묵인하며 사실상 피해를 방관한 홈플러스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A씨는 "고객들이 '정말로 문 닫는 것 모르고 들어왔느냐, 부천에서는 이미 매각 소문이 파다했다'고 하는데 이 동네 사람이 아니어서 몰랐다. 홈플러스가 최소한 추가적인 입점 계약은 막았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홈플러스 측은 폐점은 지난 4월 결정된 사안이고 상임법상 계약 기간 만료에 따른 퇴점 조치는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상임법상 계약 기간은 5년인데 점주들이 한 2~3년 장사하다가 다른 사람한테 양도‧양수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남은 계약 기간은 5년이 아닌데 새로 들어오는 점주는 자신의 계약 시점부터 5년이라고 착각한다. 우리는 '이 기간 이후 상임법 이야기하면 계약하기 어렵다'는 내용을 전달했고 점주들도 그 부분에 동의하는 서류에 서명했다. 점주들도 남은 계약 기간을 다 알고 들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이 같은 전전세, 전대차 방식의 계약 문제에 대해서 회사의 책임은 없다는 주장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중동점 폐점은 4월에 결정됐다. 점주들이 폐점까진 몰라도 이후의 재계약(계약연장) 기대감에 따른 입점 계약은 개인의 판단이다. 이걸 홈플러스가 이야기하지 않아서 비용을 투자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 "홈플러스 믿고 전 재산 투자 피해" vs "입점 계약은 개인의 판단"
업계에서는 홈플러스가 1400억 원대 대규모 매각 계약을 진행하면서도 폐점을 '쉬쉬'하며 결과적으로 영세 자영업자의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더팩트>가 지난해 6월 홈플러스 중동점 매각 계약 관계자가 참석한 부천시 도시계획위원회 회의록을 확인한 결과 "중동점 매각은 6개월 안에 모든 인허가를 마치기로 한 계약조건이며, 그사이에 준비를 많이 해왔고 (중동점 부지가) 개발행위 제한지역에서 해제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인허가가 지연되면 계약금과 연체료 발생 등 손해를 본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회의록에 따르면 중동점 매각 계약은 지난해 6월 이전 결정돼 추진돼 온 사안이라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노조와 점주들이 지속해서 제기해온 중동점 매각설에 대한 사실 확인 요청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보였던 홈플러스가 그동안 거짓 해명을 해온 셈이다.
홈플러스 측은 중동점 비대위 소속 점주들 중심으로 협상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상임법상 5년 계약 기간 만료 매장에 대해서는 보상 계획이 없다고 밝혔으나 이후에는 비대위 점주 모두에게 똑같은 1000만 원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의가 결렬되자 1800만 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홈플러스는 각 점주 간 개별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비대위 소속 점주들 중에는 10년 이상 장사를 해온 점주들도 있다. 퇴점으로 인해 가장 큰 손해를 보게 되는 점주는 최근에 들어온 이들이다. 상대적으로 영업 기간이 짧아 투자 비용을 미처 회수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100% 대출로 마련한 1억 여 원을 투자해 지난해 9월 중동점에 들어온 A씨가 바로 그러한 경우다. A씨는 현재 비대위와 별개로 협상을 준비 중이지만, 홈플러스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A씨는 홈플러스 점포에서 실제 매장을 운영하는 주체이지만, 계약 구조상 홈플러스가 아닌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계약을 맺고 있다. 홈플러스에 입점한 점주 상당수는 이와 같은 가맹점이다. 홈플러스와 프랜차이즈 본사(중소기업), 실제 영업을 하는 가맹점주 3자가 '갑-을-병'으로 얽힌 계약구조에서 '갑'인 홈플러스는 '을'인 프랜차이즈 본사와 임대차계약을 맺고 있다. 여기서 '병'인 개별 점주는 홈플러스 매장에서 직접 영업을 하지만, 법률상으로는 홈플러스와 관련이 없다. 이 때문에 A씨의 투자한 비용에 대한 보상 금액 규모는 프랜차이즈 본사와 홈플러스가 논의하게 되는 것이다.
