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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구의 상암토크] '불타는 BMW', 강 건너 불구경 아니다

소방대원들이 지난 7월 29일 오전 0시 28분께 중앙고속도로 춘천방면 305㎞ 지점 치악휴게소 인근에서 주행 중 불이 난 BMW 520d 승용차를 상대로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소방대원들이 지난 7월 29일 오전 0시 28분께 중앙고속도로 춘천방면 305㎞ 지점 치악휴게소 인근에서 주행 중 불이 난 BMW 520d 승용차를 상대로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레몬법' 도입으로 소비자 피해업체에 철퇴...현대기아차 긴장해야

[더팩트ㅣ김민구 기자] 요즘 살인적인 무더위 못지않게 연일 언론을 도배하는 뉴스가 있다. BMW 차량 화재사고다. 이를 다루는 언론 제목도 섬뜩하다. '불타는 BMW'다. 하루가 멀다 하고 화재가 발생하니 붙여진 이름이다.

안전을 책임져야 할 자동차가 '불바다'가 된다면 이미 게임 오버다. 차량이 고기를 굽는 바비큐판은 아니지 않는가. 소비자들이 외면하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국내 수입차 시장 점유율 2위인 BMW에는 치욕도 이런 치욕이 없다.

새 차를 구입할 때의 그 기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느낌이 아니겠는가. 그동안 생활을 같이 한 차량과의 추억은 아쉽겠지만 낡고 오래된 차를 뒤로하고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시점인 셈이다.

그런데 구입한 새 차가 BMW처럼 예측할 수 없는 '러시안 룰렛'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새 차 구입자가 "차는 뽑기에 달렸다"며 복불복(福不福) 타령을 한다면 말이다. 한두 푼도 아니고 수천 만 원을 들여 차를 구입하면서 '복(福)이 오거나 안 오거나' 라며 운수에 맡기는 것은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물론 이해는 한다. 새 차를 샀지만 고장이 잦거나 큰 결함을 발견해도 차 제조사가 "원래 그렇다"며 배짱을 내밀면 달리 대응할 방법도 없지 않는가. 그렇다고 자동차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하자니 번거로워 결국 체념하고 '잘못 뽑은 눈과 손'을 탓하며 속만 부글부글 끓인다.

그런데 소송을 건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자동차회사 횡포에 맞서 당랑거철(螳螂拒轍: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아서려 한다는 뜻)한 사나이가 등장했다.

미국 위스콘신주(州)에 사는 마르코 마르케스는 2005년 4월 밀워키에 있는 메르세데스 벤츠 매장을 찾았다. 그는 그동안 모은 목돈을 꺼내 E320 신형 모델을 5만6000달러(약 6272만원)을 주고 샀다.

그러나 마르케스가 E320을 구입한 첫날부터 차량이 말썽을 부렸다. 심지어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는 황당한 일마저 빚어졌다. 그는 새 차를 몰아 벤츠 서비스센터에 여러 차례 찾아갔지만 별다른 도움을 받지 않았다. 서비스센터가 차량 문제를 해결해주기는커녕 차량 불량 원인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좌절한 마르케스는 결국 새 차를 구입한 지 30일째 되는 날 벤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며 미국 위스콘신주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골리앗에 맞선 다윗의 승리인 셈이다.

벤츠 측이 그에게 물어준 배상액은 자동차 값의 10배에 가까운 48만2000달러(약 5억5000만원)에 달했다. 이 배상액에는 차 값 외에 이자, 소송비 등 기타 비용까지 포함됐다. 배상액으로 차 값의 10배 가까이 내야 하는 벤츠로서는 땅을 치며 억울해할 이다. 그러나 만시지탄(晩時之歎)일 뿐이다. 버스는 이미 떠났다.

마르케스가 거액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일명 '레몬법(Lemon Law)' 덕분이다. 미국에서는 고장이 낮은 차량을 '레몬 카(Lemon car)'라고 부른다. 오렌지와 비슷하지만 신맛이 강해 그대로 먹지 못하는 레몬처럼 겉만 멀쩡하고 속은 불량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즉 겉과 속이 달라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준다는 의미로 미국 정부가 자동차나 전자제품 소비자들을 불량품에서 보호하기 위해 1975년 처음으로 제정했다. 소비자 믿음을 저버린 배신에 대한 혹독한 대가인 셈이다.

