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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근의 Biz이코노미] '무분별'한 공무원의 '공언(公言)'도 갑질이다

  • 경제 | 2018-07-03 00:03
공정거래위원회는 다수 대기업 공익법인이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최근 규제 강화를 예고했다. 이에 대해  재계 안팎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는 다수 대기업 공익법인이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최근 규제 강화를 예고했다. 이에 대해 재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일반화"라며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더팩트 DB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지난해 7월 14일 서울 서초 서울중앙지법 후문 주차장에 한 눈에 봐도 연식이 어느 정도 돼 보이는 승용차 한 대가 들어섰다.

차 운전석에서 내린 주인공은 현 정부 출범 이후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수장으로 임명된 김상조 위원장이었다. '기사가 딸린 검은색 관용차'가 아닌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온 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연차를 내고 (법정에) 왔다. 공정위원장이 아닌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의 저격수'로 불리던 그가 재판정에서 했던 발언의 진위 여부나 신빙성에 대한 시비는 뒤로하더라도 공과 사를 구분하려 했다는 취지 자체에는 공감했다. 적어도 '공정위원장'의 법정 발언이 자칫 공정위 전체 또는 공정위가 향후 추진하려는 대(對)재벌 관련 정책을 대변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임기 1년 문턱을 넘은 김 위원장이 보여준 행보를 보고 있자면 안타까움을 넘어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공정위는 1일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 운영실태 분석 결과'를 발표하면서 다수 그룹이 경영권 승계를 위한 수단으로 공익법인을 악용하고 있다며 규제 강화를 예고했다.

물론 각종 세제 혜택을 받는 기업의 공익재단이 재벌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에 목적이 있다면, 제재를 가하는 것이 지당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반드시 현행법을 근거로 한 실질적인 제재 기준 또는 잣대가 수반돼야 한다. 기업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고 장학금 지원, 의료·노인 복지 지원 등 실제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지는 공익활동과 그 효과는 철저히 배제한 채 섣부른 문제 제기만 하면 자칫 전체 대기업 공익법인에 '범죄 집단'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상조 위원장(사진)이 지난달 14일
김상조 위원장(사진)이 지난달 14일 "총수 일가가 소유하고 있는 비주력 계열사를 처분해야 한다"며 경고성 발언을 한 이후 주식시장에서 삼성SDS의 시총은 두자릿수 이상 급락했다. /더팩트 DB

김 위원장은 지난달 14일 진행된 공정위원장 취임 1년 기자간담회에서 "총수 일가가 소유하고 있는 비주력 계열사를 처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의 경고성 발언 이후 주식시장에서 삼성SDS의 시총 수조 원이 사라졌다.

김 위원장의 이날 발언에서 특정 그룹이나 기업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압박 수위를 시종일관 높여왔던 그가 말한 '처분 대상'이 곧 삼성SDS를 정조준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이후 주가 폭락의 피해는 고스란히 삼성SDS와 회사 주주들 몫으로 돌아갔다. 공정위원장 발언이 아이러니하게도 공정한 시장 질서를 어지럽힌 꼴이 됐다.

회사 주주들 원성이 높아지자 김 위원장은 부랴부랴 "비상장사 주식 매각을 얘기한 것"이라며 사태수습에 나섰지만, 시장에서의 영향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분위기다. 기업의 불공정행위를 감시하고 검찰에 고발까지 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행정기관 수장의 말의 '무게'와 '힘'은 클 수밖에 없다. 주식 처분을 해야 하는 법적 근거 하나 없이도 특정 기업 주가가 김 위원장 말 한마디에 휘청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대기업은 '혼을 내기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 아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시비를 가릴 수 있는 행위 가운데 잘못된 점이 있으면 과징금을 부과하고 제재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해석을 달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사안에 대해 대기업이 행정기관 장으로부터 맹목적으로 야단을 맞아야 할 하등의 이유는 없다. 되레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00하라"는 식의 압박은 행정기관 영향력을 앞세운 명백한 '갑질'이다.

likehyo85@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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