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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초점] '카푸어라고' 수입차 할부 족쇄에도 행복한 그들은 왜?

소득 대비 값비싼 수입 자동차 구입과 유지로 궁핍한 생활을 감내하는 젊은층이 많아진 가운데 자신은 행복한 카푸어라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더팩트 DB
소득 대비 값비싼 수입 자동차 구입과 유지로 궁핍한 생활을 감내하는 젊은층이 많아진 가운데 자신은 행복한 카푸어라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더팩트 DB

[더팩트ㅣ이성로 기자] 국내에서 수입차 점유율이 높아지면서 수입 자동차 구입과 유지에 궁핍한 생활을 감내하는 '카푸어(car poor)'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선택', '할부금의 노예'라며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이 많지만, '카푸어'라는 꼬리표에도 나름의 행복을 느끼는 사회 초년생들도 적지 않다.

수입 자동차 160만 시대다. 지난 1987년 개방 이후 2014년에 100만대를 돌파했고, 국토교통부와 한국수입자동차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2월까지 등록된 수입차는 약 167만 대다. 2015년엔 역대 최고치인 15.53%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며 '수입차 전성시대'를 열었다. 쉽게 말해서 길거리에 있는 차량 10대 가운데 1.5대가 수입차라는 이야기인데 흔히 말하는 '핫 플레이스'를 가면 국산차보다 수입차를 더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외제차는 우리 생활 속에 가까이 있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처음으로 두 자릿수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던 지난 2012년(10.01%)을 기점으로 이른바 '카푸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카푸어는 자신의 경제력에 비해 무리하게 비싼 차를 구입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나 아직 부모님과 동거 또는 월세살이를 하면서도 할부로 고급 수입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을 일컫는 단어다. 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남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 20·30대 카푸어가 늘어나는 이유

젊은 층의 수입차 구매가 늘어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할인폭이다. 제한적인 할인 행사를 하는 국내 자동차 업계와 다르게 수입차는 다양한 프로모션으로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최소 100만~200만 원에서 많게는 1000만 원 이상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어 국산차값에 조금만 더 보태면 외제차주가 될 수 있다.

지난 2010년부터 시행된 원금유예할부제도도 수입차 구매를 부추기고 있다. 차량 가격의 일부만 먼저 내고, 나머지 원금의 이자만 내가면서 최종 잔금은 36~60개월 뒤에 한꺼번에 지불하는 제도로 인해 젊은 층의 수입차 소비가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다만, 만기를 채우고 수천만 원의 목돈을 갚지 못하면 '카푸어'로 전락하게 된다. 극단적인 경우는 차를 다시 팔아도 원금을 갚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카푸어를 양산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수입차 장벽이 많이 허물어지자 사회에 이제 막 첫발을 내딛거나, 본격적으로 경제력이 생기기 시작한 20·30대의 구매가 많이 늘어났다. 지난해 수입차 구매 연령대를 보면 20~30대(6만6693명) 비중이 46%에 달했다. 원금유예할부제도가 시행되기 직전인 2009년(약 35%)과 비교해 11% 포인트가 증가한 수치다.

사회 초년생들의 수입차 구매는 긍정적인 시선보다 부정적인 시선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허세다' '겉멋이 들었다' '할부금의 노예다' '할부금은 그렇다 해도 차량 유지비가 문제다' '미래를 위한 저축이 우선이다'라는 시선이 대다수다.

김 모씨는 지난해 취업 1년도 안 된 상태에서 약 5000만 원의 대출을 받아 렉서스 NX300h를 구입했다. /렉서스 홈페이지 캡처
김 모씨는 지난해 취업 1년도 안 된 상태에서 약 5000만 원의 대출을 받아 렉서스 NX300h를 구입했다. /렉서스 홈페이지 캡처

◆ 1000만 원으로 렉서스 오너가 된 사회 초년생 "일에 대한 동기부여 생기고, 자신감도 올라간다"