A씨는 "홈플러스가 저뿐 아니라 프랜차이즈 본사와의 대화에도 소극적이다. 다른 매장은 홈플러스와 여러 번 면담한 곳도 많은데 크린매직에 대해서는 투자 비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만 요청하고 몇 달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피를 말리고 있다"며 "차라리 빨리 정리가 돼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나 협상이 이뤄지지 않아 매장을 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또 "아이를 봐줄 곳이 없어 어린 아이들을 매장에 데려와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부분 영업하고 있다. 지금 협상이 안 되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닌데 임대료는 계속 청구되고 있다. 대출을 받아가며 임대료를 물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팀세차장을 하기 전 A씨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마트 안 자영업자'가 된 이후 홈플러스의 일방적인 폐점 통보로 투자금 회수 기회를 박탈당한 채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내몰리고 있다. A씨는 "대기업인 홈플러스 브랜드를 믿고 '여기는 안전하겠지' 라며 들어온 건데 이렇게 급작스러운 폐점 통보로 뒤통수를 맞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저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법적으로 아무 데도 호소할 곳이 없어 억울하다. 보상 협의가 늦어지면서 대출 금액은 계속 불어나고 가정도 파탄 날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 "홈플러스, 법제도 허점 악용…'마트 안 자영업자' 보호 시급"
전문가들은 홈플러스가 법제도 허점을 악용한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일방적인 폐점 통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영세 자영업자 생존권을 위협하는 심각한 '갑질'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이들 대기업은 거래상 우월한 지위를 남용한 불공정한 계약으로 자영업자(소상공인)와 상생도 외면하고 있다.
홈플러스의 갑질로 위기에 처한 이는 자영업자만이 아니다. 홈플러스와 같은 대형마트가 문을 닫게 되면 직원들은 물론 그 하위에 있는 임대 점주들도 일자리를 잃게 되고 그들에 고용된 직원들도 일자리를 잃고 협력업체까지 피해를 보는 연쇄 작용이 일어난다. 결국 '마트 안 자영업자'의 위기가 한국 경제를 좀먹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피해를 봐도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가 미흡하다는 점이다. 현재 국회에는 계약 갱신요구 기간을 기존 5년에서 10년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상임법과 대규모유통업법상 홈플러스에 법적으로 대항할 수 없는 A씨를 직접 구제할 방법은 현재로선 없다.
'갑'인 홈플러스에 대해 법적 대항력이 없는 A씨가 '묻지마 폐점' 통보와 지지부진한 협상 과정에 대해서도 쉽게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불공정한 거래 계약 구조로 인해 '마트 안 자영업자'는 임차 상인일 경우 5년짜리, 수수료 매장으로 들어가면 3~6개월짜리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대다수는 A씨처럼 거의 도박에 가까운 수준으로 전 재산을 투자하면서도 법적으로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적절한 보상 금액도 받지 못한 채 그대로 매장을 비워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유통 대기업 갑질로 인한 '마트 안 자영업자'들의 피해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그러나 관련 자료 수집이 어려워 이들의 피해 규모는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며 "정확한 실태조사를 통해 당정이 근본적인 해법 모색에 나서야 하고 필요할 경우 기업 수장(CEO)을 국감장이나 청문회장에 소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유동림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 간사는 "홈플러스 등 유통 대기업들이 불공정한 계약 구조로 영세 점주에게 갑질을 하는데도 법적으로는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맹점이 있다. 유통 대기업 모두 자사는 자리만 빌려주는 임대업이라고 주장하며 각종 책임을 회피하지만, 실제로는 개별 점주와 매장 운영을 관리감독하며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며 "국정감사에서 문제제기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피해 사례를 수집 중이다"고 말했다.
김남균 전 맘상모('맘 편히 장사하고 싶은 상인들의 모임'·'골목사장 생존법' 저자) 대표는 "홈플러스에 점포를 여는 자영업자 상당수는 퇴직금과 대출금을 끌어모으느라 이미 재정적으로 상당히 무리한 상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노동자는 노동법이 보호해주지만, 자영업자는 법에 너무나 취약한 구조적인 문제가 있어 보호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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