레몬법의 공식 명칭은 '매그너슨-모스 보증법(The Magnuson–Moss Warranty Act)'이다. 미국 상원의원 워런 매그너슨과 하원의원 존 모스 등이 1975년 공동 발의한 이 법은 새 차에 수리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제조사는 30일 이내에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차량 소유자가 요구하면 자동차 제조업체는 반드시 교환이나 환불을 해 줘야 한다는 항목도 있다. 레몬법이 자동차 업계에는 '저승사자' 이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소비자 권익의 위대한 진전'이 아닐 수 없다.

BMW 파문으로 국내에서도 레몬법이 '뜨거운 감자'로 등장했다. 자동차업계를 바짝 긴장시킬 레몬법이 내년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소비자로서는 박수칠 만한 일이다.

국토교통부는 내년 1월 1일부터 '한국형 레몬법'을 시행하기로 하고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를 신설해 법학·자동차·소비자보호 등 분야별 전문가를 구성할 방침이다. 미국만큼 강력하지는 않지만 우리도 내년부터 레몬법 적용국가가 되는 셈이다. 이제는 지긋지긋한 '뽑기 타령'이 끝날 모양새다.

레몬법 도입은 그동안 한국 소비자를 우습게 보는 수입차들의 안하무인 행태를 뿌리 뽑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임계점)'가 될 것이다. 수입차 업체들의 부도덕한 행태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2015년 아우디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사건에 이어 2017년에는 BMW, 벤츠, 포르셰 등이 배출가스 인증서류를 위·변조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지난 4월에는 아우디폭스바겐과 포르쉐가 또 다시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했다가 덜미가 잡혔다. 이쯤이면 조작·위조에 해당되지 않는 수입차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입차업체들이 한국 소비자를 '봉'으로 여기고 있지만 국내 수입차 판매량은 증가일로에 있다. 올 상반기 국산차 판매량이 전년 동기보다 3.1% 감소한 반면 수입차 판매량은 무려 18.6%나 증가한 수치가 이를 웅변하고 있지 않는가.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수입차 시장 점유율이 20% 돌파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현대기아차는 BMW 화재 사고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선 안 된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며 휘파람을 불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레몬법은 BMW 등 수입차는 물론 현대기아차 등 국내업체에도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댄다. '양날의 칼'이 아닐 수 없다.

현대차는 올해 상반기에 무려 95만1010대를 리콜했다. 여기에 같은 기간 기아자동차 리콜대수 67만5585대를 합치면 현대기아차가 국산차 전체 리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83.5%에 이른다. 현대기아차가 '리콜왕(王)'이라는 불명예를 안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현대기아차의 품질관리 실패에 실망한 국내 소비자가 수입차 시장를 기웃하고 있다는 지적은 결코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연봉이 거의 1억 원대에 달하는 고(高)수입자들이 월급을 더 올려달라며 툭하면 파업을 일삼는 차를 구입할 이유가 없다는 게 대다수 소비자 반응이다. 이러다 보니 국산차를 다시 구입하는 비율이 2007년 97%에서 지난해 86%로 뚝 떨어진 조사가 나오는 것도 놀랄 만한 대목은 아니다. 과거에는 애국심으로 국산차를 사는 소비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자동차는 소중한 생명과 직결되는 대표적 상품이다. 자동차 산업에 '무결점 주의‘가 중요한 점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현대차 노조가 파업의 머리띠를 두르기 보다는 생산라인에서 결함 투성 자동차를 생산한 것에 대해 소비자 앞에 무릎을 꿇고 석고대죄를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현대기아차 노사가 대규모 리콜 사태에 철저한 반성과 재발 방지를 다짐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수입차업계로서는 쾌재를 부를만한 대목이다.

레몬법은 자동차업계를 크게 뒤흔들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판도를 뒤바꿔 놓을 만한 사건)'다. 이제는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소비자 신뢰가 절대적이다. 소비자 신뢰를 잃으면 차량 판매는 물론 결국 일자리도 사라진다. 대다수 국민들이 공감하지 않은 한가한 구호를 외치며 오만하거나 방심하면 한 방에 훅 가는 세상이다.

소방대원들이 지난 7월 29일 오전 0시 28분께 중앙고속도로 춘천방면 305㎞ 지점 치악휴게소 인근에서 주행 중 불이 난 BMW 520d 승용차를 상대로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gentlemink@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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