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울중앙지법=서재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위원장이 "삼성은 '집단지도체제'로 유지된다"고 진술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본건 재판에서 논란의 중심에 선 삼성그룹의 주요 경영현안과 같이 굵직한 사안을 이 부회장이 아닌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 실차장급에서 기획하고 추진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한 주체로 이 부회장을 지목한 특검의 공소내용과 다른 해석이다.
김 위원장은 14일 서울 서초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에 대한 39번째 재판에서 "삼성그룹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와병 이후 과거처럼 운영되지 않고,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돼 왔다"고 진술하면서 그룹의 최종의사결정권을 쥔 지도체제의 구성원으로 이 부회장을 비롯해 최지성 전 미전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사장), 김종중 전 미전실 사장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김 전 사장과 주고받은 대화를 근거로 제시하며 "이 부회장 체제는 사실상 미완성이며, 외람되지만 (이 부회장) 스스로도 자신감이 부족하다"라며 "집단지도체제 내에서 이견이 있을 경우 10개의 안건 가운데 4개는 이 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되지만, 나머지 6개는 참모들의 결정대로 정해진다고 들었다"라고 진술했다. 사실상 이 부회장과 나머지 3명 수뇌부의 관계를 수직적인 '주종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로 정의한 것이다.
이는 이 부회장이 그룹 지배구조의 최고 정점에 서서 '삼성→청와대→최순실'로 이어지는 청탁 연결고리를 완성했다는 특검의 주장과 배치되는 진술이다. 오히려 특검의 공소내용을 두고 '그룹의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오해'라고 강조한 삼성 측 주장에 부합한다.
실제로 삼성 측 변호인단은 지난 4월 13일 이 부회장의 첫 공판 당시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삼성의 출연금 지원 경위에 관해 "실질적으로 재단 출연금 지원과 같은 문제는 이 부회장이 결정권을 갖고 있지 않다"라며 이 부회장이 의사결정권을 독단적으로 쥐고 있지 않다는 취지로 진술한 바 있다.
특검의 공소내용과 상충하는 진술은 이뿐만이 아니다. '삼성의 저격수'로 불리는 김 위원장은 지난해 국회 청문회 당시 삼성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에 열을 올린 데 이어 현재는 '재벌 개혁'에 시동을 걸고 있는 공정위 수장이라는 타이틀을 까지 얻었다.
때문에 법조계는 물론 재계 안팎에서는 이날 김 위원장이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그에 따른 순환출자고리 해소 부분과 관련해 날 선 지적을 쏟아낼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렸다. 일각의 예상대로 그는 삼성물산이 합병과정에서 KCC에 자사주 899만 주(5.76%)를 매각한 것이 '우호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하며 양사 합병의 목적이 계열사 간 시너지가 아닌 이 부회장이 최소한의 자금으로 삼성전자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요 현안을 기획하고 추진한 주체에 대해서는 특검과 뜻을 달리했다. 김 위원장은 "김 전 사장으로부터 '이 부회장은 당시 비난 여론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자사주 매입 의사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했다'는 얘기를 들었고, 나 역시 이 부회장이 반대했을 것으로 생각한다"라면서 "일련의 모든 과정은 (이 부회장의 결정이 아닌) 참모진의 설득으로 추진된 것으로 미전실에 몸 담았던 분들이 일 처리를 신중하게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 위원장은 이날 신문과정에서 공정위 업무와 직접 관련이 있는 순환출자 해소 및 주식처분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특검에서 경제개혁연대가 작성한 '합병문제시 발생하는 순화출자'라는 리포트를 제시하자 "공정위 업무와 관련성이 높은 문제"라며 재판부에 진술을 조서로 대체해 줄 것을 요청했다.
KCC가 매수한 삼성물산 자사주 매수가격의 적정성에 관해 질문할 때에도 "이는 공정위 업무와 관련성이 큰 사안으로 진술 내용에 따라 해당 기업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어 답변을 거부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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