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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초점] 재계 여성 경영활동, '딸' 활발 '며느리' 그때야 비로소...

  • 경제 | 2017-10-04 05:00
여전히 장자승계 원칙을 고수하는 재벌가도 있지만 여성들의 경영 참여가 활발하기 이루어지고 있다. 왼쪽부터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조현민 진에서 부사장, 임세령 대상 전무, 임상민 대상 전무. /더팩트 DB
여전히 장자승계 원칙을 고수하는 재벌가도 있지만 여성들의 경영 참여가 활발하기 이루어지고 있다. 왼쪽부터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조현민 진에서 부사장, 임세령 대상 전무, 임상민 대상 전무. /더팩트 DB

[더팩트ㅣ장병문 기자] 국내 재계의 3세·4세 경영 시작이 예고되고 있다. 재벌가 후계구도가 아직은 아들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머지않아 딸들도 총수를 맡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오래전부터 경영에 참여하면서 성과를 내는 '골드 도터스'가 주목을 받고 있고, 부모 회사에서 본격적으로 경영수업에 들어간 '뉴 도터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재벌가 며느리가 총수에 오르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 남편과 사별했을 때다. 재벌 오너가 딸들이 체계적으로 경영수업을 받았다면 며느리들은 수면 아래에 있다가 경영에 뛰어든다. 일부 재벌가는 보수적인 가풍 속에 '장자승계 원칙'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지만 여성들의 경영 참여도 시대적 흐름이 됐다.

◆ 재계 오너 딸, 경영수업 받고 기업 책임지는 전면에 나선다

삼성그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중심으로 기울던 지배구조 개편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주춤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두 여동생인 이부진(47)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44)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의 행보가 부각되고 있다.

이부진 사장은 '리틀 이건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결단력과 승부사적 기질을 인정받고 있다.

이부진 사장은 2010년 호텔신라 사장 취임 후 공격적으로 면세점 사업을 펼쳤다. 당시 명품 브랜드 루이뷔통을 인천국제공항 내 신라면세점에 입점시켰으며 2013년에는 영국 최고가 보석 브랜드 그라프를 서울 신라호텔에 유치했다. 지난달에는 HDC신라면세점이 오픈 1년 만에 신규면세점 최초로 흑자를 기록했다.

이서현 사장은 패션전문가다. 그는 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에서 패션을 전공한 뒤 2002년 제일모직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입사했다. 전무와 부사장을 거쳐 2015년 말 삼성물산 패션부문장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서현 사장은 현재 '구호', '준지', '에잇세컨즈' 등의 브랜드로 글로벌 영업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이서현 사장은 SPA브랜드 에잇세컨즈를 통해 해외매출 10조 원, 아시아 3대 SPA브랜드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최근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은 업황이 좋지 않아 고민이 깊다. 호텔신라는 최근 1년 사이 주가가 반 토막이 났다. 지난해 사사분기 호텔신라의 영업이익은 156억 원으로 시장기대치인 203억 원에 미치지 못했다. 패션부문에서는 사드 보복 이슈 등으로 중국사업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고 SPA브랜드의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부담이다.

한진가의 막내딸 조현민 진에어 부사장이 진두지휘하는 진에어는 실적이 좋다. 진에어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56%, 76% 증가한 7197억 원, 523억 원을 기록했다.

조현민(34) 부사장은 지난 2005년에 광고회사 LG애드에 입사해 대한항공으로 이직하기 전까지 약 2년간 실무경험을 쌓았다. 이에 마케팅 분야에서 능력을 보였다. 조현민 부사장은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해 진에어가 비약적 성장을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상그룹은 딸들의 활약이 눈에 띄는 기업이다.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에게 두 딸만 있기 때문이다. 임세령(40) 대상그룹 전무와 임상민(38) 대상그룹 전무가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데 두 자매 중 누가 후계 승계할지 관심이 높다.

첫째인 임세령 전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결혼해 10년간 가정주부로 살았다. 이혼 후 2009년부터 대상그룹 경영에 참여해 현재 외식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식품부문에서 브랜드를 기획하고 마케팅과 디자인 업무를 담당하는 직책이다.

2014년 대표 브랜드 청정원의 브랜드아이덴티티(BI)를 리뉴얼하는 작업을 주도했으며 사내 크리에이티브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이밖에도 임세령 전무는 영화배우 이정재와 열애를 인정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의 데이트 장면이 포착될때마다 패션, 자동차 등 숱한 화제를 낳고 있다.

임상민 전무는 언니 임세령 전무 이혼 전까지 후계자로 지목받았다. 임상민 전무는 결혼으로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던 임세령 전무와 달리 일찌감치 경영수업을 받았다.

