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양평=권오철·서재근 기자] "자기네들 보트 가지고, 자기네들 운전기사 두고, 자기네들이 한 거예요. 저기 보트는 우리 보트와는 차원이 다른 고급이야."
지난달 30일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친 '양평 땅콩보트 사고'가 발생한 이틀 뒤인 1일, 사고 인근지역에서 수상레저스포츠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볼멘 소리를 감추지 않았다. 사고 직후 '땅콩보트 운영업체'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받고 있다는 일부 보도가 나오면서 여름 한 철 대목장사를 해야하는 이 지역 수상레저업 경기가 위축될 염려 때문에서다.
"사고를 낸 모터보트 운전사는 저기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별장에서 상주하며 월급 받는 관리인으로 알고 있다"라며 "(운전사는) 50대로 보이는 남성이며 직접 말은 섞지 않았지만 수 년 전부터 봐 왔었다"고 A씨는 말했다.
'양평 땅콩보트'사고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A씨는 모터보트는 해당 별장(주인)의 것이고 보트 운전사는 별장에서 근무하는 50대 인물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사고를 조사 중인 양평경찰서는 보트 운전자 B씨(50대)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2일 밝혔다. B씨는 "모터보트가 충돌할 것을 예상하지 못해 사고가 났다. 판단착오였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지난 달 30일 발생한 이 사고가 세간의 눈길을 유독 끄는 것은 우선 해외 유학파 대학생 17명을 별장에 초청한 이가 국내 굴지 재벌인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의 아들 C씨라는 점에서다. 영국 옥스퍼드대 선후배 17명은 별장 주인인 정 회장 아들의 초청으로 놀러온 것. 이 별장은 지난 1984년 12월 정몽규 회장 앞으로 소유권이 이전됐고 등기상 지금까지 정 회장의 별장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해당 모터보트와 보트 운전자가 초기에 알려진 것과 달리 별장 측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안전사고의 책임소재를 놓고 경우에 따라서는 파장이 확산될 가능성을 배재할수 없어서다. 문제의 선착장은 별장을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한 사유물이라고 주변 수상레저업체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 사고의 선착장은 별장을 통해서만 접근 가능
사고 내용의 대략적 개요는 이렇다. 지난 7월 30일 정 회장의 아들 C씨는 자신의 옥스퍼드대학교 동문 17명을 아버지 소유의 양평 별장으로 초대해 땅콩보트를 타고 수상레저를 즐겼다. 모터보트가 10여m 뒤에 줄로 이어진 땅콩보트를 이끄는 방식이었다.
그러던 중 땅콩보트가 선착장의 바지선과 충돌하면서 땅콩보트에 타고 있던 4명이 공중으로 튀어올랐고 그 중 한 명이 선착장에 서 있던 D씨와 부딪혔다. D씨는 정박돼 있던 모터보트와 바지선 사이의 공간으로 빠졌다.
경찰에 따르면 이 공간은 50~60센티미터 정도의 좁은 공간이다. 이때 D씨 외에도 8명이 선착장에 서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D씨가 물에 빠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최초 사고 신고가 접수된 것은 사고 당일 오후 4시 48분이다. 동료들은 D씨가 소지품을 남긴 채 사라진 것을 뒤늦게 알게 되고 CCTV를 통해 D씨가 사고 당시 충돌로 물에 빠진 것을 확인했다. D씨의 실종을 신고한 것은 사고로부터 약 7시간이 뒤인 오후 11시 58분이다. 경찰은 다음 날인 7월 31일 오전 3시 15분경 선박장에서 5m 떨어진 곳에서 D씨의 변사체를 발견한다. 땅콩보트에 타고 있던 4명은 찰과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더팩트> 취재진은 사건이 발생한 정 회장의 양평 별장을 1일 찾았다. 해당 별장은 정 회장이 23세가 되는 1984년부터 소유한 것으로 주소는 경기도 양평균 서종면 문호리 000번지다. 문호리 주민에 따르면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넷째 동생) 때부터 가족과 지인이 이곳 별장에 찾아와 수상레저를 즐겼다고 한다.