지난해 1월 취업에 성공한 김 모씨는 7개월 뒤 부모님과 은행의 힘을 빌려 렉서스 NX300h의 차주가 됐다. 부모님의 지원(1000만 원)을 받은 김 씨는 5년 동안 은행에 약 4800만 원을 갚아야 한다. 원금·이자·세금·보험비 등으로 매달 100만 원이 넘는 금액이 60개월 동안 빠져나간다. 결코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모아둔 돈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에선 '무리하는 것 아니냐'라는 시선이 고개를 들었지만, 정작 본인은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는 삶의 가치를 '미래'보단 '현재'에 더 많은 무게를 뒀다. "우려하는 시선이 많았다"고 운을 뗀 김 씨는 "매달 적금을 들어서 목돈을 마련한 뒤 차를 사는 것보다 지금 당장 내가 원할 때 할부로 차를 사는 것이 기회 비용 면에서 더 낫다고 판단했다"며 "차를 구입할 때 수입을 고려해 마지노선을 정해 놓고 모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할부로 수입차를 사게 되면 물론 대출로 인한 이자 등을 생각하면 잃는 것도 있지만, '더 열심히 일하자'라는 동기부여도 되고, 스스로에게도 많은 자신감을 주는 측면도 무시하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수준에 맞는 차를 타야 한다'라는 말이 가장 현실적이지만, 동시에 발전 없는 안일한 사고방식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면서 "물론 차를 사기 전에 자신의 수입과 개인적 최대 마지노선을 정해 놓는 것은 꼭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최 모씨는 살인적인 서울권 집값에 저축을 포기하고 외제차를 구매했다. /랜드로버 홈페이지 캡처
최 모씨는 살인적인 서울권 집값에 저축을 포기하고 외제차를 구매했다. /랜드로버 홈페이지 캡처

◆ 집을 포기한 남자 "서울권에 집 살 엄두 않나…차라도 원하는 모델로"

자신을 '카푸어'라고 소개한 최 모씨는 김 씨와 비교하면 상황은 나은 편이다. 자신이 모아둔 목돈과 부모님의 도움 그리고 대출을 받아 취업 1년 만에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차 키를 손에 쥐었다. 원금·이자·보험비·세금 등 고정적으로 4년 동안 매달 80만 원 이상의 돈이 나간다.

최 씨는 "개인적으로 미래를 생각해 집을 위한 저축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사회에 진출하니 직장이 있는 서울에 집을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막막한지 몸소 느끼고 있다. 서울권 집 매매는 물론이거니와 전월세도 생각지도 못한다. 그래서 집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평소에 타보고 싶었던 외제차를 구입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할인 행사로 국산차와 수입차 가격의 간격이 많이 좁아졌다. 국내차를 구입했었더라도 어차피 대출은 필요한 옵션이었기에 조금 더 무리해서 원하는 차량을 샀다. 매달 80만 원이라는 돈이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당당히 말했다.

김 모씨는 최소한의 계약금으로만 수입차를 구매한 뒤 1년도 되지 않아 되팔았지만 후회는 없다고 한다. /볼보 홈페이지 캡처
김 모씨는 최소한의 계약금으로만 수입차를 구매한 뒤 1년도 되지 않아 되팔았지만 후회는 없다고 한다. /볼보 홈페이지 캡처

◆ 0원으로 볼보 키를 손에 쥔 사나이 "안샀으면 흥청망청 썼을 것"

또 다른 김 씨는 "개인적인 경제 상황으로 인해 수입차 구매 1년도 지나지 않아 처분했지만 후회한다는 생각은 단 1%도 없다"고 말한다.

사회생활 3년 차인 김 씨는 지난해 볼보 V40을 구입했다. 그는 선수금 없이 최소한의 계약금으로 수입차 오너가 됐다. 김 씨가 5년 동안 은행에 갚아야 할 금액은 약 3400만 원. 원금과 이자 그리고 차량 유지비 등으로 매달 통장에서 약 90만 원의 금액이 빠져나간다. 이에 지인들은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물론 처음엔 부담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 자금을 묶어두지 않으면 별 의미 없이 소진할 것 같았다. 금융권 이자율도 높지 않은 마당에 어차피 차는 오래 탈 것이고 필요 없으면 팔아도 되니 수입차를 구매하게 됐다"는 김 씨는 "월별 비용은 계산하며 계획적으로 지출했다. 큰 여유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큰 부담도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차량 구입 10개월 뒤에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차를 팔게 됐다. 투자한 원금과 비교해 약 600만 원의 손해를 봤지만, 좋은 경험이었고 다시 필요해지면 또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자신을 '카푸어'라고 인정하면서도 선택에 대한 후회는 조금도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경제 사정 등 상황은 서로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먼저,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 금액'을 설정해 놓았다는 것이다. 모두 할부금에 대한 부담은 있었지만, 기회비용을 따져 월납입금을 계산한 뒤 수입차 구매를 했다. 그렇기에 '카푸어'라는 시선에도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위험 부담이 큰 원금유예할부제도는 이용하지 않았다. 또한, 낮은 은행 이자율이나 과도한 집값 상승률로 '미래를 위한 저축'보다는 '현재 즐기자'는 쪽에 삶의 가치를 두고 있었다. 그들이 '할부 족쇄'에도 수입차 오너로서 행복감을 느끼는 이유다.

sungro51@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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