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수 회장, 기형적 하도급 구조서 8년 간 '쥐꼬리' 공임…불통 행보에 파업 장기화
[더팩트ㅣ봉천동=안옥희 기자] "정기수 탠디 회장이 '공임 정상화'를 요구하는 노동자 요구를 외면하는 것은 결국 자신 얼굴에 먹칠하는 격."(제화공 허 모 씨)
'명품 수제화'로 국내 제화업계 1위로 올라선 탠디가 숙련된 제화공들에게 '쥐꼬리'만도 못한 공임을 주고 그마저 8년간 동결하는 등 불합리한 계약 조건을 지속해온 사실이 알려져 '악덕 기업' 논란에 휩싸였다.
탠디는 구두‧핸드백을 비롯한 피혁제품을 제조해 롯데백화점‧신세계화점‧현대백화점 등 전국 매장에서 판매한다. 수제화는 백화점에서 30만 원대에 팔리고 있지만, 그 구두를 만든 제화공은 정작 6500원밖에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탠디의 기형적인 하도급 구조에 고통받던 제화공들은 "정기수 회장이 평소 경영 철학으로 강조해온 '장인정신'이 이런 것이냐"며 "'쥐꼬리'만도 못한 공임을 받고 일한 우리는 '구두장인'이 아니라 '구두 노예'였다"고 호소했다. 탠디는 정 회장이 53%, 장남인 인원 씨 37%, 정 회장 부인 박숙자 씨가 10% 지분을 가지고 있어 오너 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다.
탠디 수제화를 만들어온 제화공들은 공임 인상과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지난달 4일부터 파업에 돌입해 서울 관악구 탠디 사옥 앞에서 한 달 가까이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26일에는 정 회장 등 사측과 대화를 요구하는 제화공 100여 명이 사옥 3층을 기습 점거해 현재 40여 명이 농성 중이다.
정 회장이 제화공들의 교섭 요구를 외면하고 있어 파업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더팩트>가 지난달 30일 오후 찾은 탠디 본사 앞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점거 농성 이후 탠디는 추가 기습 점거를 막기 위해 용역업체까지 고용해가며 본사 건물을 봉쇄하고 있다.
이날 탠디 건물 출입로는 철제 셔터가 굳게 닫힌 상태로 탑차에 둘러싸여 있었다. 탠디는 제화공들의 사옥 점거 이후 1층 쇼룸도 운영하지 않고 있다. 출입로는 용역이 통제하며 직원들이 밖으로 나오는 점심시간과 출퇴근 시간에만 열어주고 있다.
제화공들은 3층 점거 농성 중인 동료들을 걱정했다. 사옥 안에는 50~70대 제화공들이 농성 중인데 고령인 데다 모두 직업병을 앓고 있어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동료가 위급한 상황이 생길 수 있는데 사측이 출입구를 봉쇄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본사 앞 일방통행로는 출입구 봉쇄용 대형 트럭과 통행하는 차량, 농성 중인 제화공들이 뒤엉켜 매우 혼잡했다. 인근 상인과 지역 주민들은 "탠디가 건물을 차량으로 완전히 에워싸고 있어 통행이 너무 불편하다"며 "좁은 일방통행로인데 사고 날까봐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파업에 대해 업계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제화공들은 2000년 이후 특수 고용 노동자 신분으로 바뀌면서 고용 불안정, 차별적 근로조건, 노동 3권의 제약 등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였다. '노예 계약'과 다름없는 불합리한 계약 관행에도 불구하고 제화공들이 그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제화공들은 탠디가 만든 기형적인 하도급 구조에 신음하고 있다. 30년 경력의 베테랑 제화공 허 모 씨는 "탠디가 물가인상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공임을 8년 동안 유지하고 있다. 작업이 어려운 구두를 제작할 때 받았던 특수공임비도 폐지해 일할수록 손해 보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허 씨는 "사실상 고용 관계지만 지난 2000년 사업자등록 강요로 제화공들을 모두 '소사장'(특수 고용 노동자)으로 만드는 바람에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회사가 내던 세금 일부까지 떠안게 됐다"고 호소했다.
탠디는 제화공 업무를 지휘하고 통제하고 있어 사실상 고용 관계로 볼 수 있지만, 이들이 개인사업자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사가 업무를 지시할 때는 제화공들을 직원처럼 쓰고 불리할 때만 '사장님'인 셈이다.
또한, 만드는 개수마다 공임을 받는 '개수임금제'에 따른 폐해도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2011년부터 신발창과 굽을 만드는 '저부' 공정을 하는 작업자들은 저가 제품은 6500원, 고가 제품은 7000원을 받고 있다. 신발 윗부분을 제작하는 '갑피' 작업자는 저가 제품 5300원, 고가 제품 6300원을 받는다. 그동안 최저임금은 두 배 가까이 올랐으나 공임은 8년간 요지부동 상태다.
제화공들은 "새벽 5시 반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하며 손가락이 닳도록 노예처럼 일해도 돈을 벌 수 없는 구조"라며 "몇 개를 만드느냐에 따라 급여가 결정되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만들기 위해 점심시간을 5분밖에 쓰지 못할 정도로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불량품에 대한 탠디의 '갑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제화공의 작업 실수로 불량품이 나오면 탠디가 판매가를 적용해 공제하기 때문이다. 제화공 성 모 씨는 "백화점에서 30만 원에 파는 구두 한 켤레 만들고 손에 쥐는 건 고작 6500원이다. 그런데 만들다 불량이 나오면 고스란히 판매가로 물어야 한다. 그 날은 공치는 날"이라고 한탄했다.
탠디는 현재 제화공들의 교섭 요구를 외면하며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파업 장기화로 여론이 악화하면서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소통 노력을 하지 않는 정 회장 행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탠디 홈페이지 게시판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탠디의 '노예 계약'을 비판하는 누리꾼 글이 줄 잇고 있으며, 일각에선 불매운동을 펼칠 태세다.
수제화 및 일반제화 시장규모가 축소되는 추세에도 탠디 영업이익은 2007년 27억7000만 원에서 10년 만인 지난해 69억4000만 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제화공들의 열악한 근로 현실이 드러난 상황에서 이 같은 수익이 노동자 고혈을 쥐어짠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제화공들은 빨리 파업이 마무리돼 다시 일터로 돌아가길 고대하고 있다. 제화공 김 모 씨는 "회사 망하라고 파업하는 게 아니라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으로 돌리자는 거다. 빨리 협상해 일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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