정 회장의 별장이 있는 문호리 주변에는 고급 빌라들이 다수 들어서 있다. 차가 다닐 수 있는 길 끝에서 만난 정 회장의 별장은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고 철문 왼쪽 상단에는 CCTV가 설치돼 있다. 철문 너머로 2층 구조의 별장을 어렴풋이 확인한 후 취재진은 사고가 발생한 선박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으나 도보로 선착장에 갈 수 있는 길을 없었다. 선착장은 오직 정 회장의 별장을 통해서만 갈 수 있는 철저한 개인 사유지였다.
먼 발치에서 갈색 구조물로 보이는 선착장을 확인했다. 취재 당시 선착장에는 검은색 천으로 덮인 제트스키가 바지선 위에 놓여 있었다. 10여 년을 넘게 별장 인근에서 거주한 주민 모 씨는 "(별장에는) 2대의 모터보트와 1대의 제트스키가 있는 것으로 안다"며 "사고 당일에는 그곳 사람들이 모터보트를 이용하는 것으로 목격했다"고 말했다.
◆ 사고를 낸 모터보트 운전자 소속은?
이번 사고에서 특히 눈여겨 볼 사안은 운전미숙으로 5명의 사상자를 낸 모터보트 운전자의 소속이다. 운전자의 고용 형태에 따라 안전관리 소홀 등의 사유로 고용주나 보트 운전을 지시한 이의 책임여부도 따질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일부 보도는 "B씨는 20년 이상 경력의 보트 운전자이며 보험도 가입돼 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A씨 주장은 다소 다르다.
사고 원인과 관련해 A씨는 "(내가 보기에는)전적으로 운전 미숙이다. 보트를 몰아보지 못한 사람이다. 어느 업장에서도 바지선 근처에서 그렇게 운전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땅콩보트는 바나나보트와 달리 물에 빠뜨리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고 A씨는 말했다.
인근 수상레저업체에서는 모터보트 운전자가 별장에서 상주하면서 월급을 받는 관리인으로 알고 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보트 운전자가 현대산업개발 소속의 파견직원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으나 현대산업개발 측은 "(이번 사건이 정 회장 소유) 별장에서 발생한 것은 맞다. 그러나 회사와 관련이 있는 사람은 없다"며 "보트 운전자 역시 회사측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이며 그가 어디에 소속돼 누구로 부터 어떻게 급여를 받는지 모른다"고 관련설을 일축했다.
경찰 측은 "모터보트 운전자의 신원에 대해서는 답변할 수 없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영상=땅콩보트 사고 현장: '썰렁해진' 북한강>
현재까지 별장이 관리하고 있는 모터보트의 소유주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보트의 법인 소유 가능성도 제기된다. 개인이 모터보트를 소유하려면 소유자의 주민등록상의 주소에 해당하는 관청에 보트 소유를 신고해야 한다.
정 회장의 부동산 등기부등본 상에 나타난 주소와 관련된 양평군청과 서울 성북구청에서는 정 회장의 소유로 된 보트가 확인되지 않았다. 또 보트 운전자는 별장 소유자인 정 회장이 사적으로 고용한 것인지 아니면 현대산업개발 소속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보트는 정 회장의 소유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보트 운전자가 현대산업개발 직원인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또 "(그 날)모임 성격 자체가 극히 회장님 자제분 개인적인 것으로, 어떻게 모임이 이뤄졌는지 등에 대해서도 회사측에서는 답변드릴 내용이 없다"고 금을 그었다.
경찰측은 보트 운전자의 소속에 대해 묻는 질문에 "보트 운전자, 수상스키(선착장) 관리인이라고만 하겠다"면서 "이 사람의 소속에 대해서 말하면 실체가 드러나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없다"라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모터보트 운전자 소속과 관련된 기업이나 특정 개인의 책임 소재 여부에 대해서 경찰 측은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단언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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