그는 2009년부터 대상 PI본부, 전략기획본부에서 일을 시작해 그룹의 핵심 부서에서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그러다 지난 2015년 결혼 후 미국으로 건너가며 후계자에서 멀어졌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당시 대상그룹은 "뉴욕 현지 법인에서 경험을 쌓기 위한 취지"라고 했다.

현재 임상민 전무는 식품BU 전략담당중역 겸 소재BU 전략담당중역으로 일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대상이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어 승계 논의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주형 금호석유화학 상무는 여성 경영인을 금기시하는 집안의 원칙을 깨고 지난 2015년 상무로 입사했다. 금호그룹은 과거 고 박인천 회장의 아들들이 작성한 '형제공동경영합의서'에 따라 여성 경영 참여를 비롯해 주식 보유도 금지했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독립한 뒤 합의서는 깨졌다. 박찬구 회장은 "딸도 능력 있으면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히면서 박주형 상무를 회사에 들였다.

박주형 상무는 지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대우인터네셔널(현 포스코대우)에서 관리 분야를 담당했다. 현재 금호석유화학에서도 구매와 자금부문을 관리하고 있다. 회사의 곳간 열쇠를 맡겼다는 건 박찬구 회장의 신임이 크다는 의미다.

최근 박주형 상무는 지분을 늘리며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다. 박주형 상무는 지난달 주식 1000주를 취득하면서 지분율 0.77%(23만4953주)로 늘어나게 됐다. 금호석유화학은 박주형 상무의 지분 취득에 대해 "책임경영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 최윤정 씨는 지난 1월 SK㈜의 자회사인 SK바이오팜에 입사했다. 왼쪽부터 최민정 씨(해군 입대), 노소영 아트센터나비관장, 최윤정 씨. /더팩트 DB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 최윤정 씨는 지난 1월 SK㈜의 자회사인 SK바이오팜에 입사했다. 왼쪽부터 최민정 씨(해군 입대), 노소영 아트센터나비관장, 최윤정 씨. /더팩트 DB

◆' 뉴 도터스' 회사 들어가거나, MBA 준비하거나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 최윤정(28) 씨는 지난 1월 글로벌 컨설팅 회사 '베인앤드컴퍼니'에서 퇴사하고 SK㈜의 자회사인 SK바이오팜에 입사했다. 보직은 경영전략실 산하 전략팀에서 선임매니저(대리급)다.

최윤정 씨가 SK 계열사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경영수업이 시작됐다는 추측이 쏟아졌는데 이달 초 결혼을 발표했다. 상대는 베인앤드컴퍼니에서 함께 근무했던 평범한 가정의 일반인이다.

최윤정 씨는 가정을 꾸린 이후에도 일을 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미국 시카고대에서 생물과학을 전공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경영 사관학교'라고 불리는 글로벌 컨설팅 회사에서 1년 넘게 경험을 쌓아왔다. 체계적으로 절차를 밟아온 만큼 결혼 후 본격적으로 일에 매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나비관장은 장녀 최윤정 씨, 차녀 최민정 씨, 아들 최인근 씨를 두고 있다. 최민정 씨는 2014년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한 뒤 해군 장교로 근무하고 있고 최인근 씨는 미국 브라운대에서 유학 중이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의 장녀 서민정(27) 씨도 최윤정 씨와 비슷한 절차를 밟았다. 서민정 씨는 지난해 12월 베인앤드컴퍼니에서 퇴사하고 올해 1월 아모레퍼시픽에 입사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서민정 씨는 현재 경기도 오산시 공장에서 제조기술팀 평사원으로 배치됐다. 재계에서는 그가 아버지가 생산부문에서 첫발을 뗀 것처럼 화장품 사업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부터 배워나갈 것으로 봤지만 지난 6월 퇴사했다.

서민정 씨는 이달 중국의 경영전문대학원(MBA) 장강상학원에 진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500대 기업 요직에 있는 인물 5명 중 1명은 이곳 출신일 정도로 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서민정 씨가 다시 학업을 선택한 것에 대해 "퇴사 후 여러 방면으로 학업을 이어갈 계획을 논의하면서 이같이 결정한 것. 근무 계획은 없고 중국에서 더 공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서민정 씨가 훗날 중국 시장을 대비해 유학을 선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서경배 회장은 서민정 씨와 차녀 서호정(23) 씨를 두고 있다. 50대인 서경배 회장이 젊기 때문에 후계를 논하기 이르지만, 현재 서민정 씨가 후계자로 꼽히고 있다.

서민정 씨의 아모레퍼시픽그룹 지분은 2.93%, 아모레퍼시픽 지분은 0.01%로 서경배 회장에 이어 개인 2대 주주다.

