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노조, FIFA에 투쟁단 파견키로
세계 축구 대권 도전에 나선 정몽준(64)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의 내우외환(內憂外患)이 깊어지고 있다. 밖에서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정 명예회장의 경쟁자인 미셸 플라티니(60)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을 지지하는 아시아축구연맹(AFC)의 부정선거 운동이 문제될 것 없다는 결론을 내린 한편, 안에서는 그가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의 노동조합이 회사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FIFA에 투쟁단을 파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의 보이지 않는 견제와 동시에 강력한 라이벌인 미셸 플라티니 회장, FIFA 회장 선거 재출마를 선언한 알리 빈 알 후세인(40) 요르단 왕자를 상대로 오는 2016년 2월 선거를 앞두고 격전을 펼쳐야하는 정 명예회장으로선 현대중공업 노조의 투쟁단 파견은 큰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11일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에 따르면 추석 전인 21일까지 임금 및 단체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FIFA 본부가 있는 스위스 취리히에 투쟁단을 파견해 정 명예회장과 회사를 전방위 압박하기로 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정 명예회장이 현대중공업의 실질적 오너이자 최종 의사결정권자라고 보고, 최대주주로서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조는 지난해 20년 만에 파업에 들어가 올해로 2년 연속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전체 1만 7000여 명의 조합원 중 이번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의 규모는 노조 측 추산 약 6000여 명에 이른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회사 측에 ▲임금 12만 7560원(기본급 대비 6.77%) 인상 ▲직무환경수당 100% 인상 ▲고정성과급 250% 보장 ▲기본급 3% 노후연금 적립 ▲통상임금 1심 판결결과 적용 ▲임금·직급체계 및 근무형태 개선을 위한 노사 공동위원회 구성 ▲성과연봉제 폐지 ▲사내하청노동자 처우개선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 측은 지난 7월 27일 여름휴가가 시작되기 전 ▲임금동결 ▲생산성 향상 격려금 100% 지급 ▲안전목표달성 격려금 100만원 지급 등을 담은 안을 제시했지만 노조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노조 집행부는 오는 14일부터 상경투쟁을 벌이고, 정 명예회장이 다니는 곳을 찾아다니며 게릴라식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정 명예회장이 회장직에 도전한 스위스 취리히의 FIFA 본부도 예외는 아니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투쟁단 파견은 사실상 정 명예회장의 FIFA회장 ‘낙선운동’으로 점화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현대중공업 노조는 정 명예회장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노동자 8명이 잇따라 현장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서울시장보다 현대중공업 문제부터 해결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 사태가 정몽준 명예회장의 선거 운동에 악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면서 이번 FIFA회장 선거에서도 노조의 투쟁이 큰 부담으로 작용될 수밖에 없다.
FIFA 회장 선거의 강력한 후보자 플라티니가 이 점을 이용해 "FIFA 회장보다 현대중공업 문제부터 해결하라"고 목소리를 낸다면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정 명예회장에게는 내년 총선과 이듬해 대선 카드가 남아있기 때문에 현대중공업 노조의 투쟁은 정 명예회장의 행보에서 족쇄처럼 따라다닐 가능성도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FIFA 회장 선거전에 나선 정 명예회장이 라이벌과 경쟁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현대중공업 노조의 투쟁으로 더 험한 여정이 예상된다"면서 "정 명예회장이 나라 밖에서 대권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가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부터 다스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시에 나라 밖에서는 FIFA 회장 선거에 나선 정 명예회장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AFC가 플라티니 회장을 위해 부정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는 정 명예회장의 주장에 대해 FIFA 측이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정 명예회장은 11일 보도자료를 내고 FIFA가 'AFC가 플라티니 회장의 추천서를 회원국들에게 발송한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앞서 정 명예회장은 셰이크 살만 AFC 회장이 회원국에 발송한 플라티니 추천서 사본을 공개하면서 AFC가 선거에 개입하려고 한다고 주장했고, FIFA 윤리위원회의 조사를 촉구했다. 하지만 FIFA는 이 같은 행위가 선거규정에 위반된다는 정 명예회장의 주장에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조사를 종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AFC도 지난 3일 성명서를 내고 정 명예회장이 공개한 추천서의 일괄 발송행위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정 명예회장의 부정선거 주장을 반박했다.
이에 대해 정 명예회장측은 "FIFA 선거관리위원회가 조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위법행위가 없다는 성급한 판단을 한 것은 결과적으로 불법선거를 은폐한 것이고, 선거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보장해야 할 직무를 방기한 것"이라며 재조사를 촉구했다.
이처럼 FIFA 회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정 명예회장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논란이 불거지며 ‘산 넘어 산’의 행로가 이어지고 있다. 앞서 지난달 19일 '블룸버그 통신'은 'FIFA 윤리위원회가 2010년 당시 정 명예회장이 파키스탄 홍수와 아이티 대지진을 돕기 위해 각각 40만 달러(약 4억 7000만 원)와 50만 달러(약 5억 9000만 원)를 기부한 것을 두고 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또 이 매체는 FIFA 윤리위원회가 2010년과 2022년 월드컵 개최지 결정을 앞두고 한국유치위원회가 발표한 7억 7700만 달러(약 9277억 3000만원) 규모의 세계축구기금 조성 계획에 대해서도 조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정 명예회장이 돈을 낸 2010년은 FIFA 부회장 선거가 있었고 한국이 2022년 월드컵 유치전에 뛰어든 해였다는 게 의혹을 사고 있다. 당시 정 명예회장은 알리 왕자에게 패하며 부회장 5선에 실패했다.
이에 대해 정 명예회장 측은 "순수한 인도적 지원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비윤리적 행태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그런가 하면 또 한명의 강력한 라이벌로 나선 알리 왕자는 정 명예회장에 대해 ‘부적격자’라고 저격했다. 알리 왕자는 정 명예회장에 대해 “FIFA에 너무 오래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정 명예회장은 지난 1993년 1월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취임하면서 FIFA와 불가분의 관계를 시작했다. 이후 1994년 FIFA 부회장에 당선된 이후 2010년까지 4번의 임기 동안 부회장을 지냈다. 4번째 부회장 임기를 마친 2011년 3월 3일에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지난 17년간 세계 축구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FIFA 명예부회장에 추대됐다. 제프 블라터 현 FIFA 회장이 부패 연루 의혹으로 자진 사퇴를 밝히자 차기 회장 출마를 선언한 뒤 지구촌을 돌며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더팩트 │ 황진희 기자 jini8498@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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