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시장, '매입 딜러-판매 딜러-알선 딜러' 등 복잡한 유통 구조 개선해야
[더팩트ㅣ인천 가좌동=장병문 기자] "지난 설 연휴 부천에 있는 중고차 매매상사와 BMW 520d 매매 계약을 맺고 차를 가져왔습니다.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지만 인수에 문제가 없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넣었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차를 가져와 집에 주차해뒀는데…. 차 주인이라는 사람이 경찰과 함께 집으로 찾아와 차를 가져갔습니다. 아직 소유권이 넘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차를 가져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경기도 김포에 사는 김진우(가명·41) 씨는 지난 2월 16일 대기업이 운영하는 중고차 매매단지에 있는 업체와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김 씨는 계약을 통해 차를 구입했는데 며칠후 차를 차 소유주에게 돌려주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김 씨는 차 값 3400만 원을 업체에 지급하고도 차를 받지 못했다. 돈을 받은 업체는 김 씨에게 지금까지 한 푼도 돌려주지 않고 있다.
◆ 중고차 매매 시장, 구조 복잡·정보 불투명 대표적 '레몬 마켓'
이 사건은 실타래처럼 꼬인 중고차 매매 과정과 업체 관행이 빚은 소비자 피해 사례다. 중고차 매매 시장은 구조가 복잡하고 정보가 불투명한 대표적인 '레몬 마켓(lemon market)' 이다. 레몬 마켓은 소비자가 판매자보다 제품 정보가 부족해 자칫 속을 가능성이 큰 시장을 말한다. 특히 중고차 한 대를 파는데 딜러 여러명이 엮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정보는 소비자에게 공개되지 않는 단점을 안고 있다.
김 씨는 "포털사이트 검색으로 원하는 매물을 보고 부천 매매단지 A업체를 찾아갔다. 구입하려는 차가 인천 중고차 매매단지 엠파크에 있다고 해서 그곳에 직접 간후 차를 확인하고 계약했다. 차 값을 전액 지급하고도 소유권을 넘겨받지 못 해 A업체에 독촉하던 상황에서 소유주라고 주장 하는 사람이 나타나 차를 가지고 갔다"고 설명했다.
상황을 정리하면 김 씨가 계약한 부천 A업체 딜러는 인천 B업체 차를 알선 판매했다. 하지만 이 차는 B업체에 등록된 정식 매물이 아니다. B업체 관계자가 또 다른 딜러 C 씨를 통해 위탁 판매한 매물인데 C 씨도 해당 차량 소유주는 아니다. 취재 과정에서 차 판매에 등장한 업체는 두 곳이었으며 세 명 이상의 딜러가 매매에 관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과정에서 김 씨는 A업체 딜러에게 수수료를 지급하고 B업체에 차 값을 입금했다. 차가 온전히 판매되지 않았기 때문에 A·B 업체가 받은 돈을 김 씨에게 되돌려 주면 깔끔하게 정리된다. 하지만 두 업체 모두 실질적으로 받은 돈이 없다고 주장해 피해자가 구제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김 씨는 A업체 딜러를 인천서부경찰서에 고소했다.
A업체 대표 이 모 씨는 "우리가 정상적으로 매매하지 못한 책임은 있지만 차 값은 B업체가 받아 그쪽에서 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B업체 대표 김 모 씨는 "해당 차량은 우리 회사와 관련이 없다. 고객에게 받은 돈은 차를 가져온 거래 당사자에게 모두 주었기 때문에 회사가 금전적 이익을 취한 것은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김 씨는 매매 과정에서 회사 통장이 사용됐다는 점에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車 소유주는 차량 매매 과정에 등장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이를 '관행'이라고 말했다. 한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매매상사가 보유중인 차를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기도 하지만 위탁·알선 판매가 대부분이다. 상사는 차를 판매하는 것이 중요하지 누가 파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즉 딜러는 차량 소유주에게 판매 대금을 전달하고 자신은 수수료만 챙기면 된다는 것이다. 이번 소비자 피해 사례도 여기서 발생했다. 차량 소유주 상황도 모른 채 판매에만 집중한 탓이다.