현정은 회장은 살림만 하던 여성이 대기업 총수의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당당히 14년째 현대그룹을 이끌고 있다. /더팩트 DB
현정은 회장은 살림만 하던 여성이 대기업 총수의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당당히 14년째 현대그룹을 이끌고 있다. /더팩트 DB

◆현정은·장영신 회장 '사모님 CEO' 꼬리표 떼고 홀로서기

현정은(63) 현대그룹 회장은 재계에서 대표적인 '사모님 CEO'다. 외부 노출이 거의 없었던 장영신(81) 애경그룹 회장도 여성최고경영자 중 한 명이다. 두 사람은 남편의 갑작스러운 사별로 경영을 맡게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재벌가 딸들이 체계적으로 경영 수업을 받았다면 이들은 갑작스레 경영에 뛰어들게 됐다.

장영신 회장은 애경그룹 창업주인 남편 채몽인 사장이 1970년 급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면서 1972년부터 경영에 참여했다. 그가 경영 직후 터진 제1차 오일쇼크로 기업환경은 악화됐다. 당시 장영신 회장은 대전에 합성세제 공장을 짓는 등 과감한 시설투자를 지시했다. 세탁비누 시대가 가고 합성세제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상이 적중한 것이다.

장영신 회장이 경영할 당시 2개 계열사뿐이던 애경은 현재 생활용품, 기초화학, 유통, 해외사업등 다양한 사업에 진출, 건실한 중견그룹이 됐다. 장영신 회장은 2004년 공식적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아들 채형석 부회장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

현정은 회장은 남편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이 2003년 스스로 목숨을 끊자 그해 회장으로 취임했다. 현정은 회장은 수차례 닥쳐온 위기를 극복하는 뚝심을 보였다. 과거 시삼촌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시동생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경영권 공격을 막아냈다. 이어 구조조정, 매각 등 경영난 위기를 극복하면서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현정은 회장은 살림만 하던 여성이 대기업 총수의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당당히 14년째 현대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는 해외에서도 인정하는 대표 여성 기업인이 됐다.

'사모님 CEO' 가운데 실패한 경영인도 있다. 최은영(55) 유수홀딩스 회장(전 한진해운 회장)은 남편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이 2006년 사망한 이후 경영에 뛰어 들어 2014년까지 회사를 이끌었다. 업계에서는 한진해운이 잘못된 경영으로 부실이 장기화됐고 결국 법정관리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최은영 회장이 회사를 잘 이끌기 위해서 인재을 적절히 활용하는 능력이 중요했는데 이마저도 실패했다는 평가다.

최은영 회장은 글로벌 경기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채 용선을 비싼 값에 대여하면서 회사가 쇠퇴하기 시작했다. 최은영 회장은 2013년 시숙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 다음해 경영권을 넘겼다. 최은영 회장은 경영난에도 재임기간 8년 동안 보수와 배당금으로 250억 원을 챙겨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특히 최은영 회장은 한진해운 자율협약 신청 직전에 자신과 두 자녀가 가지고 있던 주식 97만 주를 모두 매각해 도덕적 해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결국 최은영 회장은 한진해운 사태로 지난해 9월 국정감사에 불려나가 무릎을 꿇고 사죄하기도 했다.

힌진해운을 이끌었던 최은영 회장은 지난해 9월 국회에서 열린 조선·해양 구조조정 연석 청문회에 출석해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다. /더팩트 DB
힌진해운을 이끌었던 최은영 회장은 지난해 9월 국회에서 열린 조선·해양 구조조정 연석 청문회에 출석해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다. /더팩트 DB

재계에 따르면 며느리의 경영활동 참여는 사실상 금기시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적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책무)'를 추구하는 봉사활동과 내조에 그친다. 실제 남편이 사망하고 자녀들이 어린 경우에만 경영 전면에 나서는 게 일반적이다.

며느리의 경영 활동이 쉽지 않은 이유는 재계의 통념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귀족적 성향이 짙은 재벌가에서는 핏줄을 중요히 여기기 때문이라는 것. 결국 냉정하게 며느리는 성이 달라, 기업의 중책을 맡기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이게 그들 세계에서 현실이라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반면 며느리와 달리 핏줄인 딸은 경영 진출이 활발해지는 게 요즘 분위기다. 물론 아직도 딸은 경영에서 배제하는 재벌가가 적지는 않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절대 금기시 하는 문화가 점점 옅어지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재벌가 여성들이 경영에서 두각을 보이면서 그들의 행보 하나하나가 주목을 받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성 진출이 더 많아지고 자연스러울 것이다. 여성이 그룹 총수가 되는 모습은 먼훗날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과거처럼 자녀수가 많지 않아 자녀들이 모두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딸들에게도 기회가 오는 것이다. 하지만 세습 경영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재벌가 자녀들의 경영 능력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jangb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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