해당 차량 소유주 김 모 씨는 경남 김해의 중고차 매매상사 대표였다. 그는 "해당 차량을 시승하겠다고 한 사람이 차를 가지고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도난 신고를 한 후 수소문 끝에 인천에서 거래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차를 찾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매입 딜러와 판매 딜러, 알선 딜러 등 복잡하게 얽힌 유통 구조를 소비자들은 알길이 없다.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유통 단계를 줄이는 것이 고객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 중 하나"라며 "고객과 매입 딜러를 직접 연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 "대기업 매매단지라 믿고 샀는데 도움 안 돼"
김 씨는 3000만 원이 훌쩍 넘는 큰 돈으로 중고차를 사기 위해 꼼꼼하게 알아보고 준비했지만 그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무엇보다 김 씨 피해를 막아줄 장치가 전혀 없었다.
김 씨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매매단지에서 계약했기 때문에 신뢰가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하자 매매단지에서는 해결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김 씨가 거래한 A업체는 부천 국민차매매단지에 입점해 있다. 이곳은 KB금융그룹 계열사 KB캐피탈의 중고차 거래 플랫폼 'KB차차차'와 제휴를 맺고 있다. KB차차차는 소비자가 신뢰하고 중고차를 구매할 수 있는 건전한 중고차 시장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지난 2016년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B업체는 인천 엠파크에 속한 상사다. 엠파크는 중견기업 동화그룹이 2011년 중고차 매매단지 사업에 진출하면서 설립했다. 엠파크도 안전한 차량 관리와 투명한 거래를 슬로건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KB차차차와 엠파크는 모두 이번 문제에 대해 "상사와 상사간의 문제로 우리가 매매 과정에 개입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매매단지 관리자는 투명하고 안전한 거래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만 해야 한다는 얘기다.
엠파크 관계자는 "깨끗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고객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보안팀을 가동해 단지 내 불법 행위를 감시하고 있다"며 "또 불법 매매 행위가 적발 된 상사는 퇴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KB차차차 관계자는 "단지 내 수천여 명의 딜러가 일을 하고 있는데 이를 모두 관리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중고차 매매 피해 줄이려면
중고차 특성상 일정한 품질로 제조되는 새 차와 다르고 여러 유통 단계를 거치다 보니 가격이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소비자는 조금이라도 싼 가격으로 사려는 심리가 작용하게 된다. 하지만 시세보다 저렴하면 의심해야 한다는 게 중고차 관계자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허위·미끼 매물에 당하는 소비자는 싼 차 가격에 유혹돼 딜러에 연락하다 속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차 가격이 낮다면 그 이유가 있다. 시세보다 눈에 띄게 저렴한 차는 허위매물일 확률이 매우 높다. 우선 중고차 시세를 확인하고 적정 가격범위를 벗어나는 차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허위매물을 피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딜러들의 화려한 언변에 속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경매차량이라 싸게 판다', '급전이 필요해서 저렴하다', '할부 승계차량이라서 가능하다' 등은 딜러들의 전형적인 멘트다. 차 값이 싼 이유로 이런저런 설명을 늘어놓는다면 허위매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허위매물 사이트는 차량의 성능상태점검기록부를 위조하는 경우가 많다. 차량번호나 조회일자가 표기가 안 돼 있거나 보험개발원장 직인이 없으면 조작된 것으로 보면 된다. 그밖에 정보에 대해 딜러가 공개를 꺼린다면 허위매물을 의심해야 한다.
구입하려는 차가 해당 매매단지에 실제로 있는 차량인지 확인하고 방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매단지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에서 차량번호를 조회할 수 있는데 조회가 안 된다면 허위매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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